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순수한 감정 사이에서

<비단의 그림자> 전주국제영화제

bybaekja

누에가 뽑아낸 실을 명주실이라고 합니다. 이 명주실로 만든 것이 바로 명주입니다. 명주는 큰 틀에서 비단을 포함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광택이 나지 않는 것을 명주, 광택이 나는 것을 비단으로 분류합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북아시아의 천들 중 가장 비싼 것은 비단이라고 불렀습니다. 중국의 비단은 특히 그 품질이 좋아서 저 멀리 서역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수입을 했습니다. 2천 년이 넘는 중국과 서역을 잇는 교역로가 비단길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러한 이유입니다.


비단은 이처럼 화려하고 값비쌉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비단은 단순한 천을 넘어 부와 권력을 상징해 왔습니다. 오늘날 돈이 모든 가치보다 앞서는 시대에, 비단은 그러한 물질적 욕망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질만능주의는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심합니다. 마음과 같은 것들은 비효율적인 의미 없는 것으로 변해갔고, 그나마 남은 것은 물질을 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습니다. 물질이 넘치는 시대, 우리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욕망을 누르지 못합니다.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그 과정에서 순수한 마음은 필요 없는 취급을 받습니다. 혹은 갈가리 찢겨 하나도 남지 않게 됩니다. 텅 빈 웃음과 이해타산적인 마음들의 상호작용, 화려한 비단 뒤의 그림자입니다.


리잔은 현실을 잘 사는 사람입니다. 모두에게 인기가 있고, 모두에게 웃음을 전달합니다. 그녀의 주변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서 진심을 다한 감정 교환을 할 수 없습니다. 속내를 다 드러낼 수 없고,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입니다. 그것은 악의라기보다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방식이지만, 그녀를 점점 지치게 합니다. 그것을 달래줄 사람은 그녀가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를렌 뿐입니다. 몸도 마음도 모두 아파 정신없이 외로움을 헤매는 동안 마를렌만을 찾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고 마를렌을 만나 둘은 함께합니다. 둘의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하고, 손길에서도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전해집니다. 애정과 아낌 속에 더해지는 유혹은 그 사랑에 강렬함을 더합니다. 고독을 덜어준 순수한 애틋함과 열렬함을 어찌 놓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둘의 사랑은 생각보다 쉽게 끝납니다. 한 카페에서 마를렌은 리잔의 청첩장을 전달받습니다. 사랑을 잘하고 끝까지 하려하는 마를렌과 달리 리잔은 돈이 가장 중요한 세상에서 명성과 부를 좇습니다. 리잔이 결혼하는 사람이 비단 공장 사장의 아들이라는 점은 순수함은 전부 져버리고 화려함과 물질을 가지려는 점을 더욱 강조합니다.


리잔의 결혼식은 영상으로 기록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기록됩니다. 순수함을 잃은 감정 없는 기억은 공허합니다. 그 기억들에 시간의 연속은 없고 단절된 시간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 공허함을 메우는 것은 계속 커지는 웃음소리입니다. 웃음소리는 점점 거대해져 곳곳에 닿지만, 안에 순수한 기쁨과 즐거움은 없습니다. 방탕함만이 남아 있습니다. 결혼식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감정을 가지고 자기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은 리잔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마를렌과 그의 연인뿐입니다. 마를렌은 리잔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서로 반갑게 인사하지만, 위선의 말들 사이에서 둘의 사이에는 어색함만이 남아 있습니다.


리잔은 결혼 후 마를렌이 있기를 원합니다. 자기 외로움을 덜기 위한 이기적인 선택에 마를렌은 연인을 선택하려 하지만, 마를렌의 연인마저도 마를렌을 떠납니다. 마를렌은 새롭게 나아가려 하지만, 그마저도 사고로 막힙니다. 순수한 감정을 쏟아주었던 모든 사람을 잃은 순간, 마를렌에게 세상은 더 이상 머물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자기 시간을 모두 끊어내고 존재를 사라지게 합니다.


마를렌의 죽음 후 몇 년 후 전 연인은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리잔을 만났고, 리잔은 거짓말로 마를렌의 죽음을 숨깁니다. 늘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려 했던 마를렌의 죽음마저도 거짓으로 숨겨지는 것이 매우 역설적입니다. 비단의 그림자에서 그녀는 멈추어 누울 수밖에 없었고, 어둠에 덮여 사라졌습니다.


이야기의 끝은 여기이지만, 아마 리잔의 이후는 외로움에 사무치는 나날들이었을 겁니다. 간신히 만나 헤어짐조차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순수한 사랑을 전부로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그녀는 평생의 사랑을 잃었고, 화려함 뒤의 외로움을 지독하게 느끼며, 마를렌을 만나지 못할 어둠 내에서 계속 제자리를 맴돌았을 겁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상은의 시는 이미 죽어 선계(仙界)로 떠났을 마를렌을 향한 리잔이 평생 마음 한구석에 담아둘 수밖에 없었을 마음입니다. 부재에 다다라서야 부와 명예보다 중요했던 순수한 감정을 슬픔으로 얻습니다.


어렵게 만난 사이 헤어짐도 애태워

시들어 지는 꽃 봄바람인들 어쩌리

봄누에는 죽기까지 실을 뽑고

재 되어서야 마르는 초의 눈물이여

새벽 거울 앞 흰 머리 빗으며 한숨 짓는가

잠 못 이뤄 흥얼대면 달빛은 차리

봉래산은 여기서 멀지 않거니

파랑새야 날 위해 찾아가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