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애매한 말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사람

by마음벗

주변에는 꼭 이런 사람이 있다.


말투는 온화하고 웃고 있지만, 정작 그 말에는 가시가 있는 사람 말이다. 나를 걱정하는 듯한 말을 꺼내지만, 그 안에는 위로나 배려보다는 나를 깎아내리려는 듯한 느낌이 담겨 있다.


그런 말들의 특징은 의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분명 불쾌하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격하게 반응하면 오히려 내가 예민하거나 못난 사람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그런 말의 진짜 의도는 알 수 없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을 서툴게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는 결국 그 말을 내뱉은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이 반복되고, 상대가 은근한 불쾌감과 무력감, 때로는 비참함까지 느끼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구나 그 말에 자신을 설명하거나 증명하려는 모습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적어도 그 관계가 자신에게 편안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정말 할 수 있겠어?"

"네가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

"그렇게 해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이런 말들은 능력을 의심하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정말 그게 네가 원하는 거야?"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어?"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어?"

"그런 선택을 하는 게 과연 현명할까?"

선택을 의심하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내가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잘 생각해 봐."

"네가 상처받을까 봐 하는 말이야."

"괜히 나섰다가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네가 감당하기에는 조금 벅차지 않을까?"

걱정하는 척하면서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네가 그런 생각도 다 하는구나."

"생각보다 자신감이 있네."

"네가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몰랐네. "

또한 은근히 상대를 낮추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네가 정말 잘 판단한 게 맞을까?"

"혹시 네가 너무 좋게만 생각하는 건 아닐까?"

"네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조금 성급하지 않을까? "

상대의 판단을 흔드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질문은 겉으로는 걱정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상대의 능력이나 선택, 판단을 평가하고 은근히 낮추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상황이나 처지에 따라서는 단순한 질문을 넘어 자신의 능력이나 가능성 자체를 의심받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말 궁금해서일 수도 있고,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반면 상대를 무시하거나 자신이 해내지 못한 일을 상대가 해내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로는 질투에서 비롯된 말일 수도 있다.


내가 경험한 관계에서는 상대를 무시하거나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상대가 해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질투에서 비롯된 듯한 말들이 반복되기도 했다.


물론 모든 애매한 말을 부정적인 의도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떤 의도에서 비롯되었든 그 말이 반복적으로 상대를 불편하게 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설명하도록 만든다면 그 관계에서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대응하지 못한다. 상대의 말이 명백한 모욕이라면 불쾌함을 표현할 수 있겠지만, 걱정이나 관심을 가장한 말에는 적절하게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화를 내거나 격하게 반응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도 쉽지 않다. 결국 우리는 그 상황에 맞는 유연한 대처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질문에 답하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때로는 자신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증명하려 한다. 상대가 단순히 질문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해명이 아닌 해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혼자 있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왜 그런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고 있었을까?‘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 괜히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도 하고,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때로는 우연히 접한 철학자의 문구를 마음에 새기며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정작 상대의 말로 인해 시작된 불편함은 잊고, 자신이 어떻게 대응했어야 했는지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정말 자신이 현명하지 못했던 것일까? 모든 상황에서 적절한 대답을 찾아내고,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며, 불쾌한 감정까지 완벽하게 다스려야만 현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상대의 애매한 말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 말에 대응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끄집어내어 질문받고, 그때마다 자신의 생각과 선택을 설명해야 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더욱이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의 말뿐만 아니라 자신의 판단까지 의심하게 될 수 있다.


물론 가까운 관계에서는 서로의 생각을 묻고, 때로는 상대의 선택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진심 어린 걱정이나 조언이 언제나 편안하게 들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상대를 존중하는 질문과 상대를 의심하게 만드는 질문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진정으로 상대를 걱정한다면 상대의 상황을 먼저 이해하려 할 것이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상대가 스스로 판단할 여지를 남겨둘 것이다.


좋은 관계란 서로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상대의 능력과 선택을 함부로 의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대화할 수 있는 관계다. 상대가 자신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증명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설명하도록 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일이다.


상대의 모호한 말에 매번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도를 파악하고, 적절한 대답을 찾는 데 자신의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대답하지 않는 것, 더 이상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 것 또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결국 내 곁에 두어야 할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받기 위해 상대를 낮추거나, 배려를 가장한 모호한 말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상대의 생각과 선택을 존중해 주고, 굳이 자신을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존중받을 수 있는 관계가 좋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모든 말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보다, 자신을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관계에서 벗어날 줄 아는 것이 때로는 더 중요하다.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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