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적 위선

고글과 버프 뒤로 숨어버린 숨바꼭질

by플랑시



쿠팡이츠배달파트너 앱은 몇 년 전과 UX는 거의 그대로였지만 많은 디테일이 나아져있었다. 내 위치에 따라 자동으로 확대되는 지도와 더 정교해진 다중배차 등이 보였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차치하고 가장 많이 바뀐 건 건당 단가였다. 2,900원, 멀티 배차는 2,200원? 몇 년 전 기록을 보니 건당 4,000원 정도로 했던데, 2022년엔 최저시급도 9,160원이었고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도 10억대였는데 너만 역행했구나. 배달대행업의 수요와 공급 둘 중 어떤게 더 하락요인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급 +1 뿐이었다.




언젠가 로드바이크 커뮤니티에 배달부업을 하는 자전거 동호인이 올린 글을 떠올렸다. A위치에서 B로 갔다가 물건들고 C로 가는데 돈을 번다는 개념이 직관적인 문장이었다. 어떤 이들은 돈 내고 로라방(실내 자전거 트레이닝룸)도 다니는데 ‘이건 좋지 아니한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맑은 콧물이 주르륵 흘렀다. 너무 춥거나 너무 덥거나 비가 퍼부어야 배달수요가 늘었다. 점심 콜이 몰릴만한 문정동 법조타운으로 달렸다. 몇 년 전엔 주구장창 오토바이만 보이더니 은근히 전기자전거가 많았다. 짐받이 위에 달린 배달통과 폰거치대, 사이드미러, 배터리보온을 위한 단열재 diy까지 쓱 보면 전업러(전업 배달라이더)로 보이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전기자전거 보급률이 많이 올라갔겠구나, 부업하는 분들 많네.’ 두리번대다가 해가 중천인걸 보고 정신을 차렸다. 지금 시간이면 당연히 높은 확률로 전업러다.



한창 점심시간이라 콜은 거절하는 족족 새로 들어왔다. 몇 년 전보다 단가는 줄어들고 배차거리는 늘어나 있었다. 문정동에 있으니 강남구 세곡동까지 보내는 콜도 더러 들어왔다. 꼴에 해본 적 있다고 적당히 거절도 하면서 콜을 골라 받았다. 임장이고 나발이고 효율적인 콜을 받아야 했다. 5년만의 긴장과 흥분을 코블러셰이커에 넣어 마구 흔든 첫 콜을 소화하니 입김이 가득 나왔다. 멈출 때마다 고글에 김이 서렸다. 눈이 시리거나 코가 시리거나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했다. 김서림으로 앞이 안보이면 위험하니 그냥 콧물을 흘리기로 결정했다. 오토바이를 타는 라이더들은 히말라야 오를듯한 등산복메이커 최상급 패딩과 신기하게 생긴 방한화, 우주복이라 불리는 일체형 방한복등으로 싸매고 있었다. 긴 시간 야외에 머물고 빠른 속도의 주행풍을 받으니 현 기온보다 -10도는 적용한 복장들이었다. 일자(일반자전거)를 탄 사람은 나뿐이었다. 경량패딩은 나뿐이라 누가 봐도 거리에서 가장 얇게 입은 사람이었다. 땀이 났다가 식으면 더 추워지니까 나름 갖고 있는 기능성 의류를 안쪽으로 겹겹이 레이어링 했다. 라이더와 대화 없이 바쁘게 음식만 담는 여느 패스트푸드점과 다르게 위례신도시 입구의 버거킹 직원은 안경너머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기사님 안 추우세요? 오늘 본 기사님들 중에 제일 얇게 입으셨어요.”



