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커피의 세계는 꽤 흥미롭다.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조용히 핸드드립 체험을 해보았다. 사장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의 세계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마치 여과지에 물이 스며들듯 말이다.
먼저 원두를 간다. 원두의 굵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입자가 가늘고 고울수록 더 진한 맛을 낼 수 있다. 에스프레소가 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파우더처럼 곱게 분쇄된 원두 덕분에 짙은 풍미가 추출되는 것이다. 나는 그라인더를 '28'에 맞추고 원두를 갈아본다.
원두는 산미가 있는 코스타리카로 선택했다. 천천히 갈린 원두를 여과지에 담고 평평하게 정리한다. 사장님은 가운데를 살짝 눌러 홈을 만들었다. 물을 부을 위치를 표시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제 물을 붓는다. 가운데부터 천천히.
여기서 내 성격이 드러난다. 생각보다 천천히 붓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물줄기는 자꾸 흔들리고 속도는 빨라졌다. 반면 사장님은 일정한 물줄기로 차분하게 커피를 내려간다. 한 번 물을 붓고 30~40초 정도 기다린다. 원두가 물을 머금으며 향을 깨우는 뜸 들이기 과정이다. 그리고 다시 물을 붓는다. 그렇게 세 번, 네 번 반복하며 커피를 완성한다.
중요한 건 화려한 기술보다도 속도였다.
급하지 않게. 서두르지 않게.
아이스커피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얼음을 담은 컵에 커피를 바로 쏟아붓지 않는다. 천천히 따라야 온도가 자연스럽게 식으면서 맛의 균형이 유지된다고 한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본다. 묵직하면서도 구수한 풍미가 느껴졌다. 나는 무심코 "된장 맛이 조금 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평소 익숙한 음식의 맛을 기준으로 풍미를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해 주셨다. 순간 들킨 기분이 들었다. 내게는 그 구수함이 된장의 이미지로 연결된 것이다.
그날 커피를 내리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원두도, 도구도 아니었다.
커피는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의 과정이었다. 물이 원두에 스며드는 시간, 향이 깨어나는 시간, 온도가 식어가는 시간까지. 서두른다고 더 좋은 커피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사람도 비슷하다. 관계를 맺는 일도, 일을 배우는 일도, 공부를 하는 일도 그렇다. 빠르게 익히고 빨리 가까워지는 것보다 천천히 스며드는 것이 오래 남는다. 여과지에 물이 스며들어 결국 한잔의 커피가 되듯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천천히 스며들 때 비로소 깊어진다.
커피 한 잔을 내리며, 무엇이든 천천히 스며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한 힘일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