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처분계획 미아리 텍사스편>, 전주국제영화제
서발턴이란 말이 있습니다. 주류 슬롯의 문화적 헤게모니나 정치적 체계에서 배제되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하층민, 소외된 계층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정치에의 접근이 쉬워진 요즘 사실 이 서발턴이라는 말이 그다지 와 닿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라면 글이 익숙하고, 자기 말을 내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데 익숙할 테니 좁은 의미에서 서발턴이라고 부르기는 무척 어려울 겁니다. 여기 적힌 말들은 곳곳을 떠돌기는 하여도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것이고, 그 마음에 닿는 순간부터 연대하여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것들조차도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모두가 인터넷을 쉽게 접하고, 최소 TV로 뉴스를 24시간 접할 수 있는 이 시대에 그 모든 것들에서 멀리 떨어진 이들이 존재합니다. 분명 보편적인 인간의 삶을 살고 있지만, 시대의 이야기로부터 한참 떨어진 특수한 삶을 사는 그들에게 재개발 시작 전의 마지막 단계, 관리처분계획은 단순한 행정 단계가 아닌 삶의 기반을 뒤흔드는 사건입니다.
이제는 사라진 완전히 재개발로 들어선 지역이 있습니다. 미아리 집창촌입니다. 알 사람들은 지나치면서 매번 보았을 곳이고, 모를 사람은 죽어도 모를 그곳은 재개발로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2022년부터 4년 간 촬영한 감독은 처음에는 단순한 공간에 대한 학술적 호기심으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재개발로 예술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원래 살았던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촬영은 서울 내 공간의 불평등을 중심으로 촬영을 시작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저 멀리서볼 때 학술적 ‘공간’이었던 미아리는 4년의 촬영과 2년의 함께하는 투쟁을 통해 감독 자체의 기억, 가치, 감정이 들어간 ‘장소’로 변모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그저 서발턴으로서의 집창촌 거주민들이 사는 공간에 대한 학술적 기록이 아닌 한 인간 주체로서 성노동자들의 삶이 모인 장소를 담아낸 기억의 집합으로 발전했습니다.
학술적 기록을 만들 때는 거리감이 중요합니다. 너무 멀면 그들의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없고, 너무 가까우면 그들과 동화되어 객관적인 시선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학술적 기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재현을 하는 것이라면 두 가지 다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아주 멀리서 완전히 제도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제시해 볼 수 있고, 아주 가까이서 시대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온전히 개인을 담아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후자를 택하여 1부부터 감독의 말과 일치하는 허구의 거주민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대화를 시도하면서 동화적(同化的) 재현을 시도합니다.
1부에서는 사라지기 전 기록한 미아리 집창촌의 거리들이 사진으로 나열됩니다. 그 위에 덮어지는 것은 감독이 써내려 간 가상의 대화입니다. 집창촌에서 식당을 운영한 한 이모에게 전하는 아가씨(성노동자)가 건네는 말입니다. 그 말들에는 고되고 힘든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가 있으면서도 집창촌에서만 드러나는 특수한 삶의 형태가 드러납니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탄식 속에 그 장소에서만 겪을 수 있는 내용이 뒤섞입니다. 보편성을 통해 누구나 쉬이 공감하게 만들고, 특수성을 통해 그들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게 만듭니다. 이런 방식의 삶의 묘사를 통해 집창촌의 거주민이 피억압자, 피해자, 피탈취자라거나 성적 방종의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나의 국민, 시민이자 우리 옆의 평범한 사람임을, 하나의 노동자임을 드러냅니다. 지식인들이 인식하는 서발턴으로서의 체계 그 너머의 삶을 가진 존재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1부의 문학적 재현을 통해 하나의 개인으로서 성노동자를 인식시켰다면 그 개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2부를 통해 보여줍니다. 2부는 다큐이지만, 거리감이 거의 없습니다. ‘투쟁’이라는 제목처럼 재개발을 앞두고, 그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성노동자들의 모습을 매우 가까이서 찍습니다. 촬영 각도나 장면만 봐도 이 투쟁에 감독이 같이 참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촬영된 영상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투쟁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그 안에서 밖을 보게 합니다. 생계유지의 다양한 수단으로 성매매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은 연민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그 연민으로 그들을 바라봐줄 것이 아니라 노동을 했던 한 당당한 시민으로 그들을 봐주기를 원합니다. 시대와 제도, 권력의 무자비함에 피해를 보기만 했던 이들이 아니라 한 명의 당당한 사람으로 자신이 인식되기를 바랍니다. 투쟁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 아닌 국민과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목소리 내기입니다. 그들은 피해자라는 범주 내에서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범주를 택하지만, 적어도 이 일을 통해 가족을 먹여 살렸다는 당당하고 떳떳함을 가진 이들은 그 범주 내로 포함되기를 전혀 원치 않습니다. 그들의 삶이 그냥 또 하나의 평범한 삶으로 인정받기를 원할 뿐입니다.
