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혼자 결혼하고 너 혼자 애 키우냐?
하나도 온다는데 넌 뭔데 안 와?"
퇴근 후 씻고 나오는데 시끄럽게 울리는
벨소리에 집어든 핸드폰에는 정말 반가운 번호가
찍혀있었어.
"하아.. 사는 게 힘들다. 이 꼬라지로 누굴 만나"
"X랄한다 아무도 니 꼬라지 안 궁금해.
그냥 친구얼굴 한번 보자는데 뭐 말이 많아."
오랜만에 독수리 오 형제끼리 뭉치자는 기용이 삼촌의 전화.
아빠가 결혼한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한
친구들의 모습이라 정말 반갑고 보고 싶었지만
선뜻 나서진 못했어.
"말이 많은 게 아니고.."
"아~나 도리 말이 상당히 많아졌네? 어? 너 이런 애 아니잖아
너 이 새끼 누구야? 도리 손톱 주워 먹은 쥐새끼 아냐?"
"그.. 도리.. 오래전에 죽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 새끼가 나한테 말도 없이 죽었을 리 없어.
아니 시끄럽고 토요일 6시까지 ㅇㅇㅇ 로 나와
알지? 나 니네 집주소 안다? 집에서 광란의 파티를 하고 싶지
않으면 꼭 나와라."
자기 맘대로 떠들더니 자기 마음대로 끊어버린 전화.
반가운 마음에 소녀처럼 웃던 모습은 이내 한숨으로
쏟아져 버렸지.
'하아...'
"응? 도리아저씨 무슨 전화야?"
아빠의 한숨소리가 컸던 걸까?
너를 데리고 장난감을 흔들며 놀아주던 엄마가
아빠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뜬 채 물었지.
"응? 아니.. 음.. "
"뭐냐? 왜 말을 더듬냐? 무슨 불순한 전화를 받은 건데?"
뭔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실눈을 뜨며 장난스레 묻는 엄마.
"친구!"
"친구? 친구 누구?"
"기용이라고 왜 있잖아 독수리 오.."
"오! 그때 결혼식 때 웨딩카 만들어준 그 친구?"
"어! 맞어. 기억하네?"
"헤헤헤 기억하지! .. 내 인생에 한 번뿐인 웨딩카를..
아주 예쁘게 만들어준 그 친구..."
갑자기 결혼식날 생각이 나는지 이를 바득 갈아버리는
엄마였어.
"야~ 오느라 고생 많았다"
"오! 와줘서 고마워!"
"이야! 당연히 못 올 거라 생각했는데. 고마워서 어쩌냐?"
"유부남이 뭐야 인마? 오늘부터 품절남! 히히 고마워
이따 보자~"
정신이 하나도 없던 결혼식날. 식장 앞에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을 때였어.
"여기 음식 맛없더만?"
"... 이 새끼는 친구 결혼식 먹으러 오냐? 그리고 시식할 때
보니까 맛나더구먼?"
"니가 똥입이니까 그러지? 저번에 형규 결혼 여기서 했잖아.
이야 진짜 먹을게 하나도 없더만?"
"알았으니까 들어가. 하나는 안 왔어?"
"몰라? 전화해 봐. 나들어간다?"
그때였지. 웨딩홀 직원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라고.
"신랑님~ 오늘 웨딩카는 준비되셨나요?"
"네? 저희가 준비하나요?"
아빠의 질문에 웨딩홀 직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막 뒤적거리더니 이내 다시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어.
"아~ 개인 차량으로 한다고.. 요기..."
"아~ 그러네요. 근데 왜요?"
"웨딩카 꾸미는 건 어느 분이 하시나요?"
웨딩카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했던 적도 없는데 심지어
꾸며야 된다니.. 정말 난감한 순간이었지.
"저희가 기본적으로 소품 제공해 드리는 게 있거든요.
준비하신 게 있으시다면 꼭 안 쓰셔도 되시긴 하는데.."
