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빛을 그리다.

20장. 빛이 인간의 감정으로 내려오다. 생트샤펠에서 그리스도를 애도함

by김현준

빛으로 만든 보석 상자.

유럽 여행에서 센강을 처음 보았다.

파리는 내게 낭만의 도시였다.

샹송이 흐르는 거리, 에펠탑과 몽마르트르 언덕, 영화 속 연인들이 걷던 강변까지.

그런데 막상 마주한 센강은 생각보다 작았다. 한강에 익숙했던 내 눈에는 조금 아담하게 느껴졌다.


인생은 참 묘하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유럽 미술에 관한 글을 쓰게 될 줄은. 알았다면 사진을 훨씬 많이 찍었을 것이다.


파리에서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는 생트샤펠(Sainte-Chapelle)이다.

센강에 둘러싸인 시테섬에는 한때 프랑스 왕들이 머물던 왕궁이 있었다.

생트샤펠은 그 왕궁에 딸린 예배당으로, 13세기 루이 9세가 건립했다.

예수의 가시관 등 성유물을 보관하기 위한 장소이기도 했다.

왕궁의 옛 모습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생트샤펠은 남아 있었다.


처음 마주한 건물은 기대보다 아담했다. 화려한 왕실 예배당을 상상했던 나는 조금 실망했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 위층에 올라서는 순간,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푸른빛과 붉은빛, 황금빛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가느다란 돌기둥 사이로 높고 긴 유리창이 이어졌고, 별이 수 놓인 듯한 천장 아래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마치 거대한 보석 상자 안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빛으로 만든 보석 상자.


고대 로마인들은 P. 파니우스 시니스토르 별장의 벽에 기둥과 건축물을 그려 넣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벽 너머까지 이어지는 듯한 착시를 만들었다.


생트샤펠의 장인들은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돌벽의 면적을 줄이고 그 자리에 높고 긴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했다.

그림으로 공간을 넓히는 대신 빛이 공간을 바꾸도록 한 것이다.


로마인은 벽 너머에 또 다른 세상을 그렸다.

중세인은 빛으로 또 다른 세상을 만들었다.


천국으로 가는 길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ainte_Chapelle_Interior_Stained_Glass.jpg


생트샤펠에는 두 개의 예배 공간이 있다.

아래층은 왕궁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었고, 위층은 왕과 왕실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용했다.

아래층은 천장이 낮고 기둥이 촘촘하다. 그러나 위층으로 올라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높은 유리창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15개의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창에는 성경과 성유물의 역사를 담은 1,113개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리의 약 3분의 2는 중세에 제작된 것이다. ¹


가까이서 보면 거대한 그림바카라이다.

아담과 이브, 노아와 모세, 이스라엘의 왕들, 예수의 생애가 작은 그림마다 이어진다.

한 걸음 물러서면 그림보다 색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붉은빛과 푸른빛이 서로 겹치고, 햇살이 스며드는 곳마다 새로운 색이 태어난다.

해가 움직이면 예배당의 모습도 달라진다.


중세 장인들은 뾰족한 아치와 지지 구조를 활용해 높은 창문을 만들었다.

돌벽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유리창이 공간을 둘러싸면서 건물은 놀라울 만큼 가볍게 느껴진다.

건물을 지탱하는 것은 돌이었지만,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빛이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비잔틴 장인들이 작은 테세라를 모아 신성한 빛을 표현했다면,

프랑스의 고딕 장인들은 유리를 통과하는 햇빛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모자이크의 빛은 그림 안에서 반짝였고,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은 그림 밖으로 흘러나와 사람들을 감쌌다.


지금은 노트북을 열어 생트샤펠의 사진을 다시 찾아본다. 유리창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사진 속 빛은 그곳에 서서 느꼈던 빛과 다르다.

사진은 색을 담지만, 기억은 그때의 감정까지 불러오기 때문이다.


생트샤펠이 완성되고 약 60년 뒤, 이탈리아 파도바에서는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림 속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땅 위에 누운 한 사람에게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그 곁에는 죽은 아들을 끌어안은 어머니가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슬픔

스크로베니 예배당에는 아직 가 본 적이 없다. 자료와 사진을 통해 그곳을 살펴보았다.

