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수경 시인 8주기, 진주문고에서 「혼자 가는 먼 집」을 읽으며
오늘, 진주문고에서 허수경 시인을 만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시인을 만나는 일입니다.
사람은 떠났지만 문장은 남고,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시는 누군가의 입술을 빌려 다시 살아납니다.
허수경 시인 8주기를 기억하는 오늘, 저는 「혼자 가는 먼 집」을 낭독합니다.
낭독을 앞두고 시를 종이에 한 자 한 자 옮겨 적었습니다.
눈으로 읽을 때와 손으로 옮겨 쓸 때의 시는 달랐습니다.
그리고 소리 내어 읽어보니 또 달랐습니다.
특히 한 단어 앞에서 자꾸 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당신’.
허수경의 시에서 ‘당신’은 한 사람인 듯하다가 어느 순간 사랑이 되고, 상처가 되고, 그리움이 됩니다. 잡으려 하면 멀어지고 잊으려 하면 다시 돌아오는 어떤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저마다 한 사람의 ‘당신’이 있지 않을까.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 미처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사람, 너무 늦게 소중함을 깨달은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지나가 버린 젊은 날일 수도 있고,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일 수도 있으며,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일 수도 있습니다.
허수경의 시가 오래 남는 까닭은 그 빈자리를 독자에게 내어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기에 우리는 그곳에 자신의 기억 하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진주에서 허수경을 읽습니다.
한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서 그의 시를 다시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추모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이 한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의 이름을 기념하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가 남긴 질문을 다시 읽고,
그의 언어를 다음 사람에게 건네고,
그의 문장이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시를 ‘잘’ 낭독하려 하지 않으려 합니다.
조금 떨려도 좋겠습니다.
한 문장을 읽다가 숨이 길어져도 좋겠습니다.
시와 시 사이의 침묵도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허수경이라는 한 사람이 남긴 언어를 잠시 빌려, 그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 각자의 마음속 ‘당신’을 만나게 하고 싶습니다.
좋은 시는 시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끝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다시 펼쳐 읽을 때,
누군가 한 구절 앞에서 오래 머물 때,
그리고 누군가 그 시를 다른 사람에게 건넬 때,
시는 다시 시작됩니다.
오늘 진주문고에서 제가 읽는 「혼자 가는 먼 집」도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허수경 시인을 기억하는 일이 슬픔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과 사랑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아직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사람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오늘 한 가지 질문을 품고 시 앞에 서려합니다.
내 삶에서 차마 버릴 수도, 지울 수도 없는
‘당신’은 누구인가.
허수경 시인이 떠난 지 여덟 해.
오늘 진주에서
한 사람의 시가 다시 사람들의 목소리를 얻습니다.
시인은 떠났지만
시는 아직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당신’은
아주 오래, 우리 안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