"아.. 다행이네요.."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한숨을 내쉬고는 주위를 둘러보는데
옆에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기용이가 보이는 거지.
"야 따라가 봐. 웨딩카 소품 준대."
"누구? 나? 나? 어?"
"어. 너. 잘 부탁한다."
"미쳤냐? 너 나 미술실력 꽝인 거 몰라? 이거 우리 사이에
왜 이러냐 진짜?"
"아니야 너 한다면 하는 애잖아. 잘 부탁해 우리 신혼여행
너한테 달렸다?"
아빠의 장난스러운 부탁을 뒤로하고 직원에게 끌려가다시피
따라가던 기용이를 보며 한참을 키득거리고 있는데
"좋아서 웃는 거냐? 유부남 된다니까 실성한 거냐?"
"아나 유부남이 아니라 품절.. 오? 왔네?"
옆에서 들리는 여자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곳에
하나가 웃으며 서있던 거지.
"그럼 왔지! 우리 도리 결혼한다는데 누나가 와야지.
내가 너 기저귀 차기 전부터 키운 거 생각하면..."
"아니 얼굴만 보면 니가 누나가 맞긴 하는데? 생일로 봐도
내가 오빠잖냐? 코는 잘 안 된 거 같은데? 언제 다시 한다고?"
"야! 이.. 이거 내 거거든!"
아빠를 툭치며 삐진 척 식장으로 들어서던 하나.
어렸을 때부터 독수리 오 형제라 불렸던 친구들.
나머지 두 명은 오지 않았지만.
아니 연락조차 끊겼지만. 이미 두 명이 와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고 든든했던 것 같아.
결혼식?
솔직히 어떻게 진행됐는지 하나도 기억 안 나.
처음 해보는 결혼식이고 예행연습도 없었기에
정신도 없고, 실수투성이었지.
"신랑! 신부 측 부모님께 인사!"
슬롯를 보던 친구의 말에 장인장모님께 인사를 드리는데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지는 거야.
"야... 야!"
슬롯자가 작은 소리로 아빠를 불렀지.
"왜애~"
아빠도 입모양은 크게, 하지만 소리는 작게 왜냐고
묻자. 친구는 두 손을 이마에 대고 큰절을 하라는 듯이
아빠를 향해 몸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어.
맞아. 아빠는 신부 측 부모님께 인사하라는 말에
몸만 숙여 인사를 하고 있었단다.
그것도 90도로 아주 정중하게 말이지...
"신랑! 신부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큰 목소리로
만세 삼창 하겠습니다."
주례가 끝나고 퇴장 전. 슬롯자의 말에 진짜 있는 힘껏
소리쳤어
"만세! 만세! 만세!"
"이래서는 신부를 지켜줄 수 없습니다. 더 큰 목소리로
만세삼창하겠습니다."
"..."
이미 있는 힘껏 소리 질렀음에도 작다고 말하는 슬롯자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아빠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고 있는 엄마. 그리고 하객들이었지.
"마안세! 마안세엨! 만만세에!"
음이탈까지 내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만세를 부르던 아빠
그제서야 마음에 드는지 흡족하게 웃던 슬롯자.
"이제 신부가 만세 삼창으로 화답하겠습니다."
".... 도리야 재 뭐래?"
본인이 잘못 들었다는 듯이. 이게 진짜 일리 없다는 듯
아빠를 보며 묻는 엄마.
"히히 너 만세삼창하래~"
"아니.. 신부한테 만세 삼창 시키는 사람이 어딨어...?"
무대 울렁증이라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걸
싫어하는 엄마. 머뭇머뭇 거리는 엄마에게 슬롯자는
재밌다는 듯이 사람들의 호응을 유도하며 엄마를
재촉하고 있었지.
"아~ 신부는 신랑이 맘에 안 드나 보네요. 만세 삼창 안 하면
이결혼식 무효! 모두 동의하시죠?"
