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코의 붉은 방
2026년 10월 1일(목), 런던 테이트 모던
호텔 조식 부페는 일찌감치 챙겨 먹었다. 런던 시내의 호텔을 잡았는데, 여기서 마음에 드는 건 솔직히 그 아침상 하나다. 오래된 호텔이라기에 중후한 멋이라도 있으려나 했는데, 묵는 내내 일본의 비즈니스 호텔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하룻밤에 200불가량을 받는다. 파리에서는 이보다 넉넉한 방에 에어컨까지 갖추고도 150불 수준이었다. 참고로 이 방에는 에어컨 대신 선풍기가 한 대 서 있다. 10월이라 다행이지, 한여름이었으면 그 선풍기와 밤새 씨름했을 것이다.
사우샘프턴 로에 있는 버스 스테이션.
10시 개관 시간에 맞춰 나서려다 잠시 주춤했다. 오후 2시 반 카운티 홀의 연극 시간을 기준으로 거꾸로 짜기로 하고, 12시에 맞춰 길을 나섰다. 사우샘프턴 로(Southampton Row)를 걸어 내려가 68번 2층 버스를 타고 워털루 다리를 건널 생각이었다. 시간까지 맞춰 나갔건만 한발 늦어 68번의 뒤꽁무니만 보았고, 곧이어 온 1번 버스에 올랐다. 런던 버스는 번호가 달라도 결국 같은 다리로 데려다주는 의리가 있다. 여행만 오면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탓에 허리띠 구멍이 자꾸 바깥쪽으로 밀려나려 하길래, 다리를 건너서는 내려 걷기로 했다.
구글맵을 손에 들었지만 사우스뱅크 뒷골목은 지도와 실제가 묘하게 어긋난다. 우왕좌왕 몇 번을 헤매다 제 길을 찾고, 다시 헤매기를 반복하며 20분 넘게 걸었다. 저 멀리 발전소 굴뚝이 보이면 다 온 건데, 그 굴뚝은 가까워 보이기만 할 뿐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테이트 모던은 원래 1981년에 문을 닫은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다. 그 발전소를 설계한 사람이 자일스 길버트 스콧인데, 런던 거리의 그 빨간 공중전화 부스를 디자인한 바로 그 사람이다. 런던에서 가장 작은 건물과 가장 큰 굴뚝을 한 사람이 그린 셈이다.
1번 버스에서 워털루 다리를 건너면서 보이는 템즈 강.
갈색 벽돌 벽 아래 오렌지색 띠를 두르고 하얀 글씨로 "WELCOME TO TATE MODERN". 입구에서 가방 검사를 하지만, 나는 들고 다니는 게 귀찮아 가방 없이 맨손으로 나왔으니 줄 선 사람들 옆을 그냥 통과했다. 빈손의 특권이다.
이름 앞의 '테이트'는 19세기 설탕 사업가 헨리 테이트에게서 왔다. 각설탕으로 큰돈을 번 그가 자기 소장품과 건립 자금을 내놓아 1897년 템스강 상류 밀뱅크에 테이트 갤러리가 섰고, 지금의 테이트 브리튼이 그곳이다. 그 이름을 이어받아 2000년 이 발전소에 현대미술관이 들어섰으니, 설탕이 세운 미술관이 석탄 때던 건물로 이사 온 셈이다. 공식 이름은 뒤에 뮤지엄도 갤러리도 붙지 않는 그냥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이다.
영국 사람들은 대개 갤러리라 부르고,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리버풀,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와 함께 테이트라는 한 기관 아래 네 곳 중 하나다. 주소는 Tate Modern, Bankside, London. 건물은 옛 발전소 본관인 내털리 벨 빌딩과 2016년에 새로 지어 올린 블라바트닉 빌딩, 두 동으로 나뉜다.
들어서면 옛 발전소의 터빈 홀이 그대로 뻗어 있다. 발전기가 돌던 자리를 비워 둔 채 스위스 건축가 듀오 헤어초크 앤 드뫼롱이 미술관으로 고쳐 놓았다. 천장 유리로 쏟아지는 빛 아래 바닥은 비어 있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이 거대한 공간을 채우는 현대 커미션은 10월 13일에야 들어선다니, 나는 그 빈 무대를 본 셈이다. 비어 있어도 이 홀은 충분히 하나의 작품이다.
전시도 없이 빛만 들어찬 터빈 홀(Turbine Hall). 비어 있어도 이 홀은 하나의 작품이다.
