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황톳길을 걸었다. 발바닥에 닿는 흙은 뜨거웠고, 등 뒤로는 7월의 태양이 따갑게 내려앉았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나는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 오랜 인연이었다.
만남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만날수록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얼굴과, 만날수록 진이 빠지는 얼굴. 후자의 관계 앞에서 나는 늘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고무호스에 생긴 바늘구멍처럼, 그 관계는 조금씩 나의 에너지를 흘려보냈다. 눈에 띄지 않는 속도로, 그러나 어김없이. 만남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남는 것은 헛헛함이었고, 그 헛헛함은 매번 같은 모양이었다.
오래된 인연이라는 그 깊이 때문에 나는 여러 번 스스로를 다독였다. 서로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보듬으며 살아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그 다독임은 관계를 바꾸지 못했다. 몸은 정직했다. 만나면 만날수록 좋은 관계에서는 몸이 가벼워졌고,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는 발걸음이 자꾸만 밖으로 향했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답을 알고 있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인연 하나에 흔들리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에고, 인간아, 하고 스스로를 나무라 보기도 했지만 흔들리는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워 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이가 들수록 나를 지키는 데 드는 에너지가 더 귀해졌다. 젊은 날에는 소모되는 줄도 모르고 소모했던 것들을, 이제는 그것 하나하나에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과거에 좋아했던 사람을 지금까지 좋아야 할 이유도 없다. 사람은 저마다의 속도로 변한다. 나도 변했고, 그 사람도 변했다. 다만 변한 방향이 서로 다른 길로 벌어졌을 뿐이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한때 같은 나무 아래 있었던 두 사람이, 세월이 지나 서로 다른 그늘을 향해 걸어간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정리를 택했다.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붙들고 있기엔, 내 감정과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았다. 관계를 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내 결에 맞는 자리를 다시 찾는 일이었다. 만나면 기분이 좋은 사람들 곁에 남은 시간을 두고 싶었다. 그것이 이기심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이기심을 안고 가기로 했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마음은 편치 않았다. 수없이 되짚었고, 수없이 흔들렸다. 그러나 황톳길이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자, 명확해졌다. 이 걸음의 방향을 정한 건 결국 내 마음이었다는 것을. 인연도 계절처럼 지나간다. 지나간 계절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배운 관계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