"네!"
많은 사람들의 대답 속에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는 결국
작은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엄마의 만세소리
"만... 세... 만... 세... 만... 세에...."
그날 퇴장하면서 엄마가 아빠에게 했던 말이 뭔지 아니?
"쟤.. 우리 신행 갔다 오면 꼭 불러. 다른 애 안 불러도 꼭."
아주 이를 갈던 엄마였지.
"야야! 애들 빨리 와서 사진 찍으라고 해. 하나야 기용이 어딨어?"
"밥 먹으러 갔는데?"
"무슨 밥을 사진도 안 찍고 가? 그 새X 진짜 친구 결혼식 온 거야?
밥 먹으러 온 거야?"
"몰라? 웨딩카 만드느라 힘들어서 서있을 기운도 없다면서
밥 먹으러 간댔어."
"야.. 웨딩카.. 그럴 수 있지."
뭐.. 솔직히 맘에 안 들긴 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웨딩카 만드는 일을 떠밀어 버린 탓에
더 이상 뭐라 할 입장도 아니었지.
"와.. 도리야.. 니 친구들 진짜 대박..."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웨딩카 앞에선
엄마와 아빠는 입을 다물지 못했어.
"... 하나야..."
옆에서 서있지도 못해 쪼그려 앉은 채로 배를 잡고
웃던 하나.
"... 기용이 이 새끼 잡아와.."
운전석과 보조석 문에 날개모양 장식과
앞쪽 본네트 위에 동그란 공 같은 장식을 올려놓은..
그게 아빠 결혼식 웨딩카의 전부였어.
아 하나 더 있었다.
"이건 또 뭐야?"
하얀색 차에 검은색으로 삐뚤빼뚤 큼지막하게, 그리고
여러번 덧칠해 두껍게 써놓은 글자.
옷으로 살짝 문질러 봤는데 잘 지워지지도 않는거야.
"A..re You.. M...a... rine? 이 새X가..진짜...."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신혼여행에서 엄마와 아빠는.
기용이 삼촌이 만들어준 드랍쉽을 타고 공항으로 향하던
한쌍의 마린. 테란이었던 거지..
"그래서? 기용이가 뭐래?"
"아~ 그냥 오랜만에 좀 보자네? 토요일에.
그냥 다음에 보자고 할려고"
핸드폰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얘기하는 아빠를 빤히 쳐다보던 엄마.
"왜애? 간만에 놀다 와~ 아빠 되기 전에 도리로 돌아가라!"
마술이라도 부리듯이 양팔을 아빠 쪽으로 뻗은 상태로
손을 꼼지락거리며 외치는 엄마.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키고
말을 이었지.
"됐어~ 괜히 돈이나 들지. 그 돈이면 우리 도윤이
옷이나 한번 더 사주겠네."
"오~ 그것도 좋은데. 일단 자네 멘탈에 휴가를 주는 게
우선이야! 멘탈 망가지면 고치기도 힘들다요!"
엄마의 말에 많이 흔들렸던 것 같아.
지금 내 형편에 무슨 친구냐? 친구 만나서 쓸 돈이 어딨냐?
하면서 스스로 고개를 젓던 때였지만.
아빠의 마음 한구석은 꼭 그렇지만도 않았었나 봐.
"진짜 가도 돼?"
"웅! 갔다 와 도윤이랑 나는 걱정 말고~"
"헤헤 그럴까?"
"얼씨구. 처음부터 안 갈 생각이 없었구만! 참! 그리고
간 김에..."
"응? 간 김에! 뭐? 뭐 사다 줄까?"
갑자기 단호한 표정. 마치 사극드라마에 장군 같은
근엄한 모습을 보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 엄마였지.
"기용이 목을 따 내 앞으로 가져오거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는 생각에 어찌나 설레던지
그런 아빠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 즐거웠던지 환하게 웃던 엄마.
