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일 수 있게 해주는 사람
사람은 누구에게나 서툴고 어설픈 모습이 있고, 어딘가 부족한 부분도 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기도 하고, 때로는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는 결국 자신의 몫이다.
그 부분을 고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도 달라지고 경험도 쌓였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쉽게 바뀌지 않는 나만의 모습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타인의 생각은 나와 다를 수 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 내면에 쌓인 복잡한 감정들을 통해 타인을 바라본다. 그렇게 각자의 내면은 타인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렌즈가 된다.
나에게는 부족하게 느껴지는 모습에서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모습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또한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모습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상대에게는 점점 커다란 결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에게 자신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 부분을 고쳐 나에게 맞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상대를 바꾸는 것보다 때로는 내가 그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상대의 모습이 더 이상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고쳐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하면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상대의 모든 모습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그 모습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이다.
물론 서로 다른 모습을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때로는 관계를 위해 서로의 생각과 행동을 조율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의 고유한 모습까지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상대가 자신의 기준에 맞는 모습으로 바뀌기를 끊임없이 요구하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바뀌기를 바라는 요구가 반복될수록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어려워진다. 결국 상대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모습만 남기고, 자신의 본래 모습은 조금씩 감추게 된다.
말을 하기 전에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기 전에 이것이 상대가 좋아하는 모습인지 살피게 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중요해지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상대의 눈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가 중요해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를 수정하기 시작한다.
조금 덜 말하고, 조금 덜 웃고, 조금 덜 좋아하고, 조금 덜 싫어하는 사람이 된다.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만 남기고, 그렇지 않은 모습은 감추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가 과연 편안한 관계일까.
처음에는 관계를 지키기 위한 작은 배려였을지 모른다.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맞춰주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계속 감추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것은 배려라기보다 자신을 잃어가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자신의 진짜 모습을 연출해야 하는 대상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가까운 사람 앞에서조차 끊임없이 자신을 연출해야 한다면, 어느 순간 내 삶이 진짜 내 삶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때 찾아오는 감정은 단순한 피로가 아닐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을까.’
‘나는 대체 누구를 위해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자신을 향한 의문과 함께 자괴감이 밀려올 수도 있다.
처음에는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그것이 오래 반복되면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모습에 스스로 지쳐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자신을 점점 받아들이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물론 온전히 나일 수 있는 삶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지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동안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도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맞춰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서로를 맞춰가는 일이 한 사람에게만 요구된다면, 결국 자신의 모습을 상대에게 끊임없이 맞추며 살아가야 한다.
이미 그런 관계가 형성된 상황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만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힘들고 고된 삶인가.
관계를 위해 자신의 모습이 아닌 상대에게 맞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버려야만 관계가 이어진다면, 그 관계 안에서 계속해서 나다운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나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상대에게 맞는 모습이 되어야만 관계가 유지되는 곳에서 나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온전히 나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한다는 뜻이 아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바카라임을 회피하면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도 자기다움은 아니다.
자기다움에는 자신의 선택에 바카라임지는 태도도 함께 따라온다.
다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숨기지 않을 수 있고,
나의 생각을 말하면서도 거절당할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며,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면서도 나 자신의 마음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
나는 그것이 관계 속 자유라고 생각한다.
온전히 나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온전히 내 삶을 살아낼 수 있다.
그래서 내 곁에 둬야 하는 사람은 나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 계속 자신을 수정하거나 감추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것을 꾸미지 않고 말할 수 있게 해 주고, 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게 해 주며, 결국에는 온전히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다.
어쩌면 우리가 곁에 둘 사람을 선택할 때 찾아야 하는 것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신을 끊임없이 고쳐야 하는 곳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 곁에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