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돌아오는 사람들
해마다 돌아오는 사람들
2026년 10월 17일(토) 2:00pm, 라미라다 극장(La Mirada Theatre for the Performing Arts) —Día de los Muertos
죽은 자들은 해마다 한 번 집으로 돌아온다고 멕시코 사람들은 믿는다. 라미라다 극장에도 해마다 한 번 돌아오는 손님이 있다. 이 무용단의 죽은 자들의 날 공연이다. 극장의 시즌 브로슈어도 이 공연을 소개하며 관객의 성원에 힘입어 다시 돌아왔다고 적었다. 올해도 토요일 하루, 오후 2시와 저녁 7시 두 차례 무대에 올랐다. 처음 이 공연을 봤을 때는 순전히 호기심이었다. 망자 분장을 한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 호기심이 몇 해를 지나면서 슬그머니 익숙함으로, 솔직히 말하면 약간의 지루함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매년 본다. 지루하다면서 매년 찾아가는 것, 어쩌면 그게 이 명절의 정신과 그리 멀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이맘때 미국에서는 이 명절을 흔히 '멕시코판 할로윈(Halloween)'이라고 부른다. 날짜도 붙어 있고 죽음의 얼굴들이 등장하니 그럴 법하다. 할로윈이 10월 31일이고 죽은 자들의 날은 바로 다음 날인 11월 1일과 2일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둘은 정반대에 가깝다. 할로윈은 켈트족의 삼하인에서 비롯된, 저승에서 넘어오는 영혼을 무서운 분장으로 겁주어 쫓아내는 밤이다. 죽은 자들의 날은 그 영혼을 반갑게 집으로 불러들이는 날이다. 한쪽은 문을 걸어 잠그고, 다른 한쪽은 문을 활짝 열고 꽃길까지 깔아준다. 굳이 비교하자면 할로윈보다는 우리의 추석 차례에 훨씬 가깝다. 아즈텍의 조상 숭배 전통이 스페인이 들여온 가톨릭의 만성절(Todos los Santos)과 위령의 날(Día de los Fieles Difuntos)을 만나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죽은자들의 날 포토존에 세워진 둥근 포스터, 뒤로 라미라다 극장의 파티오가 보인다.
토요일 오후, 주차장 위로 낮게 깔린 구름이 남가주답지 않게 무거웠다. 로비에는 둥근 포스터 하나가 삼각대 위에 서 있었고, 한쪽에서는 꽃관을 쓴 마네킹 머리와 칼라베라 무늬 식탁보를 펼쳐놓고 기념품 판매대를 차리는 손길이 바빴다. 잔치 준비하는 집 마당 같은 풍경이었다.
공연 전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파란 조명 아래 무대에는 화려한 의상 대신 검은 연습복 차림의 무용수들이 서 있었다.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동선을 하나하나 짚어주었고, 무용수들은 팔을 뻗었다 거두기를 되풀이했다. 무대 뒤편에는 셈파수칠(cempasúchil), 주황색 메리골드로 엮은 아치가 서 있었고, 무대 양끝에서는 꽃관을 쓴 커다란 칼라베라(calavera), 멕시코식 두개골 장식이 객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천 석이 비어 있는 극장에서 보는 리허설은 묘하게 정직하다. 여기에는 박수도 없고 분장도 없다. 그저 해마다 같은 춤을 다시 몸에 새기는 사람들만 있다.
이날도 나는 출연자들의 그린룸 바로 앞, 무대 왼쪽의 1번 도어를 맡았다. 주말이라 자원봉사 안내원이 적어 그 뒤쪽 A 도어까지 두 개의 문을 함께 지켜야 했다. 공연 시작 전, 매년 슬롯자 나초역으로 무대를 휘젓던 카를로스가 젊은 여성 연기자 한 명과 함께 내게 다가왔다. 올해는 마틸다역의 이 친구와 함께 진행을 하는데,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마틸다가 관객인 척 복도를 내려올 테니 쫓아내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었다. 간혹 출연자와 공연관련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받아본 아마 가장 정중한 '침입 예고'였다. 수년째 이 공연을 봤지만 슬롯자가 둘인 건 올해가 처음이다. 전통을 아는 나초가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마틸다에게 하나씩 설명해주는 구성, 아마도 미국에서 자란 젊은 멕시코계 이민 세대에게 전통을 건네주겠다는 생각인 듯했다.