안내판에는 상설 컬렉션과 함께 훌리오 르 파크, 아나 멘디에타, 프리다 칼로, 그리고 무료 그룹전 「Gathering Ground」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프리다 칼로는 오히려 캘리포니아에서 자주 마주치는 그림들이라 일부러 돈을 내고 들어가 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지도를 한 장 챙겨 들고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내털리 벨 빌딩 2층은 내가 가장 즐기는 현대 작가들의 방이었다. 로스코의 방에 들어서면 꼭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다만 채플의 블루블랙 대신 진한 레드 계열의 작품 아홉 점이 걸려 있고, 천장에는 자연 채광을 위한 유리 격자를 떠올리게 하는 조명이 낮게 깔려 있다. 원래 뉴욕의 한 고급 레스토랑 벽을 위해 그렸다가 로스코 스스로 거둬들인 연작이라 한다. 밥 먹는 사람들 앞에 걸릴 뻔했던 그림이 지금은 사람들을 말없이 세워 둔다. 어두운 방 가운데 벤치에 앉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림 쪽으로 몸을 조금씩 기울이고 있었고, 시간이 넉넉지 않은 날이었는데도 그 방에서는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 정작 신선했던 건 그 큰 색면들이 아니라 벽 한쪽의 작은 로스코 한 점이었다. 1946~47년경의 「무제」. 분홍과 회보라 바탕 위로 초록과 파랑의 덩어리가 떠 있고, 그 사이로 실처럼 가는 선과 흰 점들이 흩어져 있다. 매번 거대한 색의 벽 앞에만 서다가, 아직 사람의 형상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로스코를 보니 그가 어디서 출발해 어디로 갔는지가 한눈에 보였다.
설명문에 따르면 1940년대 초 그는 신화와 문학에서 소재를 빌린 초현실주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1946년 무렵에는 신화의 흔적이 자신이 좇는 초월적 경험과 충돌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형체는 아직 인물을 닮았는데 색은 이미 블록이 되려 하는, 그 갈림길의 그림이다. 1947년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을 드라마로 여긴다며 그림 속 형태들이 곧 배우라고 적었다. 붉은 방의 아홉 점이 막이 내린 뒤의 텅 빈 무대라면, 이 작은 그림은 배우들이 아직 무대 위를 서성이던 리허설 장면쯤 될 것이다.
어둠 속 붉은 아홉 점, 로스코의 방.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Rothko Chapel)이 겹쳐 보인다.
바로 이어지는 옆방에는 박서보의 묘법이 있다. 물감이 마르기 전에 긋고 또 그어 내린 지그재그의 '낙서'가 로스코의 붉은 침묵 바로 옆에 놓여 있으니, 색으로 비우는 사람과 선으로 비우는 사람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것 같았다. 그 방을 빠져나오면 색종이를 뜯어 붙인 것 같은 마티스의 「달팽이」가 기다리고, 그 맞은편에서 이우환의 푸른 선이 마티스를 마주 본다. 한 번 붓에 묻힌 물감이 다할 때까지 내려 그어, 위는 짙고 아래로 갈수록 사라지는 선들이다. 박서보가 채워 넣는 쪽이라면 이우환은 덜어 내는 쪽이다. 국내에서 위작 논란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던 이름이지만, 런던의 벽 위에서는 그저 붓 한 번의 호흡으로 서 있을 뿐이다.
마티스 앞에 서서 카메라를 들었더니 유리 위에 내 실루엣이 비치고, 빨간 종이 조각 안에는 맞은편 이우환의 세로줄이 고스란히 비쳐 들어와 있었다. 가위로 오린 색과 붓으로 비워 낸 색이 정말로 서로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리히터의 방도 있었다. 다만 아쉬웠다. 걸린 건 스퀴지로 두꺼운 물감을 긁어 내린 「케이지」 연작 여섯 점뿐이다. 존 케이지가 『주역』으로 음을 고르듯 결과를 우연에 맡긴 작업이라는 설명은 흥미로웠지만, 내가 리히터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흐린 사진 같은 그림들이다. 같은 몸짓을 여섯 번 반복한 방에 서 있자니 리히터의 반쪽만 보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설명판 한 대목은 오래 남았다. 동독에서 자란 리히터가 1959년 카셀 도쿠멘타에서 폴록과 폰타나의 추상을 보고 그 뻔뻔함에 반했고, 어쩌면 그 그림들이 동독을 떠난 진짜 이유였을지 모른다고 회고했다는 것이다. 붉은 방의 로스코에게 추상이 명상이었다면, 리히터에게 추상은 망명이었던 셈이다.
