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이란 무엇인가 (1)
아이들 몰래 넷플릭스에 들어가 '참교육'을 클릭했다. 1화만 보려다 결국 10화까지 보고 말았다. 요즘 넷플릭스에 볼 게 없다며 아이들이 자꾸 유튜브를 보려 하던 참이었다. 아이들과 같이 볼 수 있으려나 검열 차원에서 보려는 의도였으나 킥킥대다 눈을 가리다 하며 정신을 놓고 봤다. 청소는 선생님이 한다고 했다는 아이들의 말에 '바카라상 뒤로 밀쳐'하는 기합과 바닥이 거울이 되게 닦으라는 감독관의 엄포에 여고생 시절이 떠오르며 웃음이 터졌다.
칼부림과 수위 높은 욕설에 아이들과 함께 볼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한 회 정도는 괜찮아 보였다. 실시간으로 민원을 넣는 초등학교 학부모 편이었다. 남편이 화가 났다는 말에 감독관은 학생의 아버지 온라인 게임에 찾아가서 제 밥줄만은 끊지 말아 달라며 빈다. 그리고 가까이서 '한 번만 더 그러면 죽어'하고 일침을 날린다.
사이다 같은 장면들에 속이 다 후련하지만 현실에서 교사는 학부모에게 그렇게 할 수 없지 않은가. 지인 중 초등학교 교사 분은 지금 당장 10화 분량의 에피소드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재미있다고 신나게 넷플릭스만 보다 끝날 일이 아니다. 참교육의 첫 번째 단추는 아이들에게 잣대를 들이대기 이전에 어른으로서 우리 모습을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밤 이 부끄러운 어른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여진다.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썼던 글 일부를 첨부한다.
#2025 교육계간지 민들레 15 '부모는 어떻게 학부모가 되는가'에 실은 글
[ 학부모와 교사, '굿파트가'가 될 수 있을까 ]
저도 엄마를 불러오겠습니다
가끔 우스갯소리처럼 들리는 말이 현실일 때가 있다. 대학생 엄마가 성적 문제로 교수에게 항의를 한다거나 신입 직원의 아빠가 상사를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공부란 무엇인가』 (어크로스, 2020)의 저자 김영민 교수는 언젠가 맞닥뜨릴지 모르는 상황에 자신만의 대비바카라을 마련한다.
“성적이 안 좋다고 여러분들 엄마가 연구실에 찾아와서 저를 괴롭히면, 저도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도 엄마를 불러올 수밖에.”
그의 위트에 한참을 웃다가 문득 생각에 잠겼다. ‘설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과연 나는 그런 엄마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자식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분별력은 잠시 내려놓고 행동해도 된다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는 건 아닌가. 내 자식만 잘 키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상상일지 나는 알고 있는가.
얼마 전, 5학년 아이의 학부모 공개수업에 갔을 때다. 수업이 끝난 후 부모들이 모인 자리에 담임 선생님이 아닌 교감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요즘 우리 학년 선생님들이 잘 웃질 않으십니다.”
교감 선생님은 안경을 고쳐 쓰며 근엄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업무 과다로 선생님들이 피로하신가, 아니면 아이들이 말을 안 듣나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다. 자신의 자녀가 원하는 선택 과목을 듣지 못했다는 학부모의 민원부터 크고 작은 학교폭력 문제까지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고 했다. 교감 선생님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부모의 과한 개입과 이기적인 태도가 교사들을 지치게 한다고 했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교사들이 교실 안에서 진정으로 해야 할 교육을 방해한다고 말이다.
“어머님들은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만나러 교실에 들어가실 때
어떤 표정과 마음이길 바라십니까?”
교감 선생님은 부모들에게 이런 질문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설문 조사(2023)에 따르면 66.1%의 교사가 가장 스트레스를 느끼는 요인으로 ‘학부모’를 꼽았다. 선생님들이 느끼는 민원 스트레스 정도는 97.9%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수업 그리고 아이들과의 소통에 힘써야 할 교사들은 자신들을 감정노동자라고 느끼고 있었다. 악성 민원은 소수가 벌이는 일이지만 그 파장은 학생과 교사의 일상을 흔들고, 중요한 동력을 잃게 한다. 분별없는 작은 불평이 보편화될수록 가장 큰 손해를 입는 이는 바로 우리 아이들일 것이다.