그리고 엄마 아빠가 웃고 장난치는 걸 보며 자기도 웃어야
되는 줄 알았던 건지 그날따라 더 크게 웃던 도윤이 너까지.
그날 그 작은 신혼집의 웃음소리는 밤이 늦도록 그치지
않았던 것 같아.
약속당일.
평소라면 잘 서지도 않았을 거울 앞에 한참을 서있던
아빠였어.
"오.. 아저씨도 거울 보네.."
거울 앞에서 이 옷 저 옷 입어보고, 머리도 몇 번을 고쳐 만져 가며
고민을 하는 아빠를 보던 엄마가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며 말했지.
"마누라.. 이게 나을까? 아닌가? 이바지에 저 옷이 낫나?"
"..."
어떤 걸 입어야 더 멋있을까? 잘 어울릴까?
아니야. 아빠는 딱 하나였어.
'어떻게 입어야 내 가난이 티가 안 날까...'
그런 아빠의 생각을 읽은 건지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엄마는 옷장을 뒤적거리더니 옷 두 벌을 내밀었지.
"자~ 양복하고 츄리닝~ 뭐 입고 갈래?"
양복과 츄리닝을 내밀던 엄마.
너무 양쪽으로 극단적인 컨셉에 정신없는데 이건 또
웬 장난 인가 싶어 한숨을 쉬며 말했지.
"하아.. 뭐야.. 시간도 없는데"
"골라봐~ 뭐 입을 거야?"
계속되는 엄마의 장난에 슬슬 짜증이 올라온 아빠는
살짝 격양된 말투로 말을 이었지.
"누가 친구들 만나러 가는데 양복을 입냐? 그리고
츄리닝은 뭐야? 바쁘다니까? 골라주기 싫으면 놔두던가"
아빠가 짜증을 내자
순간입이 삐죽 나오는가 싶더니 생긋 웃으며 말을 잇는
엄마였지.
"그래~ 친구! 친구 만나러 가는 거지.
당신 선보러 가거나. 일하러 가는 거 아니잖아?
왜 어려워? 며칠 안 씻었어도 걸려있는 거 아무거나 입고
모자 눌러쓰고도 만날 수 있는 게 친구잖아~"
그때 느꼈던 것 같아.
'아... 나 친구 만나는 방법도 잊고 살고 있었구나..'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내 잘난 모습?
내 멋있는 모습? 아니..
그런 보여지는 모습.
내 조건이 아닌.
단순히 나 도리 라는 그이유 하나만으로
친구라는 이름으로옆에 있었던 거야.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게 없고 그들이 어떤 상황이어도
친구이기에 상관이 없었던 그 시절 나.
그런 나와 같았기에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그 친구들.
그 모든 걸 잊고 살고 있었던 거지.
"다녀올게.."
"응! 술 많이 먹지 말고~ 기용이 목은 꼭 따오도록!"
마지막까지 기용이 삼촌의 사살명력을 잊지 않던 엄마를
뒤로하고 약속장소로 향하던 아빠.
발걸음이 무거운 듯 가벼운 게. 시간이 마치 멈춰있는 듯
역행하는 듯 그리고 빠르게 가는 듯 참 오묘한 느낌이었던
것 같아.
약속장소 앞.
마른오징어의 비릿하면서 고소한 냄새와 깊이 찌들어버린
담배냄새가 밖 까지 새어 나오던 그곳.
성인이 되던 그해 1월 1일 00시가 되길 기다렸다가
해가 바뀌는 순간 몰려간 그 순간부터 단골이 되었던
호프집.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임에도 그날의 설렘 그대로
그 문 앞에 서서 잠시동안 숨을 고르고 있었던 아빠.
심호흡을 크게 하고 문을 여는데
"손잡이에 벌레 있냐? 안 들어가고 뭐 해 병X아.."
그 한마디가 아빠를 추억 속에서 이 세계로 다시
소환해 버렸어.
아주 격하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