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을 쓰고, 비로소 나를 바라보다


― 제29회 진주탈춤한마당에서 만난 웃음과 자성반성


가을 햇살이 진주 남강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는 오후, 평거야외무대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제29회 진주탈춤한마당의 마지막 날입니다. 무대에서는 천하제일탈공작소의 「명품탈춤 천하제일탈」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장구와 북의 장단이 울리고, 탈을 쓴 춤꾼이 한바탕 몸을 풀어내자 객석에서도 웃음과 박수가 터집니다.

무대 위 사람들은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탈을 쓸수록 사람의 마음은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탈은 얼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얼굴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교사로서의 얼굴,

부모로서의 얼굴,

한 시민으로서의 얼굴,

누군가의 친구와 이웃으로서의 얼굴.

때로는 괜찮은 척하고, 때로는 강한 척하며, 때로는 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그런데 탈춤에서는 오히려 얼굴을 가린 뒤에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꺼내 놓습니다.

양반을 향해 웃고,

권위를 비틀고,

세상의 모순을 풍자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익살스럽게 풀어냅니다.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슬롯는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의 삶을 얼마나 헤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저는 오늘 그 질문을 저 자신에게 돌려봅니다.

후원회원이라는 이름 앞에서

저는 진주오광대 후원회원입니다.

‘후원회원’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놓고 보니 문득 부끄러운 마음도 생깁니다.

나는 진주오광대를 얼마나 자주 찾아보았는가.

우리 지역의 전통문화가 이어지도록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가.

좋은 문화라고 말하면서 정작 가까이에서 응원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거창한 일을 해야만 문화를 지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공연이 열리면 한 번 찾아가 보고,

좋은 공연에는 마음껏 박수를 보내고,

아이들에게 이런 문화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사진 한 장, 글 한 편이라도 남겨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

그리고 형편이 허락하는 만큼 작은 후원을 이어가는 것.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모이면 전통은 박물관 안에 머무는 유산이 아니라 오늘도 숨 쉬는 문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래된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은 것

탈춤을 두고 흔히 ‘옛날 문화’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오늘 무대 앞에서 보니 탈춤은 결코 낡은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춤꾼이 힘차게 뛰어오를 때 아이들의 눈이 커지고, 익살스러운 몸짓에 어른들이 웃으며, 장단이 빨라질수록 객석의 박수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수백 년 전 사람들도 아마 이렇게 웃었을 것입니다.

먹고사는 일이 힘겨웠던 사람들도 잠시 장터에 모여 춤을 보고 웃으며 서로의 삶을 위로했을 것입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함께 웃는 시간.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장단에 맞추어 박수를 치는 시간.

웃음 속에서 세상을 돌아보고 나 자신까지 되돌아보는 시간.

그래서 전통은 단순히 오래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삶을 품으며 오래 살아남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통은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어가는 것

오늘 공연에서는 여러 지역의 탈춤이 한 무대에 펼쳐집니다.

양주별산대놀이, 수영야류, 봉산탈춤, 하회별신굿탈놀이, 고성오광대….

지역도 다르고 탈의 생김새도 다르고 춤사위도 다르지만, 그 안에 흐르는 마음에는 닮은 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

답답한 세상을 웃음으로 넘어보고 싶은 마음.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싶은 마음.

그 마음들이 세대를 건너 오늘 진주에서 다시 춤을 춥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전통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물려준 것을 가만히 보관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잠시 맡아 다음 사람에게 건네주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작은 바카라임이 있습니다.

관심을 갖는 것.

찾아가는 것.

박수를 보내는 것.

기억하는 것.

그리고 다음 세대가 이 장단을 다시 들을 수 있도록 자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탈을 벗기 전에 나에게 묻다

공연을 바라보며 자성반성합니다.

나는 세상의 잘못을 이야기하기 전에

내 삶을 얼마나 돌아보았는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만큼

나는 먼저 좋은 이웃이 되어주었는가.

우리 지역의 문화와 공동체를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탈춤의 웃음은 가볍지만, 그 웃음이 던지는 질문은 가볍지 않습니다.

어쩌면 탈춤의 가장 큰 힘은 사람을 웃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웃고 난 뒤 자신의 삶을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강을 건너오는 바람이 조금씩 선선해집니다.

무대에서는 다시 북소리가 울립니다.

둥, 둥, 둥.

저도 그 장단에 맞춰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의 박수가 공연자에게 보내는 박수만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세월 이 문화를 지켜온 분들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언젠가 이 춤을 다시 이어갈 다음 세대에게 보내는 박수이기를 바랍니다.

탈을 쓰고 우리는 함께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 웃음 끝에서, 저는 조금 더 제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전통은 지나간 시간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할 때,

전통은 다시 살아나는 시간입니다.

진주오광대 후원회원으로서

오늘도 배우고, 자성반성하며,

우리 지역의 소중한 춤과 사람들을 오래도록 응원하고 싶습니다.


2026년 9월 20일, 제29회 진주탈춤한마당 평거야외무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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