이러한 투쟁이 성매매의 합법화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매매의 합법화는 현재의 여성 인권적 측면에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몇몇 나라들은 성매매를 합법화함으로써 오히려 법의 뒷면으로 성매매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만, 적어도 인륜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한국에서 성매매의 합법화는 불가능합니다. 국민적 정서가 그것을 납득하지 못합니다. 여기 나오는 성노동자들도 그것을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쏟아지는 시선들, 지탄들, 비난들을 알면서도 생계를 위해 택했던 미아리를, 그 이후에도 쥐어지는 각종 바카라임에 벗어나지 못했던 이 장소를 밖에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느라 자신은 7,900원짜리 티셔츠 하나 사 입는데 즐거움을 느꼈던 사람을, 누군가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을 내던져야 했던 사람을 우리는 불법이라는 말 아래에 가둘 수 있을까요? 이들의 투쟁을 성매매 합법화라고 말하는 이들은 그들의 행위 자체를 삶의 하나로 바라보지 못하고, 법이라는 테두리 아래에서 정상과 정당성의 의미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문학적 재현과 참여적 촬영의 뒤에는 증언이 남아 있습니다. 문학적 재현을 한 이는 4년 동안 동고동락했지만, 그 삶을 완전히는 알지 못한 지식인 감독이고, 촬영을 한 이도 2년간의 투쟁을 함께했지만, 그들과는 처음부터 다른 삶을 살아온 지식인 감독입니다. 결국 누군가의 삶을 말하는 것은 그 자신으로부터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공간적 불평등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이제 장소에 담긴 삶으로 완전히 변모했고, 그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는 몇 십년을 그곳에서 살아온 이모입니다. 말과 침묵들 사이 가장 현실적인 재현이 3부를 통해 드러납니다.
배우지 못해 다방과 술집을 전전하며 살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열심히 살았고, 사업적 성공을 통해 나름의 술집도 운영하며 돈도 벌었지만, 운명은 모질어 그녀를 미아리로 내몰았습니다. 이곳에서 아가씨 생활도 하고, 마담(현관이모, 포주) 생활도 하며 몇 십 년을 보낸 그녀는 돈을 모아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했습니다. 감독의 질문 사이사이 나오는 침묵들이 부끄러워 말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들이 그 사이의 고통을 증언합니다. 이 고통을 견뎌야 했던 이유도 명확합니다. 아픈 언니의 병원비로 모아둔 돈이 전부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이제 미아리는 곧 사라집니다.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공존하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기억을 이어준 이곳은 복잡한 슬롯적 생태계를 가진 집창촌이라는 공간을 넘어 개인의 집이라는 장소로 인식됩니다. 집이 사라지는데 주거 이전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몇몇 업주, 마담, 아가씨들의 연대는 이 집과 함께한 기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큰 걸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세상을 살아왔던 시간과 불합리함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국민으로써 강제로 집을 뺏기게 된 권리를 요구할 뿐입니다. 특수한 장소에서 만들어진 지극히 보편적인 요구입니다.
2026년 3월 그들은 성매매 피해자로서 보상이 아니라 미아리 집창촌 거주민으로서 권리를 인정받아 재개발위원회 측에서 거주지 이전 비용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집창촌이 전국에서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고, 이들의 이후 삶에 대한 해결해야 될 문제도 산적해 있지만, 적어도 그들이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은 이 소식이 내심 반갑습니다. 오랜 기간 그들에 대한 부정적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숨어 살아야 했던 그들은 서발턴이라는 동정과 연민을 통해 간신히 목소리를 낼 권리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위의 지식인이 내려다 본 것일 뿐 그들에 대한 진정한 공감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입장,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 아닌 시대의 학술적 담론이나 사상을 통해 바라본 그들을 재현했을 뿐입니다. 이 영화도 그러한 관점에서 시작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취재를 넘어 참여로 이어진 이 촬영에서 그런 관점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거리감을 없애고 공감했고, 동화하여 만든 이 영화는 공간의 의미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장소에 담긴 삶을 담아냈습니다. 그 삶은 흔히 말하는 일반인들과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당당했고, 떳떳했으며, 한 노동자이자 한 사람의 삶이었습니다.
여전히 영화는 120분이라는 시간 내에 길고 다양한 삶의 단면만을 담아냅니다. 가장 사실적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감독이라는 연출가에 의해 편집된 재현입니다. 하지만, 재현이 삶의 모든 사실을 담아낼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해버리면 우리는 누군가의 삶에 다가갈 기회조차 얻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대한의 삶을 담아내어 한 장소와 관련된 사람들을 마주하게 하는 이 영화는 우리가 몰랐고, 우리와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지만, 한국이라는 국가 내에서 삶을 같이 영위했던 사람들의 삶에 닿게 합니다. 영화를 통해 그들의 입장에서 같이 세상을 바라보고 부족한 재현이나마 그들의 삶에 공감해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넓히고, 더 넓은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평화로워 보이기만 한 세계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서발턴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사람을 향해 우리는 한 발짝 더 다가갑니다. 이 영화는 그런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