이탈리아 북부 파도바에는 스크로베니 예배당(Cappella degli Scrovegni)이 있다. 14세기 초, 부유한 시민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예배당을 세우고 화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에게 벽화를 맡겼다.
조토는 1303년부터 1305년 사이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생애를 벽화로 그렸다. ² 그가 주로 사용한 프레스코는 젖은 회벽에 안료를 칠하는 기법이다. 안료가 회벽과 함께 굳어 그림이 벽의 일부가 된다.


사진 속 예배당의 깊고 푸른 천장에는 황금빛 별들이 흩어져 있다.

벽에는 성모와 예수의 삶이 여러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중 유독 시선을 붙잡는 작품이 있다.

〈그리스도를 애도함〉.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iotto_di_Bondone_009.jpg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다.

화면 왼쪽 아래에서 성모 마리아가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있다.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아들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본다. 성모의 눈은 오직 예수에게 머물러 있다.

그림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슬픔이 전해진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발을 붙잡고 앉아 있다. 사도 요한은 두 팔을 뒤로 벌린 채 몸을 앞으로 숙인다.

같은 죽음 앞에서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온몸으로 슬퍼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우리가 슬퍼하는 모습과 닮았다.


앞서 살펴본 시나이 수도원의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가 떠오른다.

그 그림에서 예수는 정면을 바라보며 신성한 권위를 드러냈다.

그러나 조토의 그림에서 예수는 생명이 없는 몸으로 누워 있다.

성모는 기독교에서 성스러운 존재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이기도 하다.

예수와 성모, 사도 요한 등 여러 인물의 머리 뒤에는 황금빛 후광이 있다. 후광이 없는 인물들도 그들 곁에서 함께 슬퍼한다.

후광은 인물들의 신성함을 구분했지만, 슬픔은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 ³


천사들도 인간처럼 슬퍼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또 하나의 놀라운 장면이 있다.

하늘에 떠 있는 열 명의 천사들이다. 천사들은 모두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그러나 표정과 몸짓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누군가는 두 팔을 벌려 통곡한다. 머리를 쥐어뜯는 천사도 있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땅을 내려다보는 천사도 있다.

천사들은 하늘을 날고 있지만, 그들의 감정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이 장면을 보니 고대 그리스인들이 떠오른다. 그리스인들은 신에게 인간의 모습과 감정을 부여했다.

제우스는 분노하고, 헤라는 질투했으며, 데메테르는 딸을 잃은 슬픔에 빠졌다.

신들도 인간처럼 사랑하고 질투하며 분노했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통해 신을 이해하려 했다.


조토의 그림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이 신에게 인간의 감정을 부여했다면, 조토는 천사의 얼굴에 인간의 슬픔을 그려 넣었다.

물론 그리스 신화의 신과 기독교의 천사는 서로 다른 존재다. 두 시대의 미술이 같은 생각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표현 방식에는 닮은 점이 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습과 감정을 빌려주었다.

하늘의 천사들도 인간과 다르지 않게 슬퍼하고 있었다.

조토는 그 슬픔을 열 개의 서로 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했다. ³


등을 돌린 사람들이 전하는 것

화면 앞쪽에는 두 사람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뒷모습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두 사람의 어깨너머로 예수와 성모를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마치 그들 뒤에 앉아 같은 장면을 지켜보는 듯하다.


그림 속 공간과 보는 사람의 공간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조토는 인물들을 서로 겹치게 배치해 깊이를 만들었다.

앞사람이 뒷사람을 가리고, 앉은 사람과 서 있는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느껴진다.

옷의 주름에도 밝음과 어두움이 있다. 빛을 받은 부분은 밝고, 접히거나 그늘진 곳은 어둡다.

이러한 명암은 팔과 다리, 몸통에 부피를 만들어 준다.

평평한 벽 위에 그려진 사람들이 실제 공간을 차지한 인물처럼 보인다.


생트샤펠에서는 햇살이 색유리를 통과해 공간을 물들였다.

조토는 밝음과 어두움의 차이로 그림 속 인물에게 입체감을 주었다.

생트샤펠의 빛은 공간을 바꾸었고,
조토의 명암은 인간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었다.


물론 조토가 이러한 표현을 처음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고대 로마와 비잔틴 미술에도 인체의 입체감과 공간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었다.

