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린
길을 걷다가, 뜬금없이 그녀가 떠올랐다. 전혜린.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신호등 앞에서 잠시 멈춰 선 순간, 그 이름이 어디선가 걸어 나왔다. 대학 시절 도서관 서가 한쪽에서 우연히 뽑아 든 바카라, 유고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전율했던 그 기억이 신호등 건너편에서 날 것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세상의 모든 문장이 나를 향해 걸어오던 나이였다. 그중에서도 그녀의 문장은 유독 뜨거웠다. 절대로 평범해지지 않겠다는 다짐, 물질보다 정신을, 안락보다 열정을 택하겠다는 고집. 그 문장들은 스무 살의 내 안에 그대로 옮겨 붙었다. 나는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살아냈다는 방식에 빠져들었다.
그 뒤로 나는 그녀가 번역한 바카라들을 하나씩 찾아 읽었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원작자의 문장을 읽는 동시에, 그 문장을 한국어로 옮긴 그녀를 상상했다. 뮌헨의 좁은 방에서, 생활비를 걱정하며 밤새 사전을 뒤졌을 한 여자를.
그 이후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독일에 가게 되면 반드시 뮌헨에 들러야지. 그녀가 걸었던 거리, 뮌헨의 몽마르트라 불리는 슈바빙거리를 걸어봐야지.
2006년, 나는 마침내 그 거리 위에 서 있었다. 슈바빙거리는 넓었다. 카페마다 사람들이 넘쳐났다. 영국 정원 쪽에서 부는 바람은 이상하게 친숙했다. 나는 정해진 목적지 없이 그저 걸었다. 그녀가 이 보도를 밟았겠구나, 이 가로등 불빛 아래를 지나갔겠구나. 발걸음마다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가 말한 “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을 나도 보고 싶었다. 그 풍경은 어떤 것일까? 회색의 포도. 비에 젖은 채로 마르지 않는 돌바닥. 낮에는 무채색으로 가라앉아 있다가, 밤이 되면 그 위로 가스등 불빛이 옅게 번지는. 레몬빛. 노랗다기엔 여리고, 희다기엔 온기가 있는 빛. 안개가 자주 끼는 뮌헨의 밤공기 속에서 그 빛은 또렷한 원이 아니라 흐릿한 얼룩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문장으로 그녀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날 나는 그녀의 영혼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문장은 사람이 떠난 뒤에도 거리 위에 남아, 다른 이의 발걸음을 불러들인다는 것이었다.
이십 년이 지난 오늘, 아무 관련 없는 길 위에서 다시 그녀가 걸어왔다. 스무 살의 나, 뮌헨의 나, 지금의 나. 세 개의 시간이 한 거리 위에서 겹쳐졌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일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남긴 문장 위를 다시 걷는 일. 그리고 그 위에 내 발자국을 하나 더 얹는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녀처럼 평범해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그 다짐은 여전히 내 걸음 어딘가에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