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학교는

참교육이란 무엇인가 (2)

by김세인
“수업받기 싫으면 받지 마.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그건 너희들 인생이니까.
근데 남의 인생은 방해하지 마라.”


20대 1 정도 됐을까. 드라마 〈참교육〉 속 교권보호국 감독관이 조폭들을 상대한다. 조폭클럽에 가입한 고등학생의 형님들이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터벅터벅 걸어가 말한다. 너희들이 선생님에게 바카라을 복사해 오라고 시키고 약한 학생들을 괴롭히는 동안 절실히 수업을 받고 싶어 하는 남의 인생이 괜찮지 않다고. 그러니 사과하라고.


정반대 분위기였던 나의 여고생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우리 지역 모의고사 1등, 수능 성적 1등인 학교였다. 강남 8 학군이 아닌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였는데도 대부분 학생들의 평균 성적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승했다. 아침 8시면 우리는 선생님들이 자체 제작한 모의고사 두루말이 문제집을 펴고, 선생님들은 EBS 강사 못지않은 실력으로 육성 방송을 했다.


생활지도는 2주에 한 번, 각 학년의 호랑이 선생님들이 교문 앞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점검했다. 양말은 흰색, 신발은 검은색 단화. 머리는 단발이면 귀밑 3 센티미터, 아니면 검정 고무줄로 질끈 묶어야 했다. 교문부터 학교 입구까지 거리는 50미터도 안 되는데 500미터 정도 걷는 기분이었다. 정수리 뒤쪽을 얇은 빗으로 띄워 순간 짧게 보이는 착시, 일명 후카시를 넣는 소심한 반항을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었다.


학생부장 선생님들은 늘 손에 매를 들고 면학 분위기에 방해되는 놈이 있나 순찰을 돌았다. 진짜 무서운 선생님은 눈빛만으로도 학생들을 압도했다.


선생님 몰래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도 있긴 했다. 그들은 남의 인생을 방해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 옥상에 가서 조용히 흡연을 하고 교실로 돌아왔다. 1학년 때 일진이었던 학생은 3학년이 되면 옥상에서 자신의 인생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단단했으므로 적어도 학교 안에서 그들이 활개를 칠 수 없었다.


옆학교를 다니던 남동생의 고등학교 공개수업에 참여할 때마다 엄마는 담임 선생님께 말을 안 들으면 때려서라도 사람답게 키워달라고 했다. 반갑게 엄마에게 손을 흔들던 남동생은 그 뒤로 자주 엎드려뻗쳐를 해야 했지만 선생님과의 의리도 두터웠다.




10여 년 전쯤 나는 교사 자격증을 따고 학교에 근무했다. 근무지인 남자 고등학교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학기 초, 조용히 하라는 여선생님의 말에 볼펜을 던진 남학생은 그날 하루 종일 교무실에 무릎을 꿇고 반성문을 썼다. 부모님께도 이 사실이 통보되었다. 이후 연말까지 볼펜을 던지는 시늉조차 하는 학생은 없었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어 체벌이 금지되기 시작하고, 학생들이 교사평가를 작성하고,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못 본체 하는 게 낫다고 하기 시작한 때였지만 교사들은 아이들을 무서워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드라마 〈참교육〉 속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무섭다고 했다. 학교는 빠르게 변했고, 학생과 학부모의 목소리가 커졌고, 그들이 교사에게 꺼내는 말들은 달라졌다. 흡연 지도를 하던 선생님들이 줄어들었고, 교사들의 명예퇴직 신청이 늘었다.


무너진 교사의 권위, 축소된 슬롯로서의 역할을 잃어가는 학교는 교육에 대한 무력감에 빠졌다. 가끔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만나면 그들은 교직을 그만둔 내가 부럽다고 했다. 복직하면 스트레스로 몸 상하고 월급보다 병원비가 더 들 수도 있으니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그렇게들 말했다. 학교가 그렇게 엉망이 되었냐고 물었더니 지인 선생님이 말했다. 여전히 예쁜 아이들이 더 많지만 극소수의 프로 민원인과 엉망인 아이들이 분위기를 다 망친다고.


아동학대와 학교 폭력 교육을 기가 막히게 받아 자신이 당한 부당함은 조금도 참지 못하는 아이들, 학교 현장에서 참교육은 커녕 회의감에 가득 차 있을 교사들, 내새끼를 위해 주위에 적이 오는지 눈과 귀가 바짝 긴장해 있는 듯한 학부모들. 우리의 삼각관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러다 학교가 밤낮으로 친구가 친구를, 아이들과 학부모가 선생님을 신고하고 싸우는 곳이 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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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능 프로그램에 강남 지역 고등학교의 전 교장 선생님이 출연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오랜만에 돌아간 학교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학생들이 마음 놓고 엎드려 자는 곳, 수업 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는 곳, 내 새끼에게 조그마한 불이익이라도 있으면 학부모들이 거칠게 항의하는 곳이더라고. 그는 꼴찌도 행복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세심하게 그들의 자존감과 마음을 챙기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마음을 담아 학부모들에게 편지도 보냈다.


‘여기는 사람을 교육하는 학교이지 성적으로 먹고사는 학원이 아닙니다. 명문대 몇 명 갔는지 궁금해 마시고 내 아이가 무얼 할 때 행복한지 살펴봐 주십시오.’

그의 편지는 학교라는 장소가 아이들에게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학생에게 인권이란 없던 라떼 시절을 소환한다고, 드라마처럼 다시 체벌을 부활시킨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 현장은 적어도 학교 안팎으로 누군가에게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그 누군가가 학생이라면 손바닥을 때려서라도 참교육을 시켜야 하고, 학부모라면 법적 시스템을 만들어 막아야 하고, 교사라면 징계를 해서라도 정상화시켜야 한다. 교육감 당선인들은 포퓰리즘 정바카라으로 돈 뿌릴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학교 안을 제대로 살피고, 그 안에 목소리를 듣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경기도 교육감 당선인은 얼마 전 드라마에서 나온 가상의 기관인 교권보호국 신설에 대해 공개 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해병대 출신 교관을 고용하여 학생들의 군기를 잡는 것이 참교육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학생들이 무섭다는 드라마 속 선생님은 문제 학생 앞으로 다가가려는 감독관을 막아서며 말한다.


“선생님, 제 수업입니다.”


학교와 선생님들은 다시 단단해져야 한다. 학교가 굳건하게 단단해질 수 있도록 모두가 도와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칠 수 있다. 약해지면 안 된다.



*교육계간지 [민들레]에 실은 글 일부가 인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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