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028. 대학 이름이 아이의 가능성을 결정할까요?

대학을 잘 못 가면 패배자의 인생이 되나요?

by듀르크하임

안녕하세요! 교육학하는 컨설턴트 듀르크하임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수시 원서 상담을 마치고,

고위험군 청소년을 포함하여 꽤 여러 케이스가 느닷없이 밀려들어 글을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오늘 칼럼은, 추석 연휴 중에 들어온 질문들을 취합하다가 주제를 잡았습니다.


오늘 한 학부모님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아이가 명문대 반도체학과에 가지 못할 것 같다며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학벌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학교를 누가 인정해줘요?"

이 말을 단순한 학벌 욕심으로 듣기 어려웠습니다.
아이가 정말 묻고 있던 것은 대학의 평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평판이었습니다.

"그 학교를 누가 인정해줘요?"라는 말 안에는 이런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누가 인정해줘요?"

아이는 대학을 묻고 있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묻고 있었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탈락하였을 때, 자신이 실패자가 된 것이 아닌지 묻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요즘 아이들이 입시를 통과하며 겪는 가장 깊은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너무 많은 입시 언어를 배웁니다.

몇 등급, 몇 퍼센트, 어느 라인, 인서울, 메디컬, 반도체, 상향, 적정, 안정.

이런 표현들은 수시 원서를 쓸 때도 필요하고, 정시 가능성을 볼 때도 필요합니다.
입시 상담에서 현실을 보지 않는 말은 무바카라임하죠.

아이의 현재 위치, 가능한 선택지, 위험한 선택과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따져보는 일도 필요합니다.

다만 이런 말들이 학생들의 현재를 설명하는 전부가 되어 버릴 때 문제가 생깁니다.

입시 언어는 아이에게 입시적 위치를 말해줄 뿐입니다.
입시적 위치만으로는 한 사람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나는 어느 정도 대학에 갈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결과론적 사고가 아닙니다.


나는 어떤 문제를 오래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공부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배워 누구에게 기여하고 싶은 사람인가.
나는 어떤 어려움을 감당하며 살아갈 사람인가.

이런 질문이 아이들의 생각에 함께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입시를 오래 통과하다 보면 이 문장들이 뒤로 밀립니다.
아이의 관심, 성향, 질문, 배움의 방향은 점점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 대학 이름이 들어옵니다.

아이는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을 설명할 때 대학 이름부터 꺼내게 됩니다.
대학 이름이 곧 자기소개가 됩니다.
그래서 원하는 대학이 흔들리면 자기소개 전체가 무너집니다.


아이들이 대학 이름에 매달리는 이유가 단순히 허영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설명할 다른 언어를 충분히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있지만, 그것을 공부로 바꾸는 법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잘하고 싶은 것은 있지만, 잘하게 되기까지 견뎌야 하는 시간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진로를 정하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한 분야의 일이 실제로 어떤 노동으로 이루어지는지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대학 이후에 어떤 공부가 이어지고 어떤 실력으로 슬롯와 만나게 되는지도 충분히 상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결국 자신이 가장 흔하게 접하던 가치, 우리 슬롯가 거의 모든 학생에게 지향하도록 가르쳐온 가치, 곧 ‘명문대학교의 네임밸류’를 붙잡게 됩니다.

"좋은 대학에 가야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된다."

이러한 가치관을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아이는 불안한 것입니다. 부모들과 똑같이 말입니다.
내가 무엇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슬롯가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인정의 방식에 기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벌이 전부는 아니야'라는 말이 아이에게 잘 닿지 않습니다.


틀린 말이라서가 아닙니다.
아이의 불안이 있는 자리까지 내려가지 못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이미 다른 곳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학교가 아니면 저는 무엇으로 설명되나요?"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학벌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하면, 아이 입장에서는 어른의 위로, 그냥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듣기 흔한 좋은 말처럼 들릴 뿐입니다.

대학 이름은 현실에서 분명히 작동합니다.

어떤 대학은 더 좋은 교육 자원을 가지고 있고, 어떤 학과는 더 많은 연구 기회와 프로젝트를 제공합니다. 좋은 교수, 좋은 동료, 좋은 실험실, 좋은 인맥 네트워크는 실제로 기회가 됩니다. 어떤 이름은 슬롯에서 더 빠르게 신뢰를 얻고, 어떤 학교의 졸업장은 첫 관문에서 더 쉽게 읽히기도 합니다.


문제는 대학 이름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곧바로 대학이 나를 대신 살아줄 것이라는 착각으로 이어질 때입니다.

정말 많은 학생들이 대학을 학원처럼 다닙니다. 대학은 입시 학원이 아닌데, 취업 입시 학원처럼 다닙니다. 학교를 입시 학원처럼 다니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한 사람이 자라갈 바탕입니다.
바탕 역시 중요 하지만 바탕이 신분이 되지는 않습니다.

