이틀 동안 나와 함께 한 요조
다자이 오사무의 요조는 평생 사람들 앞에서 웃는 얼굴을 그려 넣었다. 그 웃음이 가면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자신뿐이었다. 바카라장을 덮고 나서 오래도록 남은 것은 요조의 절망이 아니라, 그 절망을 감추기 위해 그가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연습했을 표정이었다.
나는 삼십 년 가까이 상담실에 앉아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해 왔다. 취업을 앞둔 청년들, 정년을 앞둔 이들, 그들 모두 저마다의 요조를 하나씩 품고 들어왔다. 자신 없음을 자신 있음으로, 두려움을 담담함으로 바꿔 말하는 훈련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늘 듣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내가 붙들고 있던 가면에 대해서는 오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요조는 말한다. 자신은 인간의 삶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남들이 슬퍼할 때 슬퍼하고 기뻐할 때 기뻐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고. 그 문장 앞에서 멈춰 섰다.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배운 대로 꺼내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상담자로서의 표정, 어머니로서의 표정, 작가로서의 표정. 그 표정들 사이 어디쯤에 내가 있었는지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요조와 나 사이에는 결정적인 틈이 있다. 요조는 가면 뒤에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웃음 뒤에 텅 빈 방만 있었다. 나는 가면 뒤에 무언가를 붙들고 있었다. 글을 쓰는 새벽, 아버지의 굽은 등을 바라보던 순간, 늙은 왕버들 아래 오래 서 있던 시간들. 그것들은 연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연기를 걷어내야만 만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인간실격이라는 제목을 오래 곱씹었다. 자격을 잃었다는 말은, 뒤집어 보면 자격이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조는 그 자격을 증명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무너졌다. 나는 그 자격이란 것이 처음부터 누구에게도 주어진 적 없는 허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사람은 완전한 인간이 되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서투르게 인간인 채로 살아가는 것이니까.
바카라을 덮으며 나는 내가 붙들고 있던 것의 정체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완벽한 얼굴이 아니라, 흔들리는 얼굴을 견디는 힘이었다. 요조에게는 없었던 그 힘을 나는 어디에서 얻었을까. 아마도 상담실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얼굴들, 그 얼굴들 하나하나가 결국은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던 순간들에서였을 것이다.
요조의 마지막 문장, 자신은 인간이 아니었다는 그 고백은 슬프지만 동시에 정직하다. 나는 그 정직함 앞에서 내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가면을 쓴 얼굴도, 가면을 벗은 얼굴도 결국은 같은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을. 그것을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아직 인간의 자격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않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