공연 전, 무대 스태프 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는 모습.
막이 오르자 나초는 망자와 신들의 형상이 사람을 겁주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무서운 얼굴을 통해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할로윈과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 진지한 해설은 오래가지 못했다. 예고대로 마틸다가 허둥지둥 복도를 내려오며 늦었느냐고 묻더니, 표가 있느냐는 질문에 표가 뭐냐고 되물었다. 결국 그녀는 안내원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겠다며 객석 쪽으로 사라졌다. 그 안내원이 바로 나였다. 미리 각본을 들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정말로 그녀를 매표소로 모셔갈 뻔했다. 다행히 이날 진짜 지각생은 거의 없었다.
춤은 멕시코 지도를 따라 움직였다. 먼저 우아스테카(La Huasteca)다. 이 지역의 죽은 자들의 날은 엄숙한 행렬로 시작되고, 무용수들은 가면을 쓰고 조상이나 세상을 떠난 유명인을 대신해 춤춘다고 나초가 설명했다. 마틸다의 머리에 얹힌 꽃을 두고는, 그게 그냥 예쁜 꽃이 아니라 영혼을 불러들이는 셈파수칠이며 무대 위 아치는 죽은 자의 땅과 산 자의 땅을 잇는 다리라는 강의가 이어졌다. 마틸다의 대답은 그냥 옷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썼다는 것이었다. 오악사카(Oaxaca)로 건너가자 이번엔 오프렌다(ofrenda)에 올린 음식을 슬쩍 집어 먹다가 그건 죽은 이들 몫이라는 핀잔을 듣는다. 우리 제사상 앞에서 전 하나 먼저 집어 먹다 혼나는 내 얼릴적 모습 그대로였다.
색이 쏟아진 건 그다음이었다. 베라크루스지방의 흰 레이스 드레스가 날개처럼 펼쳐졌고, 할리스코의 리본 치마가 무지개처럼 돌았다. 챙 넓은 솜브레로에 은단추 차로복장을 한 남자 무용수들은 망자 가면을 쓰고 구두 굽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후반부는 멕시코 혁명시대로 넘어가 그 시절의 여인들에게 바치는 춤으로 이어졌다.
베라크루스지방의 흰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공연자들과 동시에 무대에 오른 카트리나.
그 한가운데 카트리나(La Catrina)가 있었다. 오늘날 죽은 자들의 날의 얼굴이 된 이 망자 귀부인은 사실 조상 숭배와는 아무 상관 없이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20세기 초 멕시코의 판화가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José Guadalupe Posada)다. 포사다는 신문과 전단에 칼라베라 그림을 그려 정치인과 부자들을 비꼬던 풍자 화가였다. 1910년 무렵, 혁명 직전의 멕시코에서 그는 커다란 깃털 모자를 쓴 칼라베라 여인을 그리고 '라 칼라베라 가르반세라(La Calavera Garbancera)'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르반세라는 원래 병아리콩을 팔던 사람들을 낮춰 부르던 말인데, 원주민 핏줄을 숨기고 분을 하얗게 바르며 유럽 귀부인 흉내를 내던 멕시코인들을 꼬집는 말로 쓰였다. 아무리 꾸며도 죽으면 다 같은 뼈 한 줌이라는, 꽤 독한 농담이었던 셈이다.