학부모들이 잠시 잊은 건 아닐까. 학교는 아이가 자기 등보다 큰 가방을 메고 가도 부모가 그 가방을 대신 들어줄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이곳은 구청에 있는 민원처리실이 아니라는 것을. 전인적인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모두가 애쓰는 곳이라는 것을. 마냥 내 아이가 손 들고 발표하는 재롱을 보고픈 마음에 참석했던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되짚어보며. 아이들 앞에서 웃지 않는 선생님을 상상하며.
얼마 전, 초등학생인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전화로 상담을 했다. 시간은 15분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서로 짧게 인사를 나눈 후, 선생님은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자신이 알아야 할 점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구체적인 질문과 요구에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1시간을 얘기할 것만 같은 아줌마처럼 굴고 싶진 않았지만 다른 얘기는 하면 안 될 것 같아 긴장이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교우관계와 학습태도를 물었고, 집에서 숙제를 성실히 안 한다고 살짝 아이 험담을 했다. 10분이 지나자 마음이 약간 급해졌다. 통화가 끝나기 전에, 얼굴도 보지 못한 선생님의 말을 끊다시피 하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선생님, 어려운 시기에 고생이 많으시죠. 그래도 저는 아이들이 커가는 중요한 한때에 함께 하시는 중요하고 영향력이 있는 분이 선생님이라 생각합니다. 힘내시면 좋겠어요.”
“네, 어머니. 말씀 감사합니다.”
의례적인 인사일까 했는데 선생님은 이런 말을 덧붙이셨다.
“가끔 저에게 아이들이 이빨이 빠졌다고 가져올 때가 있는데요. 저는 아이들이 이빨 빠지는 시기를 함께 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AI처럼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마지막 몇 분 동안 인간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적인 만남이란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내 아이, 남의 아이, 아이의 선생님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두루 살필 수 있는 부모가 된다면 교사와 부모는 참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도와줄 든든한 파트너가 있다고 생각하는 선생님들은 신바람 나게 아이들의 성장을 도와주실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이가 흔들리는 그 시간을 함께 하는 우리. 나는 선생님의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교실이라는 아이와 선생님의 세계에 함부로 침범하지 않고, 선생님을 한 사람으로 존중하며.
나도 부모인지라, 아이가 전하는 학교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최대한 객관적이 되려고 노력하다가도 뭔가 아이가 불이익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들 때면 발끈하기도 한다. 학기 초,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담임 선생님이 너무 엄격하고 단호하시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중간놀이 후 교실에 1분이라도 늦게 들어오면 호되게 혼나고, 자신은 규칙을 잘 지켰는데 다른 친구 때문에 반 전체가 하교를 늦게 했다며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친구들이 자신을 놀린다거나, 친구들의 놀이에서 소외되었다고 말하는 날도 허다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더 나누어 보면 서로 좋아하는 놀이가 달랐던 건데 아이 혼자서 소외되었다고 느꼈다거나, 친구만 놀린 게 아니라 자기도 놀리면서 같이 장난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이에게 잠시 선생님으로 변신해 보자는 제안을 했다. 몇 분 지나고 나니 아이는 자기들이 말을 안 들어 선생님도 힘드시겠다는 말을 했다. 씩씩거리던 아이의 마음이 가라앉을 즈음을 틈타 나는 말했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여러 친구들이 함께 지내는 교실에서 시간과 규칙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구구단을 외우는 일보다 친구와 선생님을 존중하는 일이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아이의 말만 듣고 선생님께 바로 전화하지 않는 것. 잠시 멈추어 아이와 함께 상황을 판단하고 분별해 보는 것. 아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먼저 살피게 하는 것. 아이의 성장을 돕기 위해 부모로서 그것부터 노력해보려 한다. 선생님도 인간이니 실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아이를 비롯한 모든 아이들을 위해 애써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생님을 믿고 아이의 성장을 위해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선생님이 많이 웃으셨어.” 말을 전하는 아이도 마음이 편안해 보였다. “선생님들이 잘 웃지를 않습니다”라던 교감 선생님 말씀이 내내 마음에 남아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선생님들이 마음 편히 교실에서 아이들과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린이는 멀리 간다』 (김지은, 창비, 2025)의 저자는 바카라 속에서 〈요정의 아이 샹즐랭〉이라는 동화를 소개하며 이런 말을 한다. 내 아이만 뚫어지게 보는 사람들은 눈을 떴더라도 눈을 질끈 감고 사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모든 학부모가 내 아이만을 뚫어지게 보는 돋보기를 내려놓고, 협력과 존중의 태도로 선생님을 마주한다면 선생님의 엄마가 학교에 오는 일은 막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