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인가

생각은 신경계가 만든 이야기다

by크리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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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장자는 나비가 되었다.

꽃밭을 날고, 바람을 탔다. 나비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은 장자였다. 그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나비가 된 꿈을 꾼 장자인가, 아니면 장자가 된 꿈을 꾸고 있는 나비인가.


2,500년 전 중국의 이 이야기를 사람들은 흔히 철학적 수수께끼로 읽는다. 현실과 꿈의 경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유희라고.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를 다르게 읽는다. 장자는 철학을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신경계의 가장 깊은 비밀을 건드린 것이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얼마나 확실한가.


잠을 못 잔 날의 나와 충분히 잔 날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 배가 고픈 순간의 나와 배부른 순간의 나는 동일한 존재인가. 사랑에 빠진 나와 실연당한 나는 같은 신경계를 가지고 있는가.


몸의 상태가 바뀌는 순간, '나'도 함께 바뀐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나는 생각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신경계 상태가 만들어낸 일시적인 이야기인가.


데카르트는 1637년에 선언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한 문장이 이후 400년의 서양 문명을 설계했다. 이성이 감정보다 우월하다. 논리가 몸보다 신뢰할 수 있다. 인간은 생각으로 자신을 통제하는 존재다. 근대 교육, 근대 의학, 근대 경제학이 모두 이 전제 위에 세워졌다.


그런데 그 전제가 틀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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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가 방법서설을 쓰던 바로 그 시절, 암스테르담의 한 청년이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대인 공동체에서 파문당하고, 가족에게 버림받고, 가난 속에서 렌즈를 갈며 살았던 바뤼흐 스피노자.


그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데카르트에게 반기를 들었다.


스피노자의 핵심 명제는 놀랍도록 단순하다. 몸과 마음은 두 개의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실체가 드러나는 두 가지 방식이다.


그의 주저 에티카에는 이런 명제가 있다.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은 신체다. 정신이 신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곧 신체의 관념이다. 몸이 변하면 생각도 변한다. 몸이 곧 생각이다.


당시 이 주장은 이단이었다. 교회는 물론 철학계도 외면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 — 정신과 육체의 분리 — 이 승리했고, 스피노자는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났다.


그로부터 350년이 지났다.


2003년,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가 바카라 한 권을 출간했다. 제목은 스피노자를 찾아서(Looking for Spinoza). 그 바카라의 핵심 메시지는 이렇다. 신경과학은 결국 스피노자가 옳았음을 증명했다. 데카르트가 이겼던 400년의 전쟁에서, 스피노자의 망령이 조용히 귀환한 것이다.


다마지오는 이 결론을 단순한 이론으로 얻지 않았다. 그는 수백 명의 뇌 손상 환자를 관찰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례가 피니어스 게이지다. 철도 공사 중 사고로 전두엽 일부가 파손된 이 남자는, 사고 이후에도 언어도, 기억도, 논리적 추론도 완벽히 유지했다. IQ는 멀쩡했다. 그런데 그는 더 이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 어디서 일할지 — 가장 단순한 선택 앞에서 그는 무한히 망설이다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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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철학, 법학을 전공| 화가 | 작가 | AI·반도체·기업분석, 사유의 결로 꿰어진 이야기들, 다양한 분야의 통찰을 삶의 층위를 담아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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