이 칼라베라 여인에게 지금의 이름과 명성을 안겨준 사람은 화가 디에고 리베라다. 1947년 멕시코시티의 대형 벽화 알라메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의 꿈 한가운데에 그는 이 망자 귀부인에게 우아한 드레스를 입혀 세웠다. 한쪽 팔은 카트리나의 아버지인 포사다와, 다른 한쪽은 어린 시절의 리베라 자신과 팔짱을 끼게 했고, 그 뒤에는 프리다 칼로가 서 있다. 이름도 멋쟁이 신사를 뜻하는 '카트린(catrín)'의 여성형인 카트리나로 바뀌었다. 상류층을 조롱하던 풍자화가 그렇게 멕시코 민중의 아이콘이 되었고, 지금은 죽은 자들의 날이면 멕시코 어디서나, 그리고 이곳 라미라다 무대 위에서도 그녀를 만난다. 나초 말마따나 요즘은 너도나도 카트리나로 분장한다. 백 년 전 허영을 비웃던 그림이 이제는 누구나 한 번쯤 되어보고 싶은 얼굴이 된 것이다. 분홍 드레스에 뼈 무늬 장갑을 낀 카트리나가 하얀 레이스 모자 아래 반쯤 망자의 얼굴로 그린 채 한 팔을 하늘로 뻗는 순간, 이 공연이 왜 해마다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카트리나, 나초, 마틸다가 모두 흥겹게 춤을 추는 무대.
가장 눈에 남은 장면은 두 슬롯자가 직접 무대에 섞여 춤추던 순간이었다. 희끗한 수염에 줄무늬 사라페(sarape)를 걸치고 샌들을 신은 나초는 젊은 무용수들처럼 높이 뛰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카트리나와 함께 무대를 돌았다. 그 옆에서 안경 쓴 마틸다가 붉은 치마를 휘감으며 웃었다. 1부 내내 표도 없이 헤매고 셈파수칠 이름도 모르던 그 지각생이, 어느새 치마 끝을 쥐고 전통의 한가운데서 춤추고 있었다. 나이 든 슬롯자가 가르치고 젊은 슬롯자가 배우는 그 구성은, 결국 이 무대 위에서 한 편의 춤으로 완성되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다저스가 포스트시즌에서 한창 승승장구할 시기라, 2부에서 나초는 늘 다저스 저지를 입고 나오곤 했다. 객석의 환호가 춤보다 저지에 더 크게 터지던 해도 있었다. 올해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다저스가 밀워키에 연패를 당하며 일찌감치 탈락했기 때문이다. 대신 나초의 대사에 밀워키 브루어스모자 이야기가 슬쩍 끼어들었다. 죽은 자들의 날에 다저스의 시즌까지 함께 추모한 셈이다.
이날 객석에는 스쿨버스를 대동하고 온 학교 단체 관람객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아이들에게 멕시코 전통을 보여주려는 교육 나들이였다. 걱정과 달리 공연 예절은 아주 좋았다. 들락날락하는 관객도 많지 않아, 두 개의 문을 지키던 나도 모처럼 무대에 눈을 둘 여유가 있었다. 무대 위에서 나초가 마틸다에게 전통을 가르치는 동안, 객석에서는 수백 명의 아이들이 같은 수업을 듣고 있었던 셈이다. 무대와 객석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공연의 감사 인사를 하고 있는 출연자들.
피날레에서 주황과 노랑 풍선이 무대 위로 쏟아졌다. 망자 가면을 쓴 무용수들이 손뼉을 치고, 카트리나가 치마를 들어 올리며 돌았고, 나초는 객석을 향해 팔을 크게 뻗었다. 풍선은 메리골드와 같은 색이었다. 영혼에게 집 가는 길을 비춘다는 그 꽃 말이다.
올해도 공연은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슬롯자가 하나 늘었고 다저스 저지가 하나 빠졌을 뿐이다. 아마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 처음 느꼈던 호기심은 이제 없다. 대신 해마다 같은 날, 같은 극장에서, 같은 춤을 다시 추는 사람들이 보인다. 반복은 지루하다. 그러나 기억이란 원래 반복으로만 지켜지는 것이다. 오프렌다를 해마다 다시 차리듯, 이 무용단은 해마다 이 무대를 다시 차린다. 그리고 나는 지루하다고 투덜대면서, 아마 내년에도 이 문 앞에 서 있을 것이다. 표 없는 지각생이 오면, 그게 마틸다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