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유키: 시간의 목소리>, 전주국제영화제
시간은 하늘에 속해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뜨고, 4개의 계절이 지나고, 그런 변화들을 반복의 법칙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법칙을 조금씩 쪼개어 사람들은 시간이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이 법칙이 모두의 과학이 되기 전, 시간은 하늘의 것이었습니다. 신들이 내려주고, 신의 목소리를 대행하는 이들이 만들어 다른 이에게 나누어주는 것.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할 수는 없으니 결국 신은 각기 다른 인간에 의해 표현되고, 그 인간들에 의해 시간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지역과 문화의 다양성은 시간의 다양성으로 이어졌으나 적어도 그 지역과 문화 내에서 시간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시간의 절대적 의미를 굳힌 것은 근대였습니다. 근대 이후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했고,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전통의 다양성은 매몰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을 나타내고 분류하던 다양한 방식은 시, 분, 초라는 방식에 따라 천편일률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방식은 매우 효율적이었으나 숫자에 따른 시간의 절대적 개념을 강화시켜 사람이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사람이 매어 있게 만들었습니다. 과학과 계몽의 이름 아래 만들어진 시간의 기준은 오히려 더 나아간 과학 앞에서 깨어졌습니다.
한 시대의 진리라 불리는 것도 인간이 만든 언어에서 비롯된 것이기 언젠가는 깨지기 마련입니다. 진리 중 하나를 상징하는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축이 마냥 선형적이지만은 않다는 상대성이론 앞에서 그 절대성이 없어졌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중력에 의해 왜곡될 수 있고, 빛의 속도로 움직일 때 과거, 현재, 미래의 동시에 있을 수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은 우리가 법칙이라 믿고 있던 인식을 부숴버렸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뒤얽힌 시공간의 개념이 나오면서 4차원을 끌고 왔고, 서로 다른 공간과 다른 시간에 있는 이가 동시에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이론은 다시 오래된 미래처럼 우리가 가진 시간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미치유키: 시간의 목소리>는 이런 다양한 시간을 인구 소멸지역인 고세라는 마을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원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다양한 시간의 개념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걸 위해 오래된 시계점을 찾았고요. 시계점에서 시대별 시계를 통해 시간의 개념이 만들어진 슬롯적 배경, 역사 등을 표현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120년 전의 포목점을 장소로 찾아냈고, 그 집 주인이었던 우메모토씨가 영화에서처럼 동네와 관련된 별별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이 인상 깊어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민의 동네 이야기에 반하고, 마을에 거주하며 마을을 매력적이라고 느낀 감독의 생각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분명 시간이 주제이기는 하나 중심 소재는 마을에서 본 삶들입니다. 삶은 시간과 공간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언제, 어디서 하는 행동이 삶이기 때문이죠. 특히 자기의 삶을 과거, 현재, 미래로 표현하는 것이 일상화된 지금, 공간보다도 시간이 삶을 표현하는 기초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감독은 뒤엉켜진 삶을 영화라는 현실에서 벗어난 가상에서 동시에 표현합니다. 우메모토씨의 과거 동네 이야기와 집을 리모델링하고 마을을 산바카라하며 어르신들과 대화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오버랩 되어 깊이 잠들어있던 각양각색의 시간을 드러냅니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나타나는 것은 철도입니다. 달리는 기차가 이미지로 꾸준히 등장하고, 주인공은 마을의 역과 기관사를 취재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기관사는 시간을 딱 맞추어 기차를 운행하는 것이 사람의 삶을 안전하게 나르며 보호하는 것이라는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멈춘 시간을 움직여주고, 움직이는 시간을 보호해주며, 흘러가는 시간을 고정해주기도 한다는 철도에 대한 주관적 생각은 감독이 시간을 표현함에 있어 철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자 함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이 모는 기차에 이제는 고인이 되었거나 노인이 된 사람들이 타있습니다. 차량 안에서 같은 풍경을 보다 한 명씩 내립니다. 내리면서 의자에서 움직여 서로와 상호작용을 하고 내릴 때마다 인사를 건넵니다. 감독은 이러한 삶의 과정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멀쩡한 레일 위에서 기차가 달리고, 그 기차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함께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했다가 마지막에 한 명씩 기차에서 내리는 것. 지독히도 평범해 보이는 이런 모습이 삶의 보편적 진리라고 보았습니다. 달리는 기차는 수평의 움직임을 가지고 선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뒤에 무언가를 두고 온다는 것은 과거에서 현재로 나아왔음을, 레일이 앞에 있다는 것은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갈 것임을 의미하죠. 다만, 이 선형적 시간 표현을 복잡하게 만든 것은 사람입니다. 이 시간의 나아감을 운용하는 것 또한 사람이고, 운용 위에 올라탄 것도 사람입니다. 정해진 법칙이라기보다 여러 가지 삶이 얽히는 한 방식으로 봐야하는 것이죠.
