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시간을 함께 사는 사람들

<제주의 시간>

bybaekja

올레길을 걸을 때였습니다. 성산에서 온평리로 이어지는 1코스와 2코스의 올레길의 전봇대에는 스티커로 된 선전물이 다수 붙어있었습니다. 제주공항 찬성에 대한 선전물과 제주공한 반대에 대한 선전물이 섞여서 붙어 있었습니다. 서귀포의 제주올레사무소에 도착해서도 제주공항 반대에 대한 선전물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올레 7코스는 강정마을을 지나가야 했기에 말로만 듣던 강정마을의 실상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걸으며 제주의 개발을 눈으로 보고 참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제주2국제공항에 관한 기사를 자주 찾아봤습니다. 제발 지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오조리의 철새들과 수산리의 아름다운 풍경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그러다 신문 기사에서 제주2국제공항이 맹꽁이 서식지라 환경영향평가에서 퇴짜를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발에 대한 사람의 욕심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제주의 시간>에서는 그 이후 최근까지 계속되는 제주 개발을 막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제주2국제공항을 지어지면 제주의 시간이 온다고 합니다. 제주의 전성기가 온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그건 제주의 전성기가 아니라 개발의 전성기일 겁니다. 습지를 파괴하고, 벵듸를 파괴하고, 궤를 파괴하고, 곶자왈을 파괴해서 만든 제주의 전성기가 어디 있을까요? 그것은 오히려 제주가 쌓아 온 자연의 시간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이 제주의 시간을 지키고자 노력합니다. 그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집니다. 행진, 피켓 시위, 교육, 예술 등. 이런 다양한 방식들은 연대 위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제주2국제공항을 만들기 위해 제주도의 행정 부서에서는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습니다. 제주시에서 성산읍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넓히는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비자나무 가득한 비자림로에서 삼나무를 베어내고 도로를 넓혔습니다. 영상에서는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강력한 국가권력 앞에서 시민들의 연대는 너무 가냘픕니다. 그들의 연대는 무엇보다 열성적이고, 강렬하며, 끈끈합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 연대만으로 바꾸기에는 너무 차갑습니다.


그래서 연대를 더욱 넓히고자 합니다. 행진, 피켓 시위, 교육, 예술은 모두 홍보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연대를 알아주고, 행위에 동참해주길 바라는 마음. 반대하던 사람을 되돌릴 수는 없어도 무관심했던 사람이나 조금 관심 있던 사람이 같이 적극적으로 행동해주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들을 모아서 버텨냅니다. 그 중심엔 전부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 제주를 개발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사람을 위해 제주를 온전히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들 중 누가 더 제주를 위하는지는 각자의 판단의 몫입니다.


다큐는 사는 방식을 보여줄 뿐입니다. 서울에서 살아온 평범한 방식들.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일을 하다가 퇴근을 하고 지쳐 쓰러지는, 그런 삶과는 다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은 대체로 그러합니다. 지금의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슬롯의 부품이기도 하지만, 자연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지구는 인간만이 사는 곳이 아니고, 인간이 전부 지배할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그래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택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자연의 일부인 동식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공존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합니다. 이 고민에서 나온 삶이 다큐에 고스란히 찍힙니다.


이런 방식은 차가운 자본주의와 강력한 국가권력을 만들어낸 관료제의 두꺼운 벽을 뚫어내지 못했습니다. 이 패배는 좌절로 이어집니다. 아무리 북을 치고, 새로운 걸 가르치더라도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제2제주국제공항 건설에 대한 찬반의 문제가 아닙니다. 삶의 방향의 문제입니다. 다 파괴하며 인간을 위한 가치를 만들며 갈 것이냐, 공존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며 갈 것이냐. 제주의 시간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흐르고 있습니다. 그 흐르는 시간에 어떻게 편승할 것이냐는 온전히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