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게 하는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서로의 호의를 고마워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행동들이 쌓이면서 두 사람 사이에 연결되는 고리가 생겨난다. 그 고리가 조금씩 단단해지면서 신뢰와 믿음도 만들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있다.
처음에는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건넨 호의였는데, 그 호의가 어느 한쪽에서만 일방적으로 반복되면서 호의가 당연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관계를 원만하게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호의를 베풀던 사람은 오히려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많이 해준 걸까.’
‘내가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걸까.’
‘상대가 이렇게 하는 것이 정말 이상한 건가, 아니면 내가 예민한 건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건넨 호의였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호의를 베푼 사람의 판단과 감정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호의를 권리가 아니라 배려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처음부터 구분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처음부터 관계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며, 사람을 의심하는 것을 관계의 기본값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
그래서 나름의 여러 경험을 통해 나는 한동안 이런 방법을 생각했었다.
호의를 건네고, 지켜보고, 필요하다면 거두어들이는 것.
하지만 이것 역시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호의는 주식처럼 투자했다가 손실이 생기면 회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마음을 건넨다는 것은 그 사람을 믿어보는 일이기도 하고, 관계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호의를 주고 거두는 기술이 아니라, 그 호의가 관계의 연결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내가 준 것과 똑같은 것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배려했으니 상대도 똑같이 배려해야 하고, 내가 이해했으니 상대도 똑같이 이해해야 한다는 식으로 관계를 계산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거래가 될 수 있다.
사람마다 사랑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식이 다르더라도 관계를 이어가려는 마음은 어느 곳에선가 드러난다.
내가 건넨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마워하는 태도,
나의 배려를 이용하기보다 자신도 관계를 위해 무언가를 하려는 태도,
내가 힘들 때 나의 입장을 한 번쯤 생각해 보려는 마음.
이런 것들이 쌓일 때 비로소 호의는 일방적인 베풂에서 관계의 연결로 바뀐다.
어떤 관계에서는 처음부터 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감당하기도 한다.
신혼부부는 결혼과 함께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아직 서로의 역할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완성된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은 함께 살아가면서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각자의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한쪽이 정신적이나 육체적인 이유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기 어려운 시기가 찾아오면, 다른 배우자가 그 몫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게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은 당신이 힘드니까 내가 조금 더 할게.’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몫보다 조금 더 많은 일을 감당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처음에는 조금씩 옮겨지던 역할이 어느 순간 대부분 한쪽으로 옮겨가는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역할은 하루아침에 이동하지 않는다.
하나를 대신하고, 또 하나를 대신하다 보면 그 변화에 익숙해진다. 조금씩 늘어나는 역할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배려하던 배우자는 어느 순간 자신이 너무 많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때 비로소 자신이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 단순한 배려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몫을 넘어 상대의 몫까지 함께 감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런데 더 어려운 것은 두 사람의 기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는 오랫동안 자신의 몫을 대신해 준 일이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을 수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역할이 상당 부분 상대에게 옮겨져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그저 매일의 평범한 일들이 쌓였을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나간 순간들이 모여 어느새 기울어진 저울을 만든다.
그리고 한쪽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힘들다는 마음을 꺼내는 순간, 상대는 오히려 당황할 수도 있다.
‘왜 갑자기 그래?’
하지만 그것은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조금씩 옮겨진 역할과 반복된 배려가 한 사람에게는 이미 너무 큰 무게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는 쉽게 말할 수도 없는 깊은 골이 생기기도 한다.
처음에는 사랑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당연함이 되고, 그 당연함이 결국 한 사람에게 상처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가정은 특별한 사건 하나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이렇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아무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기울어지기도 한다.
이런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이 했는지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감당하고 있는 것이 호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아니면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배려를 받은 사람이 그 배려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권리처럼 여기기 시작하면, 한 사람의 호의는 관계를 연결하는 힘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구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상대가 나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보다, 내가 그 상황을 이상하게 느끼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하는 순간 관계의 균형은 흔들린다.
그래서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호의를 베풀지 않는 것이 아니다.
호의를 베풀되, 그 호의가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방식으로 돌려받지는 못하더라도, 상대가 자신의 방식으로 관계에 응답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 잘해주었는데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계속해서 나를 내어주어야만 유지되는 관계라면, 그 관계가 건강한지 돌아볼 필요는 있다.
좋은 관계에서는 한 사람이 계속해서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계속 참아야 하지도 않고, 계속 이해해야 하지도 않으며, 계속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지도 않는다.
서로의 호의가 서로에게 닿고 있다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게 하는 사람’이다.
나를 무조건 옳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건넨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도 관계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
내가 관계를 지키기 위해 했던 선택들이 결국 나 자신을 잃게 만들지 않도록 해주는 사람.
어쩌면 우리가 곁에 둘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잘해주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그 사람에게 마음을 건넸을 때, 그 마음이 나를 잃게 만드는가, 아니면 우리를 연결하는가.
그 차이를 알아보는 것이 관계를 오래 건강하게 이어가는 데 필요한 지혜일 것이다.
호의는 관계의 시작일 수 있지만, 서로의 응답이 있을 때 비로소 관계가 된다.
결국 내가 곁에 두어야 하는 사람은, 내가 건넨 호의를 당연함으로 만들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관계에 응답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만들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