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by담서제미


지난 월요일, 백화점에서 선물을 샀다. 부피가 있어 들고 다니기 번거로우니 택배로 보내 주겠다고 했다. 수요일에 도착하게 해 달라고 했다. 주말에 가져가야 할 물건이었다. 매니저는 그렇게 해 드리겠다고 했고, 나는 그 말 하나를 믿고 돌아왔다.


그런데 수요일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택배가 출발했다는 문자도, 도착했다는 연락도, 문 앞에 놓였다는 흔적조차 없었다. 어, 분명 수요일에 받을 수 있게 보내 준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지. 전화를 걸었다. 매니저는 "화요일에 보냈는데요, 잠깐만요. 확인해 볼게요?" 했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수요일에 받았다고 전산에 뜬다는 거였다.


화요일에 부쳐 수요일에 이미 받으셨다는 것이다. "받은 적이 없는데요. 연락도 없었고, 배송 메시지도 없었고, 택배의 흔적조차 없었는데요."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 주겠다고 했다. 혹시나 싶어 앞집에도 물었다. 온 것이 없다고 했다.


집 주소와 연락처를 다시 문자로 보낸 뒤 혹시라도 주소와 연락처를 틀리게 적었는지 확인을 부탁했다. 잠시 후, 배송했던 기사님을 확인한 후 오늘 중으로 보내 드리겠다는 문자가 왔다. 알겠습니다, 기다릴게요. 그렇게 답을 해 놓고 앉아 있는데, 마음이 자꾸만 불편했다.


어찌 된 상황인지 파악은 되셨냐고 다시 물었다. 택배 기사가 전화를 받지 않아 직접 가지고 오시겠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던 마음이, 상황에 따라 이렇게까지 출렁일 수 있다니. 순간, 대체 마음을 관장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사람을 힘들게 하나 싶었다.


궁금해서 AI에게 물었다. 마음을 관장하는 곳이 어디야.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고 했다. 현대 과학은 뇌의 변연계가 감정을 맡고 전전두엽이 판단과 자기 조절을 맡는다고 보고, 동양의 전통과 한의학에서는 오래도록 심장을 마음의 자리로 여겼다고 했다.


같은 질문에 머리라고 답하는 시대가 있고, 가슴이라고 답하는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둘 다 옳을지도 모른다. 마음은 한 곳에 가만히 있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택배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들은 순간, 움직인 건 머리였을까, 마음이었을까. 일이 어긋났다는 신호가 들어오면 편도체가 생각보다 먼저 경보를 울린다고 했다. 그래서 미처 헤아리기도 전에 답답해지고, 명치가 먼저 조여 온다. 이어 몸이 반응한다. 교감신경이 켜지고 심장이 살짝 빨라지고 속이 상한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알아채는 것이다.


매니저가 직접 물건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 순간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 앉았다. 불편함이 가실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건, 이성보다 감정이 늘 먼저 도착하기 때문이라 했다.


먼저 도착한 손님은 좀처럼 자리를 비켜 주지 않는다. 감정이 먼저 와서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으면, 뒤늦게 도착한 이성은 문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그 잠깐의 어긋난 순서 때문에, 우리는 매번 휘청인다.


매니저가 직접 물건을 들고 오겠다는데, 결국 받을 물건은 받게 될 텐데, 무엇이 그리 급해 명치를 조였을까. 가만 생각하면 잃은 것은 없었다. 다만 '수요일'이라는 약속 하나가 어긋났을 뿐이고, 그 어긋남을 바로잡는 일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한 시간을 통째로 불편함에 내주고 말았다.


문제는 늘 그 순간을 참지 못한다는 데 있다. 매번 다독이고 매번 타이르면서도, 막상 일이 닥치면 어김없이 어리석어진다. 이미 일어난 사건이라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찾아 해결바카라을 구하면 그만인 것을. 머리는 그걸 안다. 그런데 머리가 도착하기 전에 가슴이 먼저 무너진다. 아는 것과 견디는 것은 이렇게나 다른 자리에 있다.


그러고 보면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은, 어쩌면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는 물음인지도 모르겠다. 편도체가 울리는 경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 경보 소리에 온 집을 다 내줄지 한 칸만 내줄지는 조금쯤 내가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명치가 조여 올 때, '아 또 손님이 먼저 왔구나, 곧 이성도 도착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자.' 그렇게 한 박자만 늦출 수 있다면.


오후 3시쯤, 매니저가 물건을 가져왔다. 선물은 무사히 내 손에 들어왔다. 매니저는 여전히 택배기사는 전화도 문자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한 시간 동안 끓였던 속이 무색하게,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늘 이렇다.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데,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세상이 다 어긋난 것 같다.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그래도 오늘은 적어도, 내 명치가 왜 먼저 조여 왔는지는 알게 되었다. 머리보다 먼저 도착하는 마음을 어쩌지는 못해도, 그 마음에게 "조금 늦더라도 이성이 곧 올 거야" 하고 말 한마디 건넬 줄은 알게 되었으니. 그 한마디를 익히는 데 또 얼마나 많은 택배가 어긋나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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