마을은 빈집이 계속 철거되고 있습니다. 여기 오래 살았던 노인들도 집을 하나씩 버리고 자식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거나 종착지에 다다르는 것만을 기다립니다. 그들의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이미 내려야 할 곳에 다다른 멈춘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남아 있습니다. 외부인인 주인공이 말을 검과 동시에 시간이 흐릅니다.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상황이 뒤섞이며 멈춘 시간이 움직이고, 외부의 시간과 어우러집니다.
주인공은 걷고 움직입니다. 기차를 운행하는 기관사처럼. 수평적인 공간 이동을 통해 시간의 선을 드러냅니다. 여기에 하나의 선이 더 얹어집니다. 마을의 선입니다. 의도적인 카메라 무빙을 통해 마을이 보관해온 시간을 수직적인 화면 이동으로 보여줍니다. 주인공이 끄집어낸 개인의 수평적 시간선과 달리 공간 위에 켜켜이 쌓여온 마을의 시간은 이야기를 깊이 파고들 때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시계 공방에서 노인인 우메모토씨의 할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는 오래된 시간을 발굴하는 느낌마저 줍니다.
고양이가 해에 따라 눈이 둥글어지고 가늘어지는 것을 통해 고양이를 품고 다니며 시계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나 100년 전에는 한 시계점에서 정오에 폭죽을 터뜨리는 것을 통해 정시의 시간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는 개인의 시간을 넘어 역사와 공동체의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공간을 수평으로 휘저으며 실타래처럼 무수한 선들을 그려낸 개인의 시간은 뒤섞여 하나의 층을 만듭니다. 하나의 층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하나씩 더 쌓이며 공간의 깊이를 더하고, 공동체의 삶을 담아냅니다. 시계 옆의 고양이나 100년 전 시계점의 광고는 이러 삶을 현재와 연결하는 상징이자 유물로 읽힙니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참여적인 박물관이자 유적지로 기능하면서 모든 시간의 층위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존재합니다. 개인과 마을의 시간이 병치하고, 공존하며, 혼합하는 이 복잡한 이야기는 영화라는 ‘동시’를 구현하는 가상에서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합니다.
영화의 동시는 화면 속에서만 아니라 극장에서도 구현됩니다. 이야기와 삶으로 보이는 시간의 깊은 곳에 마음의 시간이 있습니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감정과 결부된 시간. 화면의 인물들의 시간은 담담한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극장의 관객들의 시간과 공유됩니다. 마을을 걷는 사람과 사라져가는 마을의 오랜 기억은 관객들이 언제쯤 보았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3차원의 공간과 단순한 선의 시간에서 분명 화면의 인물들과 극장의 관객은 다른 공간과 시간에 있지만, 비슷한 감정의 추억을 떠올리고 공유하면서 자기만의 시공간을 영화의 시공간에 일치시킵니다. 가상과 현실이 함께 맞대지면서 영화부터 극장은 전부 동시의 세계로 변모합니다.
감독은 명확하게 시간의 개념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을 담아내고, 마을을 담아내어 보는 이들에게 전달합니다. 사람, 마을, 영화, 관객의 시간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뒤섞이며, 세상에 다양한 시간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수평적인 시간, 수직적인 시간, 정지한 시간, 순환하는 시간, 개인의 시간, 공동체의 시간, 현실과 가상을 뛰어넘는 시간 등. 차분한 톤의 영상에서 마주한 일상에는 우리가 바쁘게 사느라 잊고 살았던 상대적인 시간들이 있습니다. 숫자로 딱딱 나누어떨어지는 시간이 아닌 사람의 감정과 기억을 담은 시간들. 공간과 함께하는 시간들. 다른 장소, 다른 때에 있더라도 동시라고 느낄 수 있는 시간들. 절대성의 차가움이 아닌 상대성의 따뜻함을 담은 이 영화에서 지금 가진 시간을 우리는 톺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