인간의 슬픔 역시 조토 이전부터 그려졌다.

조토의 중요성은 중세 말기 이탈리아 회화에서 인물의 무게와 감정, 공간을 더욱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길을 넓혔다는 데 있다.

그의 공간 표현은 관찰과 직관에 바탕을 두었다.

수학적 선원근법은 훗날 르네상스 시대에 체계적으로 발전했다. ³

인물에게 무게와 공간이 생기자 슬픔도 실제처럼 느껴진다.

보는 사람은 단순한 관람자를 넘어, 그 장면 곁에 머무는 사람이 된다.


메마른 나무와 다시 시작되는 삶

화면 오른쪽 위에는 바위 언덕이 있다.

언덕은 왼쪽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온다. 그 선을 따라가면 끝에 예수와 성모가 있다.

조토는 바위의 경사를 이용해 우리의 시선을 두 사람에게 모았다.

그런데 언덕 위에는 이상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잎이 없는 메마른 나무다.

왜 조토는 슬픔에 잠긴 사람들 뒤에 이 나무를 그렸을까?

기독교에서 예수의 죽음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부활이 뒤따른다.

그래서 이 나무를 죽음 이후에 찾아올 새로운 생명, 곧 부활의 희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³

겨울을 지난 나무는 다시 잎을 틔울 수 있다.

그림 속 사람들은 지금 슬픔에 잠겨 있다. 아직 부활의 기쁨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림을 보는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죽음 뒤에 부활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메마른 나무는 어쩌면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빛이 인간의 얼굴에 머물다.

700년 전 그림 속 사람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며 왜 우리의 마음도 움직일까?

그들이 살던 시대도, 믿던 세계도 지금과 다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은 낯설지 않다.

성모는 여전히 후광을 두르고 있다. 그런데 사진 속에서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황금빛 후광이 아니었다.

아들의 머리를 감싸 안고 있는 어머니의 손이었다.

그 손에는 신성한 권위보다 인간의 사랑이 먼저 느껴졌다.


아직 이 그림 앞에 직접 서 보지는 못했다.

언젠가 파도바에 가게 된다면, 어머니의 손을 직접 보고 싶다.

그림 속 손끝에 남아 있는 700년 전의 슬픔을 마주하고 싶다.


비잔틴의 장인들은 신성한 빛을 모자이크에 담았다.

프랑스의 고딕 장인들은 유리를 통과하는 빛으로 천국을 표현했다.


그리고 조토는 그 빛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그의 그림에서 성모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였고, 천사들마저 인간처럼 슬퍼했다.

빛은 여전히 하늘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빛은 인간의 얼굴에도 머물고 있었다.

1. Centre des monuments nationaux. “A Closer Look at the Sainte-Chapelle”; “A Unique Set of Stained Glass Windows.” Sainte-Chapelle.

https://www.sainte-chapelle.fr/en/discover/a-closer-look-at-the-sainte-chapelle

https://www.sainte-chapelle.fr/en/discover/a-unique-set-of-stained-glass-windows

생트샤펠의 상·하층 예배당 구조, 15개의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창에 묘사된 1,113개의 장면, 중세 원형 유리의 보존 비율, 빛과 색채를 활용한 고딕 건축의 특징에 관한 설명을 참고했다.

2. Musei Civici di Padova. “History of the Scrovegni Chapel.” Comune di Padova.

https://cappellascrovegni.padovamusei.it/en/cappella-giotto/history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건립 배경, 엔리코 스크로베니의 후원, 조토의 1303~1305년 벽화 제작 시기,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생애를 다룬 벽화의 구성에 관한 설명을 참고했다.

3. Zucker, Steven, and Beth Harris. “Giotto, Arena (Scrovegni) Chapel (Part 3 of 4).” Smarthistory, December 10, 2015.

https://smarthistory.org/giotto-arena-scrovegni-chapel-part-3-of-4/

조토의 〈그리스도를 애도함〉에 등장하는 성모와 사도들의 슬픔, 천사들의 다양한 표정과 몸짓, 등을 돌린 인물들의 배치, 명암과 인물의 무게감, 공간의 깊이, 바위 언덕의 구도와 메마른 나무의 부활 상징에 관한 해설을 참고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감정 표현과 조토의 천사를 연결한 비교는 필자의 해석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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