벌겋게 튼 얼굴에 콧물을 흘리며 들어간 내 몰골 때문에 더 추워 보였나, 괜찮다고 말하며 콜라를 카라비너로 만든 봉지걸이에 거는 중에도 어깨 위로 김이 올라왔다. 군대에서 들은 대로 추위는 3끝(손끝 발끝 코끝)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춥다기보단 아프다 해야 하나, 스마트폰 터치 때문에 장갑 위에 주방용 니트릴 장갑을 덧데어 꼈다. NBL이라 불리는 라텍스 공장에 들어가는 원료를 담당한적이 있었다. 비대면 시국의 위생재 수요때문에 라텍스 국제가가 급등해서 ‘시간이 돈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공장을 돌리고 증설에 맞춰 원료를 구한다고 바빴던 나날들이 뇌리를 스쳤다. 라떼 무용담으로 인정투쟁만 일삼는 아저씨들을 경멸하며 그렇게 늙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생각이 나는 걸 어떡해. 말할 곳이 없고, 말할 필요가 없을 뿐이었다. 정작 지금 한콜 한콜씩 인정투쟁을 하는 건 나일지도 모른다. 쿠팡이 혼자 중얼거리는 나에게 주는 최선의 답은 건당 2,500원에 시간당 6콜, 만오천원과 좀처럼 멎지않는 콧물이었다. 몇 년 전 배달을 찍먹 해보던 나보다 지금의 나는 그만큼 늙었으니 더 조심스레 해야 했다. 며칠 만에 피부가 트고 관절 곳곳이 아프고 온몸이 클레임을 걸고 있었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뭐라도 하자고 생각했는데 이래저래 몸과 마음이 상했다.


“마음은 대체 왜 상하는데!”


길가 얼음을 피하면서 자문했다. 나는 그냥 초보에 비효율적인 교통수단을 쓰는 특이한 라이더. 자전거를 고집한건 아내에게 ‘운동삼아’라는 명분을 설득하기 위함도 있지만 나에게도 그 네 글자를 계속 주입하고 싶어서였다. 배달앱이 예전보단 깔끔해졌고, 동네도 익숙해졌지만 이전보다 긴 시간 많은 물량을 하다 보니 집중력이 더 흐트러졌다. AI가 아직 갈길이 먼지 이상한 동선으로 지도를 안내해서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오를 때면 욕지기가 입김과 섞여 나오기도 했다. 눈이 덜 녹은 길은 긴장의 연속이고, 가든파이브나 문정컬처밸리 같은 큰 몰에서는 지도앱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미로찾기 상황에 생각이 멈추고 패닉에 빠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쓸데없는 자기연민과 멜랑꼴리가 결로로 맺히기 전에 찬바람을 가득 맞은 핸드폰 배터리가 금방 방전되면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집에 들어올 때면 밀린 숙제처럼 한기가 엄습해 오면서 호들갑을 떨면서 화장실로 들어가야만 했고, 쪼그려 앉아 샤워기를 걸어놓고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기껏해야 하루에 20건 정도 배달을 수행하고, 대부분이 가정집에 하는 비대면 배달이라 사람을 마주할 일은 거의 없었다. 단건배달은 음식을 픽업하기 전까지는 도착지 정보는 비공개였다. 지도상의 핀 위치정도로만 드러나기 때문에 어딜 갈지 어림짐작만 할 수 있었다. 이번 음식을 수령하고 나서 앱에 뜬 고객의 위치는 아이가 자주 가는 소아과였다. 세상의 모든 병원균을 체험하듯 잔병치레가 심하던 어린이집 시절, 유아차를 밀고 토요일 아침 오픈런을 종종 갔던 병원이라 간호사 선생님이 아이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필 고객 요청사항이 “직접 받을게요”였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인 곳에 밥배달을 가니 갑자기 긴장감이 몰려왔다. 버프가 속눈썹에 닿을 만큼 바짝 올려놓고 익숙한 초록색 문으로 들어갔다. 우리 아이에게 인사할 때와 같이 반갑게 맞이해 주는 간호사선생님께 하얀 봉지를 건네고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과 함께 도망치듯 나왔다. 올해들어 처음만난 아는사람 이었다. 반가운건 반가운건데 왜 부끄러운건지 모르겠고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 알아볼까 봐 식겁했던 내 행동이 역겨워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 짧은 시간 동안 욕을 뱉었다. 휴직도 구직도 배달도 다 내 선택인데 뭐 그리 대단한 결정을 했다고 혼자 비련의 주인공이 되는 건지, 왜 서러운지 모르겠어서 버프를 이마까지 올리고 눈물을 찔끔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