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새벽에 눈이 떠져도 이불 속에서 버텼다. 바카라상 위 원고지는 사흘 동안 같은 페이지에서 멈춰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이 편해야 할 텐데, 마음 한구석이 자꾸 삐걱거렸다. 넷째 날 새벽, 결국 나는 일어나 앉았다. 펜을 쥐자 그 삐걱거림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오래 도록 몸에 새긴 습관은, 며칠의 게으름으로 지워지는 게 아니었다.
그날 오후, 눈썹 문신 예약이 있었다. 눈썹 문신을 하려고 한 예약이 아니라 예전에 했던 것을 지우려고 한 것이었다. 원장은 오십대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손끝이 유난히 차분했다. 마취 크림이 스며드는 십 분 동안, 그녀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스무 살엔 마흔이 아득했어요. 그 나이면 사람이 다 늙어 보였거든요. 근데 막상 마흔이 되니, 여전히 어리더라고요."
나는 눈을 감은 채 웃었다.
"저도 그랬어요. 마흔이 되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달라지긴요. 아무것도 안 달라져요."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팔십 넘은 손님도 오세요. 손이 떨려서 눈썹을 못 그리시겠다고. 근데 그분도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스무 살이랑 똑같아요."
바늘이 살갗을 스치는 감각 사이로, 문득 오래전 읽었던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도스토옙스키가 『백치』에서 남긴 말,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그 한 줄이었다. 그때는 은유로만 읽었다. 세상을 구원하는 미라니, 너무 거창해서 내 삶과는 먼 이야기 같았다. 그런데 지금, 이 작은 시술대 위에서 그 말이 다르게 들렸다.
세상을 구원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는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팔십 넘어 손이 떨려도 눈썹을 그리러 오는 마음. 그것도 어떤 구원이라면 구원이었다.
"손님도 그러세요?" 원장이 물었다.
"뭘요?"
"예뻐지고 싶은 거. 나이 들어도."
나는 잠시 대답을 미뤘다. 사실 나는 예뻐지고 싶은 것과 살아있고 싶은 것을 구분해본 적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것도, 눈썹 끝을 다듬는 것도, 결국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 아닐까. 무너지지 않으려는,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마음.
"그런 것 같아요."
나는 대답했다.
"근데 이제 창피하지 않아요. 예전엔 그런 마음이 좀 유치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원장이 거울을 건넸다. 눈썹 산이 조금 더 다듬어져 있었다. 대단한 변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작은 선 하나가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해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원장의 말을 곱씹었다. 팔십이 넘어도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살아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는 것.
그날 밤, 나는 다시 원고지 앞에 앉았다. 며칠 던져버리려 했던 습관이 다시 나를 붙잡았다. 이번엔 억지로 저항하지 않았다.
몸에 새긴 것들, 마음에 뿌리내린 것들은 억지로 뽑아낼 게 아니라, 그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눈썹 산 위로 지나간 바늘 자국처럼, 습관도 그렇게 내 안에 새겨져 있었다.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그러나 굳이 지울 필요도 없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