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 한 구절 앞에 섰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처음 사진을 찍었을 때 글자는 흐릿했다.
초점은 앞의 낮은 담장에 맞고, 정작 내가 읽고 싶었던 글귀는 저만치 뒤에서 번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흐릿함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정작 붙잡아야 할 것은 저만치 있는데, 우리는 눈앞의 걱정과 상처와 다툼에 초점을 맞추고 산다. 그래서 삶 전체가 흐릿해진다.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정말 고마웠던 사람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미루고, 사랑해야 할 순간에는 서운함을 먼저 꺼내 놓는다.
천상병 시인은 고통 없는 삶을 산 사람이 아니었다. 가난했고, 아팠고, 시대의 폭력도 겪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 세상을 “소풍”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낙천이 아니라, 고통을 지나온 사람이 끝내 붙잡은 맑은 시선이었을 것이다.
소풍이라는 말에는 가벼움이 있다.
우리는 잠시 왔다가 잠시 머물다 간다.
그러니 너무 움켜쥐지 말자는 뜻도 담겨 있다.
소풍이라는 말에는 고마움도 있다.
좋은 날만 소풍인 것은 아니다. 비가 오고 길을 잃고 도시락을 엎질러도, 돌아와 생각하면 그것마저 하루의 기억이 된다. 삶도 그렇다. 힘든 날이 있었기에 다정한 말 한마디가 더 깊이 남고, 외로운 시간이 있었기에 누군가의 손길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 글귀 앞에서 한동안 생각했다.
내가 이 세상 소풍을 끝내는 날, 정말 “아름다웠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려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마 거창한 답은 없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조금 덜 상처 주는 것.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늦추지 않는 것.
내가 옳다는 마음보다 상대의 아픔을 먼저 살피는 것.
가진 것이 적어도 나눌 수 있는 작은 마음 하나는 잃지 않는 것.
그리고 하루 끝에 “그래도 오늘 한 가지는 고마웠다”라고 말해 보는 것.
천상병 시인의 시가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죽음을 말하면서도 삶을 더 사랑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떠남을 말했지만, 그 말은 남아 있는 우리에게 오늘을 다시 보게 한다.
오늘 내가 만난 사람, 오늘 내가 걷는 길, 오늘 내게 주어진 일, 오늘 나를 힘들게 하는 마음까지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그러니 이 하루를 너무 함부로 미워하지 말아야겠다.
삶은 길고도 짧은 소풍이다.
흐릿했던 마음의 초점을 다시 맞추어 본다.
언젠가 돌아가는 날,
나도 조용히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고 자성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