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꾼다는 것

기다리던 꽃이 피기까지

by다시 나


얼마 전 식물 하나를 집에 들였다.


SNS에서 옅은 하늘빛 꽃이 한가득 피어 있는 모습에 사로잡혔다. 사진 속에서는 가느다란 줄기 끝마다 뭉게구름처럼 하늘색 꽃이 피어있었다. 나는 곧바로 검색을 시작했고, 그 꽃의 이름이 ‘플럼바고’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집에서도 저런 뭉게구름 같은 하늘색 꽃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문제는 우리 집이 동향이라는 것이다. 아침에는 햇빛이 제법 들어오지만 해가 조금만 높아지면 빛은 금세 베란다 밖으로 물러난다. 꽃을 피우는 식물에게 필요한 만큼의 햇빛을 내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 식물등을 달았다. 햇빛이 사라진 뒤에도 몇 시간씩 불을 켜주었다. 물 주는 때를 꼼꼼히 살피고, 좋은 흙으로 분갈이도 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꽃을 피우겠지 싶었다.


그런데 꽃은 피지 않았다. 어렵게 올라온 꽃대는 제대로 피어보지 못하고 말라버렸다.


나는 분명 꽃을 피울 수 있는 충분조건을 충족시켜 주었다고 믿었는데, 식물은 오히려 시들어갔다. 꽃을 피워내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지는 꽃망울들을 한참 들여다보면서, 내 안의 질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더 해줄까’가 아니라, ‘이 식물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식물등을 걷었다. 대신 햇빛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를 찾았다. 아침이면 그곳에 화분을 내놓았고, 바람이 잘 통하는지 살폈다. 얼마 전 비가 많이 내리던 날에는 빗물을 받아두었다가 목마르지 않게 챙겨주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얼마 전부터 꽃이 하나둘 피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아침, 화분 가득 하늘빛 뭉게구름처럼 꽃이 올라와 있었다. 한두 송이 피기를 기다렸는데, 꽃은 그동안 미뤄둔 제 계절을 한꺼번에 꺼내놓듯 화려하게 펼쳐 보였다.



"이것 좀 봐, 엄청 예쁘지?" 지나가던 아들을 불러 호들갑을 떨었지만, 무심한 아들은 "예쁘네~" 한 마디를 남기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머쓱해졌지만 신기하고 기뻐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사진을 찍고, 하루 종일 오고 가며 눈을 맞추었다. 꽃이 뭐라고, 마치 기다리던 애인을 마주한 순간처럼 좋았다.


그렇게 꽃을 앞에 두고 커피를 마시고, 바카라을 읽고, 노트북을 켜두고 며칠을 흥얼거렸다. 볼 때마다 예쁘다고 입속으로 말을 건네다 문득 생각했다. ‘과연 무엇이 이 꽃을 피우게 했을까?’


식물을 들이면서부터 이미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분갈이를 위해 토분과 좋은 흙을 준비했고, 부족한 일조량을 채우기 위해 식물등도 달았다. 그러나 내가 쏟아부은 그 수많은 ‘정성’만으로는 결코 꽃이 피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나는 꽃 한 송이를 억지로 피워낼 수 없다. 잎 하나를 제 힘으로 펼치게 할 수도 없고, 흙 속에서 뿌리 하나를 뻗게 할 수도 없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식물은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물을 끌어올리고, 빛을 받아 제 몸을 만들어냈다. 내가 한 일은 그저 그 생명이 스스로 자라나도록 곁을 조금 돌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꾼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지금 물이 필요한지, 빛이 부족한지, 자리를 옮겨줘야 하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어야 하는지를 살피는 일.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다.


마음이 쓰이면 자꾸 무언가를 더해주고 싶어진다. 물을 한 번 더 주고 싶고, 영양제를 더 찔러 넣고 싶고, 햇빛이 부족하면 인위적인 빛이라도 만들어 매달고 싶어진다.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이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태는 일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좋은 마음으로 하는 일이 언제나 상대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지나친 물은 뿌리를 썩게 하고, 과한 영양은 오히려 식물에게 독이 되기고 한다. 내가 주고 싶은 사랑과 그에게 진짜 필요한 온도는 다를 수 있다. 어쩌면 정성이란, 많이 해주는 마음보다 ‘제대로 바라보는 마음’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사람을 대하는 일도, 관계를 이어가는 일도, 자신의 삶을 돌보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잘되기를 바랄수록 우리는 자꾸 무언가를 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방식을 상대에게 들이밀고, 부족한 것은 당장 채워 넣어야 하고, 멈춰 있으면 불안해하며 채찍질한다.


하지만 모든 성장이 ‘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는 일이 먼저다. 인위적인 식물등을 끄고, 조금 더 볕이 드는 자리로 옮겨 주는 일, 바람이 통하도록 창 하나를 열어두는 일,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까지 그저 견뎌보는 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닐 테니까. 겉으로는 어제와 똑같아 보여도 식물은 제 안에서 꽃 한 송이를 피워내기 위한 무구한 시간을 성실히 채워가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지 않을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서 스스로를 다그치지만, 우리 안에서도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가 조용히 자라고 있는 시간이 쌓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억지로 빚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이미 담긴 본래의 모습대로 자라날 수 있도록 알맞은 조건을 마련해 주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뒤에는,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기다리는 일. 어쩌면 그 기다림, 그 자체가 진짜 정성일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플럼바고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부드러운 햇빛이 하늘색 꽃잎 사이를 지나고, 가느다란 줄기가 다정한 바람에 기분 좋게 흔들리고 있다.


처음 이 식물을 들이며 내가 바라던 것보다, 훨씬 더 눈부신 풍경이 그곳에 피어 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