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걸어두고 싶었던 밤

가느다란 실 하나에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

by다시 나


추석 연휴를 앞둔 저녁, 벗들과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로등 불빛 아래, 벽 틈에 자리 잡은 거미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낮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어둠이 내려앉고 빛이 닿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실들은 한 올 한 올 촘촘하고 정교했다.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눈으로 가만히 좇아보았다.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한쪽은 벽에, 다른 한쪽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저 가느다란 실에 제 몸과 삶을 버티고 있었다.


한참을 실과 실 사이를 오가다가,

"네가 오늘은 배불렀으면 좋겠다." 혼잣말을 건넸다.

그러다 문득 거미의 배부름은 곧 다른 무언가의 죽음일 텐데, 그건 또 아닌가 싶어 멈칫했다. 참 쓸데없는 데까지 생각이 간다. 이래저래 복잡해진 마음은 접어두고, 그저 너의 안부가 무탈하기를 바라며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도 그 거미줄 생각이 맴돌았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세차게 내리면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이 툭 끊어질 테고, 누군가 무심코 손을 뻗으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면 거미는 어떻게 할까. 아마 다시 짓겠지.

끊어진 곳에서 또 한 올을 내고, 어디엔가 연결하고, 다시 제 삶을 걸어둘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단단한 것들에 기대어 사는 줄 알았는데 돌아보면 우리의 하루를 붙잡아주는 것은 의외로 가느다란 것들이다.


오늘 저녁 벗들과 나눈 다정한 밥 한 끼,

별것 아닌 안부 한마디,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

좋아하는 문장 하나,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풍경 같은 것들.

끊어지면 다시 잇고, 무너지면 또 짓는다. 그렇게 하루와 하루를 연결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빛이 닿아야 비로소 보인다. 그날 밤 가로등 불빛이 닿고서야 내 눈에 들어온 거미줄처럼, 평범한 하루에도 보이지 않을 뿐 나를 붙잡아주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또 욕심이 생겼다.


저 촘촘한 그물 속에 지금 흐르는 시간도 걸어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온라인 게임인에게 연휴란 빽빽한 출퇴근과 마감, 해야 할 일들에서 잠시 벗어나 제 숨을 쉴 수 있는 작은 틈이기도 하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끝이 보이고, 달력의 빨간 날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을 알기에 한 시간, 한 시간이 벌써 아깝다. 마치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별을 알고 있는 연애 같다고나 할까.


물론 며칠간의 명절을 보내며 ‘온전한 나’는 사라지고 가족과 친지 속에서 주어진 역할을 감내해야 하는 또 다른 온라인 게임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아직은 연휴의 전야제이지 않은가.

이 밤의 공기와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과

아직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은 이 시간을

저 거미줄에 꼭꼭 붙잡아두고 싶었다.

물론 시간은 거미줄 사이를 빠져나가듯 흘러갈 것이고, 연휴는 또 다른 피곤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걸음을 멈추고 거미의 안부를 묻던 그 짧은 찰나,

빛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낸 가느다란 실들을 한참 바라보던 그 밤은 내 안에 남았다.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건 시간이 아니라 이런 순간순간이지 않을까.

흘러가는 것을 멈출 수는 없어도, 잠시 멈춰 오래 바라볼 수는 있으니까.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