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시트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주파 치료기의 찌릿찌릿한 기운이 허리를 자극할 즈음, 얇은 천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둔 옆 칸에서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물리치료사의 조심스러운 질문과 나이 지긋한 환자의 담담한 전라도 사투리. 그것은 의도치 않게 타인의 생을 엿듣는 청음의 시간이었다. 이내 물리치료실을 집어삼키는 한 편의 장엄한 서사가 되었다.
"여행 좋아하세요?" "좋아하제. 근데 해외여행은 못 가 봤어. 우리나라는 안 가 본 데 빼고 다 다녔어."
소박한 자랑으로 시작된 대화는 "제일 기억에 남는 여행"을 묻는 질문을 기점으로, 시간을 거슬러 27년 전으로 올라갔다.
그녀에게 그해 겨울은 잔인했다. 외환위기의 불길이 온 나라를 태우고 지나간 자리에, 한 개인의 삶도 함께 잿더미가 되었다.
운영하던 가게를 처분하고 남은 전 재산은 고작 500만 원. 평생을 일개미처럼 일만 하며 살아온 그녀에게 찾아온 파산이라는 결말은 억울함을 넘어 허무를 안겨 주었다.
'이러려고 그동안 숨 한 번 크게 못 쉬고 살았나.' 그녀는 그 길로 공항에 가 가장 빠른 제주도행 표를 끊었고, 평생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최고급 신라호텔을 예약했다.
그것은 여행이라기보다 일종의 '우아한 자해'였을지도 모른다. 제주를 시작으로 발길 닿는 대로 떠돌며, 전 재산 500만 원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게 탕진해 버리겠다고 작정했다. 남김없이 쓰고 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이왕 망한 거 마지막을 나를 위해 쓰자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야 덜 억울할 거 같았다.
처음 마주한 제주의 바다는 아름다웠고, 최고급 호텔의 침대는 몸이 파묻힐 정도로 푹신했다. 평생 딱딱한 온돌방이나 피로에 지친 간이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던 그녀에게, 그 푹신함은 도리어 현실감을 앗아갔을지도 모른다.
오후 5시, 채 가시지 않은 낮의 온기가 서둘러 자취를 감추고 사방이 어둑해질 무렵, 거대한 객실에 홀로 남겨진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자유가 아닌 지독한 고독과 공포였다.
때마침 흘러나온 뉴스 속 인신매매 소식은 뇌관이 되었다. 평생을 규칙과 노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안전하게 살아온 이에게, 울타리 밖의 세상은 밤의 어둠과 함께 공포로 돌변했다. 전 재산을 주머니에 넣고 낯선 섬의 호화로운 방에 누워, 그녀는 밤새도록 뜬눈으로 지새웠다.
"돈도 써 봐야 쓸 줄 알지, 돈을 써 본 적이 없으니 돈이 안 써지더라고."
이튿날 아침 바로 짐을 싸서 돌아왔다는 고백에서, 나는 삶의 서글픈 관성을 보았다. 화려하게 탕진하려던 여행이 단 하룻밤 만에 끝나 버린 것이다.
우리는 행복해지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지출에도 근육이 필요하고, 누림에도 자격증처럼 숙련이 필요한 법인데, 오직 버티는 법과 아끼는 법만 배우며 살아온 이에게 갑자기 주어진 무한한 자유와 화려함은 도리어 몸에 맞지 않는 거대한 갑옷처럼 그녀를 짓눌렀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절망을 사치스럽게 소비하는 것조차 실패한 채, 다시 척박한 삶의 터전으로 복귀했다.
"어찌어찌 살다 보니 그 시절을 견뎌내고 여기까지 왔제. 남은 것은 이라고 병든 몸뚱이뿐이여."
이야기의 끝은 허무하리만큼 현실적이었다. 어찌어찌 살다 보니 그 시절을 견뎌냈단다. 특별한 기적도, 대단한 반전도 없었다. 그저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다가오는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내다 보니 1999년의 겨울은 멀어졌고, 2026년의 초여름 물리치료실 침대에 당도한 것이다.
그녀가 대가로 지불한 것은 청춘과 건강이었다. "남은 것은 병든 몸뚱이뿐"이라는 탄식은, 모진 세월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살아온 이 땅의 모든 평범한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훈장이자 서글픈 영수증이다. 고장 난 기계처럼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몸을 물리치료사에게 맡긴 채, 그녀는 젊은 물리치료사에게 나직하게 당부했다.
"물리치료사 선생님도 나같이 살지 말고 놀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살아."
그것은 평생을 인내와 의무라는 감옥에서 살아온 선배가, 이제 막 삶의 트랙에 들어선 후배에게 건네는 가장 진심 어린 조언이자 자기 삶에 대한 뼈아픈 반성문이었다.
커튼 너머로 들려온 노년의 인생사는 기계 치료를 받던 내 몸과 마음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달리고 있는가? 우리는 미래의 어느 날 마주할 행복을 위해 현재의 모든 즐거움을 유예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나중에 성공하면',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나중에 은퇴하면'이라는 미끼를 쫓아 오늘이라는 가장 확실한 선물을 저당 잡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말대로 행복과 여유도 '써 본 놈이 쓸 줄 안다.' 매일매일 조금씩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지 않은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완벽한 조건과 거액의 돈이 주어져도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1999년 겨울, 신라호텔의 푹신한 침대 위에서 밤새 공포에 떨었던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현대인들의 초상일지도 모른다.
삶은 단 하나의 화려한 결말을 보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500만 원을 들고 찾아간 제주의 밤이 비록 공포로 끝났을지언정, 그녀가 그 시절을 '어찌어찌 견뎌내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위대한 승리다. 다만, 그 위대한 승리의 끝에 남은 것이 오직 '병든 몸뚱이'뿐이라는 고백이 너무 아프게 다가올 뿐이다.
치료가 끝나고 대기실로 나오며, 나는 차마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다. 커튼 너머의 목소리로만 남은 그녀의 인생이 내 마음속에 너무나 선명한 삽화로 박혔기 때문이다. 병원 문을 열고 나서니 눈부신 초여름의 햇살과 푸른 가로수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아주 사소한 일탈일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시간을 쓰는 '행복의 근육'을 키워야겠다. 훗날 내 몸이 다 낡아 어느 물리치료실 침대에 눕게 되었을 때, 곁에 있는 이에게 "참 후회 없이 재미있게 살았노라"라고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온전히 누리는 것이야말로, 내 삶에 대한 가장 예의 바른 태도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