우연에 맡긴 여섯 장의 캔버스, 리히터의 케이지 연작.
뒤샹의 「샘」은 유리 상자 안에서 여전히 경건하게 대접받고 있었다. 테이트의 것도 1917년 원본이 아니라 1964년에 뒤샹의 감수로 다시 만든 판이다. 원본은 사진 한 장만 남기고 사라졌으니, 세계 어디서 보든 우리가 마주하는 건 복제된 원본이다. 레디메이드라는 개념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운명도 없을 것이다. 변기 하나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숨죽여 서 있는 풍경 자체가 이미 작품의 일부처럼 보였다.
그 근처에서 자코메티를 만났다. 조각이 아니라 1949년의 유화 두 점이다. 하나는 그가 40년 가까이 쓴 파리의 작고 습한 작업실 한구석을 그린 「실내」, 다른 하나는 동생 디에고를 그린 「앉은 남자」. 자코메티는 동생이 포즈를 취하면 그를 알아보지 못하겠다고 했다 한다. 평생 본 얼굴을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그리려 했던 것이다. 조각에서 보던 그 가늘고 흔들리는 선이 캔버스 위에서도 똑같이 떨리고 있었다. 흐린 리히터를 못 보고 나온 아쉬움을, 뜻밖에 흐린 자코메티가 조금 달래 주었다.
독일 신즉물주의 화가 크리스티안 샤트의 1927년 「자화상」도 발을 붙잡았다. 비치는 얇은 셔츠 차림으로 정면을 노려보는 화가 뒤로, 뺨에 흉터가 그어진 여인이 비스듬히 누워 있고 그 사이에 수선화 한 송이가 꽂혀 있다. 샤트는 나르시시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했다 한다. 수선화가 곧 나르시스의 꽃이니, 화가는 자기 얼굴을 그리면서 스스로에게 미리 꼬리표를 붙여 둔 셈이다. 차갑고 매끈한 붓질인데 오래 보고 있으면 묘하게 뜨겁다.
설치작품 너머로 흐르는 템스강, 그리고 테이트 모던과 동갑내기인 밀레니엄 브리지.
어두운 방 한가운데에는 라디오로 쌓은 탑이 서 있었다. 처음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TV 1,003대를 쌓아 올린 백남준의 「다다익선」인 줄 알았다. 다가가 보니 브라질 작가 시우두 메이렐리스의 「바벨」(2001)이다. 맨 아래는 1920년대 진공관 라디오 같은 큰 구형들, 위로 갈수록 작고 값싼 라디오들이 쌓여 실제보다 탑이 더 높아 보인다. 수백 대가 저마다 다른 방송에 맞춰져 동시에 울린다는데, 솔직히 내 귀에는 트랜지스터 잡음이 한데 뭉쳐 웅웅거리는 소리로만 들렸다. 그런데 작가가 이 탑을 '몰이해의 탑'이라 불렀다니,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한 내가 어쩌면 가장 정확한 관객이었는지도 모른다.
설치 작품이 바닥에 깔린 방에서 큰 창 너머로 템스강이 내려다보였다. 창틀이 풍경을 세로로 다섯 칸 나눠, 방금 본 리히터의 연작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운데 칸에 세인트폴 대성당의 돔, 그 아래로 밀레니엄 브리지가 대각선으로 강을 가로지른다. 저 다리는 테이트 모던과 동갑내기다. 둘 다 2000년에 문을 열었는데, 다리는 개통 이틀 만에 사람들이 건널 때마다 출렁거려 문을 닫고 2년 가까이 손을 본 뒤에야 다시 열었다. 런던 사람들은 아직도 흔들 다리라 부른다. 미술관 안에서는 자코메티의 흔들리는 선을 보고, 창밖으로는 흔들 다리를 내려다본 날이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유난히 파랬다. 미술관 옆 길가에는 프리다 칼로와 훌리오 르 파크, 그리고 2주 뒤에야 문을 여는 예술사진전 「Light and Magic」의 배너가 나란히 펄럭였다. 보지 못하고 가는 전시가 보고 가는 전시보다 많은 여행이지만, 붉은 방 하나만으로도 걸어온 20분과 놓친 68번 버스는 충분히 값을 했다.
그림 속 형태들이 배우라던 로스코의 말을 주머니에 넣고, 이제 진짜 배우들이 기다리는 법정, 카운티 홀로 강을 따라 걸어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