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버림
니가 읽으라고 쓴 글이 아니에요
글은 안 쓰고는 못 배겨서 쓰는 겁니다
편지는 시와 같습니다
시는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쓰는 겁니다
내 글은 전부 편지입니다
니가 읽으라고 쓰는 편지가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훔쳐보는 중입니다
이 편지의 수신인은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읽을 편지이기 때문에
이 편지는 과거에 읽혔고 과거에 읽힐 것이며
미래에 읽힐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나는 읽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여기에 와서 이해했다는 얼굴을 하는 순간
대개 늦게 온 사람들의 오만한 자세입니다
당신은 문장을 읽었다고 생각하겠지요
아닙니다 당신은 남의 방에 들어온 겁니다
불 꺼진 방에 발을 들였고 아직 마르지 않은 물컵을 보았고
접힌 종이를 펼쳤고
열지 말라고 적힌 서랍을 열었습니다 그러고는 말합니다
글이 어렵다 글이 불친절하다 글이 너무 어둡다 글이 위험하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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