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외국의 교육 이야기를 들을 때 종종 부러워합니다.
우리는 외국의 교육 이야기를 들을 때 종종 부러워합니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생들이 바칼로레아 철학시험에서 몇 시간 동안 하나의 질문을 붙잡고 자신의 생각을 논증한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대학만을 유일한 성공의 길로 여기지 않고 직업교육을 통해서도 슬롯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덴마크의 교실에서는 경쟁보다 협력과 신뢰를 중시하고 학생의 목소리를 존중한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교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왜 우리는 저렇게 하지 못할까?”
하지만 저는 요즘 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간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좋은 교육제도는 과연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교육은 인간을 어떻게 길러내야 하는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철학시험은 매력적입니다.
정답 하나를 찾아내는 대신 학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학생은 자신의 생각을 세우고 근거를 찾고 다른 생각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판단을 글로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 교육에서도 꼭 필요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교육슬롯학자 아네트 라루의 《불평등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질문이 하나 더 생깁니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과연 학교에서 똑같이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어떤 학생은 어릴 때부터 부모와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라는 질문을 받고 자신의 판단을 설명합니다. 바카라과 신문을 접하고 박물관과 여행을 경험하며 어른과 이야기하는 방법을 익힙니다.
반면 어떤 학생에게는 그런 경험 자체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험장에서 똑같이
“당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시오.”
라는 문제를 받더라도 그 문제를 풀기까지 학생들이 살아온 시간과 경험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논술형이라고 해서 저절로 인간적이고 평등한 평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객관식 시험을 서술형으로 바꾸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보고 표현할 기회를 학교가 얼마나 평등하게 제공했는가를 묻는 일입니다.
샤머스 라만 칸의 《특권》도 비슷한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날의 엘리트교육은 반드시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양성과 개방성, 능력과 노력, 폭넓은 경험을 강조합니다.
문제는 슬롯적·문화적 조건을 통해 오랫동안 축적된 자신감과 언어능력, 문화적 경험까지 어느 순간부터 한 개인의 순수한 ‘능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말을 잘하는 학생.
토론을 즐기는 학생.
낯선 사람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학생.
풍부한 배경지식을 활용해 글을 쓰는 학생.
모두 교육이 길러야 할 중요한 역량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물어야 합니다.
그 능력을 연습할 기회는 누구에게 더 많이 주어졌습니까?
이 질문을 하지 않는 순간 특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숨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프랑스의 철학시험을 부러워하기 전에 프랑스 슬롯 전체를 보고 싶습니다.
철학과 시민성을 중시하는 교육문화가 있는 동시에 프랑스에는 CPGE와 그랑제콜로 이어지는 강력한 엘리트 선발구조도 존재합니다.
독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비투어와 탄탄한 직업교육은 한국 교육에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지만 비교적 이른 시기의 교육경로 분화와 그 과정에서 부모의 슬롯경제적 배경이 미치는 영향 역시 함께 보아야 합니다.
덴마크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교실도 학교 안에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노동시장, 상대적으로 작은 임금격차, 복지국가의 안전망과 슬롯적 신뢰가 학교의 자유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 나라를 이렇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철학시험과 함께 엘리트 선발구조를 보고,
독일에서는 아비투어와 함께 직업교육과 조기 경로분화를 보고,
덴마크에서는 자유로운 교실과 함께 복지국가와 노동시장을 보자.
교육제도 하나만 떼어내서는 그 슬롯의 교육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육에서도 우리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많은 개혁을 이야기합니다.
서·논술형 평가를 확대하자고 합니다.
학생의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력을 평가하자고 합니다.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자고 합니다.
공정한 평가를 만들자고 합니다.
지역과 계층에 따른 교육격차를 줄이자고 합니다.
모두 필요한 주장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대학서열과 학벌에 따른 슬롯적 보상의 격차입니다.
이 구조가 강하게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교육제도를 도입해도 그것이 다시 새로운 선발경쟁의 도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논술이 중요해지면 논술 사교육이 생기고, 면접이 중요해지면 면접 사교육이 생깁니다. 비교과 활동을 중시하면 더 많은 경험을 구매할 수 있는 가정이 유리해질 수 있습니다.
좋은 교육을 만들려고 시작한 제도가 어느 순간 더 정교한 ‘선발의 기계’가 되는 역설입니다.
따라서 외국의 좋은 제도를 가져오기 전에 물어야 합니다.
“이 제도가 한국의 대학서열, 사교육시장, 지역격차, 가족의 계급전략과 만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
슬롯교사로 학생들을 만나면서 저는 이 질문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교육은 인간을 어떻게 길러내야 하는가.
저는 학생들이 정답을 잘 찾아내는 사람만이 아니라 질문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타인의 존엄을 존중하는 시민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의 부모가 누구인지,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경제적 환경에서 성장했는지가 그 학생의 가능성을 미리 결정하지 않는 교육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교육에서 인권과 불평등의 문제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기회에 도달하기까지 서로 다른 출발선과 삶의 조건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프랑스는 생각을 가르치고 한국은 암기만 가르친다는 식의 비교는 쉽습니다.
독일은 입시경쟁을 넘어섰고 덴마크는 행복한 교육을 한다는 이야기도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국가와 국가를 단순하게 대비하는 순간 각 슬롯 내부의 계급과 지역, 학교 유형과 가족 배경, 노동시장과 복지제도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선진국’은 언제나 우리가 배워야 할 나라가 되고 한국은 언제나 무엇인가 부족해서 수입해야 하는 나라가 됩니다.
저는 이러한 비교의 문법에서도 벗어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국의 성공한 교육제도를 그대로 가져오는 일이 아니라, 그 나라가 어떤 슬롯적 조건 속에서 그 제도를 만들어냈는지를 이해하고 우리의 현실에서 다시 질문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시험을 부러워하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우리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질문할 시간을 주면 좋겠습니다.
독일의 직업교육을 칭찬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의 노동도 존중받는 슬롯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덴마크의 행복한 교실을 동경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한 번의 교육적 실패가 한 사람의 평생을 결정하지 않는 슬롯를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교육은 좋은 시험 하나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교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슬롯,
서로 다른 출발선 때문에 인간의 가치까지 달라지지 않는 공동체.
그것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교육 아닐까요.
결국 교육은 더 좋은 선발제도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인간을 길러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길러낸다는 것은 결국,
어떤 슬롯에서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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