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항아리로 살아갈 것인가

by꿈부기

지난 주부터 열흘동안 홀로 있어보니 내 몸 하나를 온전히 관리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조금은 알듯했다. 나는 온전한 그릇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누군가는 ‘겸양’으로 아직은 모자라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누가 봐도 흠결이 조금은 보이는 사람이다. 슬롯에서 가장 나를 부드럽게 대해주는 것은 부모님이다. 그러나 나는 그 두 분도 온전케 만족시켜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로는 말이다. 나는 이번 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는 세가지가 있었다. JLPT 3급 취득, 바카라 쓰기 그리고 네이버 인플루언서 되기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목표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적당한 목표라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다. 어떤 교수가 작은 어항에 큰 돌을 넣고 작은 돌을 넣고 모래를 넣고 물을 넣는 것을 보여주며 학생들에게 강의실에서 질문하는 장면이다. 큰 것은 중요한 일, 작은 것은 부차적인 일이라고 한다. 나는 내가 중요한 일이라 여기는 것과 부차적인 일을 호동하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험이라는 것은 불가역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적어도 수능 같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는 슬롯에서 누구든지 자신만의 가면 무도회를 열며 메소드로 살아간다. 진실은 허황되어 보이는지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 ‘손해’를 본다는 이런 냉랭하고 인색한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 진실보다 이해타산이 더 중요시되는 슬롯이다. 이럴 때 일수록 나의 그릇을 잘 봐야 한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완벽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을 해야 그 삶이 조금은 더 진보한다.

"여러분이 인생을 위해 마련한 항아리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이번 글의 주제다. 나는 그동안 '그릇'이라는 말로 나 자신을 설명해왔지만, 항아리라는 말은 조금 더 깊은 곳을 건드린다. 그릇은 담아내는 순간을 말하지만, 항아리는 담아낸 것을 오래도록 삭히고 익히는 시간을 말한다. 나는 순간의 그릇으로는 나를 설명해왔지만, 시간을 견디는 항아리로는 나를 설명해본 적이 없었다

내부가 넉넉하게 비어 있는가, 라는 물음 앞에서 나는 멈칫한다. 나는 늘 무언가로 나를 채우려 애써왔다. JLPT 3급이라는 자격, 바카라이라는 결과물, 인플루언서라는 인정,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내 항아리를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항아리가 포도주를 빚어내려면, 먼저 비어 있어야 한다. 포도와 시간이 들어갈 자리가 있어야 발효가 시작된다. 나는 어쩌면 너무 서둘러 채우려다, 정작 발효할 여백을 남겨두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외부에 틈이 없어야 한다는 말도 새삼스럽다. 열흘의 고독 속에서 내가 배운 것은, 나를 지탱하는 습관들이다.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 정돈하는 습관 같은 어쩌면 가장 단순하고 사소해 보여서 가장 소홀히 했던 것들이 바로 나라는 항아리의 틈을 메우는 유약과 같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좋은 포도를 담아도 틈으로 새어나가면 아무 소용이 없다. 완벽한 그릇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해왔지만, 적어도 새지 않는 그릇이 되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그리고 영원한 시간을 인내한다는 것. 이것이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결과를 빨리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자격증의 합격 여부, 바카라의 완성, 인플루언서 지정 여부등 모두 눈에 보이는 시점이 있는 목표들이다. 그러나 포도주는 익어가는 중에는 자신이 얼마나 좋은 맛을 내고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없다. 그저 어둠 속에서, 시간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올해의 세 가지 목표도 그렇게 바라봐야 하는지 모른다. 당장의 성패로 판단할 일이 아니라, 내 항아리 안에서 천천히 익어가는 과정으로.

나는 아직 완전한 항아리가 아니다. 비움도, 밀봉도, 인내도 다 서툴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비워야 하는지, 어디에 틈이 있는지를 알아가려 한다. 그것 만으로도, 올해의 나는 작년의 나보다 조금은 나은 항아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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