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가 끝난 자리에서

by담서제미

지난 토요일,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예식장의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하객들의 인사말이 잦아들고, 마지막 사진 한 장을 찍고 나서야 나는 엄마라는 자리에서 잠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푹 쉬었다. 몸도 마음도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들뜬 흥분도 아닌,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낯선 평온함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피곤이 몰려왔다.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몸살이 난 것처럼 온몸이 나른했다. 아마 지난 몇 달, 아니 몇 년 동안 마음 한편에 쌓아두었던 무언가가 이제야 슬그머니 빠져나간 것처럼.


생각해 보면 아들을 키운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언가를 붙잡는 일이었다. 걸음마를 배우던 손을 붙잡고, 첫 등굣길에 가방끈을 붙잡고, 사춘기의 방황하는 마음을 붙잡고, 진로를 고민하던 밤들을 붙잡고. 그렇게 붙잡고 붙잡다 보니 어느새 서른몇 해가 지나 있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나는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신부의 손을 향해 아들의 손을 건네는 그 짧은 순간, 삼십몇 년의 붙잡음이 조용히 풀렸다.


놓았다고 해서 서운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한 홀가분함이 밀려왔다. 아, 내가 할 일을 다 했구나. 이 아이가 이제 자기 삶을 자기 손으로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그 사실이 뿌듯함을 넘어 어떤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부모 노릇이란 결국 자식을 떠나보내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이제야 그 말의 무게를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며칠 전,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문득 친정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다녀간 일이 있었다. 여행 가방을 가지러 온다는 핑계였지만, 실은 자신을 키워준 외조부모께 마지막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마음 씀씀이를 보면서, 나는 이 아이가 이미 다 컸구나, 사람의 도리를 아는 어른이 되었구나 싶어 마음이 뭉클했다.


아들 결혼식 전날, 나는 유럽여행 대신 오래 읽고 싶었던 바카라들을 주문했다. 들뜬 여행 가방 대신 조용한 활자의 세계를 택한 것이다. 돌이켜보니 그것은 낯선 방식의 축하였다. 소란한 축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


이제 예식장의 북적거림은 끝났고, 집안은 다시 예전처럼 고요해졌다. 하지만 그 고요함이 예전과는 다르다. 텅 빈자리가 아니라, 무언가로 가득 찬 고요함이다. 서른몇 해를 키워낸 한 사람이 세상에 나가 자기 몫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주는 충만함. 나는 그것을 행복이라 부르기로 했다.


피곤은 며칠 더 갈 것이다. 그러나 이 피곤은 앓는 피곤이 아니라, 큰일을 무사히 치른 뒤에 오는 달콤한 피곤이다. 몸이 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이제야 안심해도 좋다고 말하는 소리다. 나는 그 소리에 순순히 몸을 맡기며, 오래도록 이 평온한 피로를 누리고 싶다.


아들을 결혼시킨 엄마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었다. 서운함보다 뿌듯함이, 상실감보다 완성감이 더 크게 자리하는 마음. 한 아이를 세상에 온전히 내보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조용하고 깊은 행복이었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한 세대가 한 세대를 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