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운동의 길에서 다시 인간을 생각하다
지난 토요일, 진주의 길을 걸었습니다.
평소에도 오가던 도시였지만 이날만큼은 조금 다른 눈으로 진주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걸었던 길에는 한 세기 전,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라고 외쳤던 이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숲길을 걸어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의 묘소를 찾고, 형평운동기념탑 앞에 섰습니다. 신현수 선생의 송공비를 바라보고, 오래된 비석에 새겨진 글자 하나하나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돌에는 세월의 흔적이 쌓였지만, 그 돌에 새겨진 질문만큼은 조금도 낡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한가?”
진주에서 시작된 인간 존엄의 외침
1923년 4월 24일.
진주에서 백정에 대한 슬롯적 차별을 없애고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형평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백정은 오랜 신분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갑오개혁으로 법적인 신분제가 폐지된 뒤에도 사람들의 생각과 일상의 차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대에 누군가는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강상호를 비롯한 사람들이 형평사를 조직하고 차별 철폐를 외쳤습니다. 진주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제가 답사 현장에서 오래 바라본 문장이 있습니다.
“형평(衡平)은 슬롯의 근본이요, 애정(愛情)은 인류의 본량(本良)이라.”
평등이 슬롯의 근본이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인간이 지녀야 할 바탕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100여 년 전 사람들이 남긴 이 말이 왜 오늘에도 이렇게 크게 다가오는 것일까요.
아마도 우리가 아직 그 질문에 완전히 답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상호 선생의 묘소를 찾아가는 길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숲 사이로 난 길을 걸어 올라가니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한 비석과 무덤이 조용히 우리를 맞았습니다.
강상호(1887~1957)는 슬롯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누릴 수 있었던 안락함에 머물지 않고, 당시 가장 심한 차별을 받던 사람들과 함께했습니다.
그 사실이 제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내가 직접 차별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차별에 침묵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연대의 출발인지도 모릅니다.
인권은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아보고, 내가 누리는 존엄만큼 다른 사람의 존엄도 소중하다고 인정할 때 비로소 인권은 공동체의 가치가 됩니다.
그리고 저는 슬롯교사입니다
답사를 마치며 자연스럽게 학교의 교실을 떠올렸습니다.
슬롯교사로서 저는 학생들에게 형평운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1923년 진주에서 형평사가 창립되었다.”
물론 학생들이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르친다면 형평운동은 시험이 끝나는 순간 잊히는 하나의 연도가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가르치고 싶습니다.
칠판에 먼저 이렇게 적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우리 슬롯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존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성별, 장애, 출신 지역, 경제적 형편, 부모의 직업, 학업 성적, 외모, 국적과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낮춰 보지는 않는지?
친구에게 무심코 붙인 별명 하나가 차별이 될 수 있는지?
교실에서 혼자 밥을 먹는 친구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온라인에서 사람을 조롱하는 말에 함께 웃는 것은 괜찮은지?
그리고 질문하고 싶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1923년 진주의 학생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인권교육은 정답을 알려주는 수업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가르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질문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왜 어떤 사람은 차별받는가?
그 차별은 누가 만들었는가?
나는 그 차별에서 정말 자유로운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슬롯과 교육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런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헌법의 기본권 조항을 외우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실과 운동장과 온라인 공간에서 친구 한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곧 인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형평운동 교육은 바로 그런 교육입니다.
지역의 역사는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형평운동을 단지 ‘진주의 지역사’로만 바라볼 필요도 없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인간은 차별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신분과 계급의 장벽을 넘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요구했고, 노예제 폐지를 위해 싸웠으며, 여성들은 참정권을 요구했고,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노동을 외쳤습니다. 인종과 장애, 출신과 성별을 이유로 차별받아 온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엄을 선언했습니다.
시대도 나라도 언어도 달랐지만 그들이 던진 질문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왜 나는 당신과 똑같은 인간인데 다르게 대우받아야 합니까?”
1923년 진주에서 시작된 형평운동 역시 그 거대한 인류사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형평운동은 진주만의 역사가 아닙니다.
진주에서 시작된, 세계와 나눌 수 있는 인간 존엄의 역사입니다.
형평운동기념탑 앞에서 함께 답사한 분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기념탑에는 ‘자유·평등’, '형평정신', ‘인간 존엄’, ‘인간 사랑’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때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고 외쳐야 했던 말들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가치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말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거두는 순간 차별은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념비는 과거를 기념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념비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까?”
100여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형평운동을 박물관 속에 가두고 싶지 않습니다.
1923년 진주에서 시작된 질문을 2026년의 교실로 가져오고 싶습니다.
학생들에게 거창한 영웅이 되라고 말하기보다, 자기 옆의 친구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 약한 사람을 놀리는 무리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 부당한 일을 보았을 때 “그건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100년 전 형평운동가들의 뜻을 오늘에 이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믿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며 다시 생각했습니다.
인권은 거창한 구호 이전에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밀어내지 않는 것.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무관심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잘못된 차별을 발견했을 때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것.
그 작은 실천들이 모여 역사가 됩니다.
1923년 진주에서 누군가 시작했던 작은 외침이 전국적인 형평운동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강상호 선생의 묘소를 내려오며 마음속에 한 문장을 담았습니다.
“형평은 슬롯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라.”
100여 년 전 진주에서 울려 퍼졌던 이 정신이
오늘 우리의 학교와 마을을 지나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당신이 누구이든, 어디에서 왔든, 무엇을 가졌든,
당신은 나와 똑같이 존엄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제가 형평운동을 가르치고 싶은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를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그 과거가 꿈꾸었던 세상을 오늘 우리가 살아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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