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입구는 활짝 열려 있었다. 커다란 통유리 너머로 안을 넌지시 들여다보니, 출렁이는 물결 외에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레인을 가르는 사람도, 벽을 짚고 숨을 고르는 사람도 없었다. 문밖에 가득하던 소음이 저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뚝 끊겼다. 이 푸른 공간이 오롯이 내 차지가 되었다.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순간은 언제나 낯설면서도 다정하다.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는 첫 감각은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서늘하지만, 이내 체온과 섞여 들며 가장 안전한 품이 되어준다.
가볍게 물을 끼얹으며 몸을 풀었다. 어깨의 긴장을 내려놓고, 골반의 중심을 잡고, 숨을 고르는 일련의 의식들. 거울 앞이 아니라 물속에서 내 몸의 정렬을 가다듬는 이 시간은, 오직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서막이다.
강사가 짚어 준 말들을 머릿속으로 차분히 복기했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조언을 떠올리며 천천히 팔을 뻗었다. 손끝이 물을 가르고, 발차기가 수면을 두드리는 규칙적인 리듬이 시작되었다.
자유형으로 나아갈 때는 세상의 소음이 물속의 웅웅 거림으로 바뀐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앞으로 가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팔을 뻗고 규칙적으로 숨을 내뱉는 것뿐이다.
몸을 뒤집어 배영으로 바꾸면 풍경이 달라진다. 시선은 높은 천장에 가 닿고, 귀는 물에 잠겨 세상의 소리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내가 내쉬고 들이마시는 숨소리, 물을 밀어내는 팔의 서걱대는 마찰음만이 고요한 수영장에 울린다.
자유형이 세상을 향해 거칠게 나아가는 일이라면, 배영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를 온전히 내려놓는 일에 가깝다. 둘을 번갈아 하다가, 막간의 휴식처럼 평영을 연습했다. 개구리처럼 물을 모아 차고 그 반동으로 잠시 미끄러지는 평영은 여전히 버겁다. 평영다운 평영을 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 잠깐의 활주에서 물과 내가 한 덩어리로 엉기는 감각이 손끝에 잡힌다.
수영을 하는 동안에는 오직 그것에만 매달린다. 세상의 모든 일이 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물속에서는 복잡한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다음 숨을 언제 내쉴지, 왼팔의 각도를 어떻게 바꿀지 같은 단순함만 남는다. 그 단순함은 헐거운 마음을 한 겹씩 깎아내, 어느새 나를 매끄럽게 만들어 놓는다.
몇 바퀴를 연달아 돌았을까. 가쁜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을 때, 레인 끝을 붙잡고 잠시 숨을 골랐다. 헐떡이며 수면에 어른거리는 물 그림자를 바라보는데, 정말 뜬금없이, 아무런 맥락도 없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머릿속을 스쳤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
멕시코 만류에서 홀로 돛단배를 타고 거대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던 노인, 산티아고.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그 늙은 어부의 뒷모습이 왜 이 고요하고 안전한 실내 수영장에서 떠올랐을까.
생각해 보면 수영장 레인과 산티아고의 바다는 닮아 있다. 물에 들어온 이상, 우리는 모두 철저히 혼자다. 나를 대신해 숨을 쉬어 줄 사람도, 내 팔을 대신 저어 줄 사람도 없다. 오직 내 근육의 힘과 내 폐활량의 한계 안에서만 나아갈 수 있다. 산티아고가 잡아 올린 물고기에 달려드는 상어 떼와 밤새 홀로 맞서야 했던 그 바다처럼, 이 푸른 레인도 결국 나 자신과 마주 서는 자리다.
노인은 거대한 물고기를 뼈대만 남긴 채 항구로 돌아왔다. 세상의 셈으로는 빈손이고,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파멸일 것이다. 하지만 노인은 패배하지 않았다. 바다 앞에서도, 제 한계 앞에서도, 그는 끝내 노 젓는 손을 놓지 않았다.
물에 잠긴 몸을 어떻게든 띄우려 발버둥 치고, 강사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팔을 뻗는 일도 그 사투와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바다에서 저마다의 청새치를 향해 돛을 올린다. 더러 상어 떼 같은 날들에 부딪혀, 공들여 끌어올린 것이 앙상한 뼈만 남기도 한다. 그래도 끝까지 멈추지 않고 물을 젓는 그 손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지도 모른다.
호흡이 다시 가라앉았다. 물은 여전히 잔잔하고 맑았다. 유난히 지치고 힘든 날, 세상이라는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듯한 날이면 나는 이제 수영장을 찾을 것 같다. 통유리 너머의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게 돌아가도, 이 네모난 푸른 공간에서만큼은 내가 온전히 나의 주인이 되므로.
산티아고는 사투를 끝내고 돌아와 사자 꿈을 꾸며 깊이 잠들었다. 젊은 날 아프리카 해변에서 보았다는 그 사자들은, 늙은 몸 안에 아직 식지 않은 무엇이 남아 있다는 표시였을 것이다.
나도 오늘 이 푸른 고요 속에서 나만의 사자 한 마리를 건져 올린다. 내일 다시 거친 파도가 나를 덮쳐 와도, 물속에서 익힌 굳건한 호흡과 멈추지 않고 팔을 뻗던 감각을 기억하는 한, 무너질지언정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경을 고쳐 쓰고 다시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푸른 물결이 부드럽게 온몸을 감싸 안았다. 나는 다시 나만의 바다를 향해 묵묵히, 따뜻하게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