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소유물이 아니라 신경계의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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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상대방이 한 말은 특별히 나쁜 말이 아니었다. 평소라면 그냥 흘려들었을 말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말이 심장 어딘가에 박혔다. 은근히 끓어올랐다.
나는 그 감정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감정이니까.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며칠 후, 같은 사람이 비슷한 말을 했다. 아무렇지 않았다. 가볍게 웃고 넘어갔다. 말은 같았다. 상대는 같았다. 달라진 건 딱 하나였다.
그날은 잘 잤고, 밥을 먹었고, 몸이 가벼웠다.
그렇다면 그날의 화는 무엇이었는가.
나의 감정이었는가.
아니면 신경계가 특정 상태에 있었고, 뇌가 그것을 '화'라는 이름으로 번역한 것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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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오랫동안 감정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가져왔다.
하나는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다.
이성이 감정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던 전통 — 데카르트의 후예들, 금욕주의자들, "감정에 흔들리면 약한 것"이라고 가르쳤던 문화 — 이 진영에서 감정은 통제해야 할 짐승이다.
다른 하나는 감정을 숭배하는 것이다. 감정은 진실이고, 본능은 거짓말하지 않으며, 느끼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태도. 이 진영에서 감정은 가장 순수한 나 자신이다.
그런데 둘 다 같은 전제를 공유한다. 감정은 내 것이라는 것.
억압해야 할 내 것이든, 해방시켜야 할 내 것이든.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은 이 전제 자체를 뒤집는다.
감정은 네 것이 아니다. 감정은 뇌가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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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럿이 20년 넘게 수천 건의 뇌 영상을 분석한 끝에 도달한 결론은 이렇다. 분노에 해당하는 고정된 뇌 회로는 없다. 두려움만의 신경 패턴도 없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것 — 분노, 슬픔, 기쁨, 두려움이 각각 뇌의 특정 영역에 새겨져 있다는 믿음 — 은 뇌 스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감정은 어디서 오는가.
뇌는 예측 기계다. 매 순간 몸 안에서 올라오는 신호를 감지한다. 심장 박동, 혈당, 근육 긴장도, 호흡의 리듬. 이 신호들은 뇌에 도착할 때 아직 이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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