좋은 바탕을 얻은 사람도 그 위에서 아무것도 쌓지 않으면 멈춥니다.
덜 화려한 바탕에서 시작한 사람도 오래 공부하고, 실패하고, 다시 쌓으면 다른 길을 엽니다.


모교는 신분이 아닙니다. 내가 자라난 바탕입니다. 이 말을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습니다. 대학 입학까지의 게임과 대학 입학 이후의 게임은 다릅니다. 입시까지는 가정 배경, 지역, 학교, 학군, 교사, 친구, 사교육 접근성, 전형 구조, 시험 당일의 컨디션까지 수많은 조건이 함께 작동합니다.


물론 노력은 중요합니다. 노력 없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노력만으로 모든 결과를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입시는 한 사람의 성실함과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여주지만, 그 사람 전체를 다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다시 다른 시간이 시작됩니다. 어떤 수업을 듣는지, 어떤 바카라을 읽었는지, 어떤 교수와 만나는지, 어떤 동료와 공부했는지 뿐만 아니라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했는지, 어떤 현장을 경험했는지, 어떤 문제를 오래 탐구했는지.... 이때부터는 학교 이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전공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시간, 어려운 개념을 견디는 시간, 질문하고 실패하고 다시 배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대학 이후의 세계를 잘 모릅니다. 전공 공부가 실제로 무엇인지 모릅니다. 연구실이 어떤 곳인지 모릅니다. 복수전공이 얼마나 많은 노동을 요구하는지 모릅니다. 인턴십이 어떤 경험인지, 첫 직무가 이후의 경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잘 모릅니다. 대학원에서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연구자가 어떤 시간을 견디는지, 회사에서 신입이 어떤 일을 배우며 성장하는지도 막연합니다.


그러니 대학 입학 순간에 모든 의미가 몰립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인생이 어느 정도 보장될 것처럼 느끼고,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면 중요한 문이 닫힌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진로교육이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로교육은 "무슨 학과 갈래?"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어떤 종류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가
남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일 중에서 내가 조금 더 버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너는 어떤 문제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가
대학에 간 뒤에도 계속 배우고 싶은 마음이,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는가
그 학교 이름이 아니라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들이 무엇인가


요즘 상담을 하다 보면 빠르게 돈을 벌고 싶다는 아이들도 자주 만납니다. 전업 투자자로 살겠다는 아이도 있고, 대학까지 가서 왜 또 공부해야 하느냐고 묻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공부했는데 취업해서 다시 힘든 일을 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단순히 철없다고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너무 일찍 경쟁을 경험했습니다. 공부는 힘들었고, 대학은 멀었고, 노동은 고단해 보이고, SNS에는 빠른 성공담이 넘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아이는 대학 이름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고, 어떤 아이는 빠른 돈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다 같은 질문 앞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여기서 노동에 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돈을 번다는 것은 대체로 남이 싫어하는 일, 어려워하는 일, 오래 걸리는 일, 훈련이 필요한 일을 감당하는 과정입니다. 남들이 쉽게 대신할 수 없는 일을 할 때, 그 일에는 가치가 생깁니다.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고, 누군가의 시간을 줄이고, 누군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대신 짊어지는 과정 속에서 노동은 보상을 받습니다.


전공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도체학과에 가고 싶다면 물리와 수학과 공학의 언어를 견뎌야 합니다. 기계공학을 하려면 역학과 설계와 계산을 견뎌야 합니다. 심리학을 하려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고, 통계와 연구방법과 긴 글 읽기를 견뎌야 합니다. 교육학을 하려면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 제도, 슬롯, 발달, 평가, 불평등의 문제까지 붙잡아야 합니다. 대학 이름을 얻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그 공부를 실제로 견디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디며 쌓은 실력이 결국 아이를 설명하게 됩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그 학교를 누가 인정해줘요?'라고 물을 때, 우리는 '그 학교도 괜찮다'는 말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 다시 자기소개의 기회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너는 어느 대학의 학생이기 전에, 어떤 문제를 붙잡을 사람인가. 너는 어느 학과의 이름을 얻기 전에, 어떤 공부를 견딜 사람인가. 너는 어떤 이름표를 달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 타인에게 기여할 사람인가. 대학 이름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입시는 진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대학 이름이 아이의 가능성 전체를 대신 설명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자기 가능성을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했을 때, 대학 이름과 전공은 가장 익숙하고 손쉬운 자기소개가 됩니다. 반대로 아이가 자기 질문과 자기 공부와 자기 노동의 감각을 갖기 시작하면, 대학은 신분이 아니라 바탕이 됩니다.

저는 아이들이 대학에 끌려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학을 자기 삶의 바탕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입시로 묻고, 교육으로 답한다.

본 글은 교육학하는 컨설턴트 듀르크하임, 컨설턴트 박태찬의 교육상담 기록과 해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글의 저작권은 컨설턴트 박태찬에게 있으며, 무단 전재, 복제, 재배포, 2차 가공 및 상업적 활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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