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 버클리

그리자벨라는 아직 노래한다.

bydole s suk

그리자벨라는 아직 노래한다.

2026년 10월 18일(일) 3:00pm, 라미라다 극장(La Mirada Theatre for the Performing Arts) — Betty Buckley in Concert with Christian Jacob


개막 30분 전, 극장 1층 로비는 텅 비어 있었다. 벽난로 옆 소파와 검은 천을 씌운 스탠딩 테이블 두 개,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 조명만이 손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2층 라운지는 더 조용했다. 밧줄을 엮은 천장 아래 오렌지빛 바가 재즈 클럽처럼 빛나는데, 셰브런 무늬 마루 한가운데 노란 '미끄럼 주의' 표지판 하나가 조명을 독차지하고 서 있었다. 이날 발코니 표는 단 6장이 팔렸고, 극장은 그 여섯 명을 아래층으로 안내한 뒤 발코니를 닫았다. 발코니 담당으로 배치된 어셔들은 덕분에 할 일을 일찍 마치고 아래층 객석에 앉았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관객은 350명 남짓. 브로드웨이의 전설을 맞기엔 조촐한 숫자지만, 이 가수에게는 오히려 익숙한 크기다. 베티 버클리가 가장 빛나는 곳은 뉴욕 퍼블릭 시어터 안의 작은 클럽 조스 펍같은 무대이고, 이번 투어의 레퍼토리도 2025년 그곳 레지던시 실황을 담은 새 앨범 《Enough》에서 나왔다. 인터미션 없이 75분.


무대에 오른 버클리는 하얀 은발에 79세였다. 1947년 텍사스 빅스프링에서 태어나 포트워스에서 자랐고, 대학 시절 지역 신문 포트워스 프레스에서 기사를 쓰던 기자 지망생이었다. 1969년 뉴욕에 도착한 첫날 뮤지컬 《1776》의 마지막 오디션에 들어갔다가 다음 날 아침 배역을 받았다.


B85F4A17-E304-4BEF-9E52-CC0F341293A1_1_105_c.jpeg

공연 전, 텅 비어 있는 라미라다 극장 1층 로비.


첫 인사는 변명으로 시작했다. 텍사스에서 왔는데 남캘리포니아 특유의 건조한 산타아나 강풍예보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고, 가습기까지 두고 왔다는 것이다. "이게 제 핑계들입니다, 여러분. 미리 말씀드려 두려고요." 그리고 공연 내내 그녀는 콧물과 싸웠다. 무대 위 전설의 손에 들린 손수건은 이날 공연의 숨은 소품이었다.


그녀는 곡을 고르는 기준을 설명했다. 사람들은 자신을 브로드웨이 가수로 알지만, 싱어송라이터의 노래와 아메리칸 송북의 스탠더드, 뮤지컬 넘버를 고루 부르고 싶다고 했다. 올해 곡을 고르면서 자꾸 1960년대에 듣고 자란 노래들이 귀에 걸렸는데, 그 노래들이 지금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 앞에서 놀랄 만큼 생생하게 들렸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베이비붐 세대'라고 소개하며 웃은 그녀는 제임스 테일러로 문을 열고,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 밥 딜런으로 이어갔다. 의기소침한 날에도 옷을 챙겨 입고 희망을 노래하러 나왔다는 Hope의 고백은, 콧물을 참으며 무대에 선 그녀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이 공연에서 가장 오래 남은 건 노래보다 한 일화였다. 스물네 살 때 그녀는 건축가이자 사상가 버크민스터 풀러의 강연을 들었다. 지오데식 돔을 만들고 '우주선 지구호'라는 말을 퍼뜨린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행성에 탄 승무원이니, 할 수 있는 최선은 서로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그 실천의 예로 풀러는 공중화장실 바닥에 휴지가 떨어져 있으면 주우라고 했고, 버클리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 그렇게 한다고 했다. 토니상 수상자가 공항 화장실에서 휴지를 줍는 모습을 상상하니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녀는 오늘 고른 노래들도 여러분에게 그렇게 쓸모 있기를 바란다고 말을 맺었다.


곡 선정에 있었던 한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그녀는 몇 해 전 온라인에서 엄마들이 부엌에서 아기에게 불러주며 유행했다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코델리아의 〈Little Life〉를 꺼냈다. 이 곡 뒤에는 20년 파트너 크리스티앙 자콥과의 싸움이 있었다. 두 사람은 곡을 고를 때 반드시 합의해야 하는데, 프랑스 사람인 자콥은 단칼에 "농(Non)"이라고 했다. 보통은 버클리가 물러서지만 이번엔 끈질기게 다시 들어보라고 졸랐고, 결국 자콥은 그녀가 꼽는 최고의 편곡 하나를 내놓았다. 원곡과 전혀 다른 그 편곡 앞에서 객석은 조용해졌다.


17F812E3-7997-47E6-9439-7BC190070D7C_1_201_a.jpeg

라미라다 극장 이번 시즌 안내바카라자에 들어있는 베티 버클리의 공연 안내.


그리고, 역시 파이널을 장식한〈Memory〉. 그녀는 43년 넘게 이 노래를 불러왔다고 했다. 1982년 브로드웨이 윈터 가든 극장에서 캣츠의 그리자벨라로 이 노래를 처음 소개했고, 이듬해 토니상을 받았다. 그때 그녀는 서른다섯이었다. 많은 가수가 평생 갖지 못하는 '시그니처 송'을 가진 것에 감사한다는 그녀는, 이제야 그리자벨라에게 어울리는 나이가 됐다는 듯 웃었다. 79세의 〈Memory〉는 35세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고음은 조심스러웠고 콧물은 여전했지만, 늙고 버림받은 고양이가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는 노래를 이제 그녀는 연기하지 않고 그냥 살아서 불렀다.


1982년, 그녀가 윈터 가든 극장에서 처음 이 노래를 부르던 그해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막 연극을 보기 시작해 객석에서 가슴이 뛰던 시절이다. 그 시절 한국에서 《캣츠》 무대를 볼 길은 없었고, 〈Memory〉는 FM 라디오를 타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목소리로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나는 스트라이샌드부터 떠올린다. 같은 해 지구 반대편에서 서른다섯 살 배우와 십대의 소년은 각자 인생이 바뀌는 중이었지만, 소년이 아는 〈Memory〉의 주인은 라디오 속 다른 사람이었다. 44년이 흘러 라미라다의 일요일 오후, 오래 알던 그 노래의 원래 주인을 나는 처음 만났다. 재회인 줄 알았는데 첫 만남이었다.

앙코르는 프레드 로저스(Fred Rogers)의 〈Won’t You Be My Neighbor?〉였다. 미국 아이들이 TV 앞에서 수십 년간 들어온, 이웃이 되어 달라는 그 노래다. 우주선 지구호의 승무원들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로 이보다 나은 곡은 없었다.


극장을 나서며 로비를 지나는데, 아까 텅 비어 있던 그 공간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혹시 바닥에 떨어진 휴지가 없나 둘러보게 된 건, 아마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Dia de los Muertos - 죽은 자들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