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날들을 위해

by담서제미

일기를 쓴 지 한 달이 넘었다. 영어로 한 편, 스페인어로 한 편. 시작은 단순했다. 그동안 두 언어를 공부한다고 해왔지만 실력은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단어를 외워도 문장 앞에서는 막막했고, 어제 배운 것을 오늘 또 처음 배우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매일 일기를 쓰자고. 대신 길게는 쓰지 말자고. 다섯 단락에서 열 단락 사이, 그 정도면 부담 없이 매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AI의 도움을 받았다. 내가 쓴 문장에서 어색한 부분을 짚어주고, 더 자연스러운 표현을 알려주었다. 혼자 사전을 뒤적이며 헤매던 시간과는 달랐다. 틀린 문장도 부끄럽지 않게 내놓을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고쳐볼 수 있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한 달이 되었다.


스페인어는 처음에 발음을 한글로 적어가며 읽었다. 부에노스 디아스, 코모 에스타스, 이런 식으로. 눈으로는 스페인어 철자를 보면서도 마음은 한글에 기대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글 표기 없이도 읽을 수 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여전히 발음은 서툴고 억양은 어색하지만, 분명히 나아지고 있었다.


내가 스페인어를 공부하기로 한 이유는 오직 하나, 여행이었다. 핸드폰 하나면 번역도 되고 대화도 어떻게든 이어진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화면을 사이에 두고 싶지 않았다. 낯선 도시의 골목에서 만난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직접 말을 건네고 싶었다. 번역기가 옮겨주는 문장이 아니라 내 입에서 나온 서툰 문장으로 대화하고 싶었다.


한 달 동안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면 처음과 지금의 문장이 다르다. 여전히 짧고 단순하지만, 예전보다 망설임이 줄었다. 문장을 만드는 속도도 조금 빨라졌다. 유창한 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매일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 흔적들이 보인다. 그 흔적들은, 내가 마음먹은 일은 어느 정도까지 밀고 나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앞으로도 이 일기는 어느 기간까지는 계속되리라. 완벽한 문장을 쓰려는 게 아니라, 오늘 하루만큼의 언어를 남기려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면, 언젠가 낯선 거리에서 낯선 사람과 스페인어로 인사를 나누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일기장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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