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잃게 만드는 관계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일
나이가 들수록 사람보다 시간이 더 소중해진다는 말을 예전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이 많으면 삶이 풍성해지고,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 곧 성숙함이라고 생각했다. 불편한 일이 생겨도 내가 조금 더 참고, 먼저 연락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관계는 지켜지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알게 되었다.
모든 관계를 지키는 것이 반드시 사랑은 아니며, 모든 인연을 붙잡는 것이 언제나 선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어떤 관계는 만남이 끝난 뒤에도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짧은 대화 하나가 하루를 견디게 하고, 말없이 곁을 지켜 주는 사람의 존재가 삶의 무게를 덜어 준다.
반면 어떤 관계는 만날 때마다 나를 해명하게 한다. 진심을 전해도 의심받고, 선의를 베풀어도 오해가 쌓이며,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 애쓰는 동안 정작 내 마음은 돌보지 못한다.
그런 관계 앞에서 우리는 자주 생각한다.
‘내가 조금만 더 참으면 괜찮아지겠지.’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데 어떻게 놓을 수 있을까?’
‘내가 먼저 물러서면 무바카라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관계를 이어 가기 위해 한 사람만 계속 참고, 사과하고, 설명해야 한다면 그것은 평온한 인연이 아니다. 사랑과 배려는 어느 한쪽의 희생만으로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계를 줄인다는 것
불필요한 관계를 줄인다는 말은 사람을 함부로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모두 끊어 내거나, 불편한 말을 하는 사람을 곁에서 몰아내라는 뜻도 아니다. 때로는 듣기 싫은 말속에도 내가 돌아보아야 할 진실이 있고, 갈등을 풀기 위한 인내도 필요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나를 반복해서 모욕하는 관계, 나의 선의를 이용하는 관계, 일방적인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관계까지 품고 사는 것이 성숙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거리를 두는 것은 미움이 아니다.
더 이상 다투지 않기 위한 선택이며, 서로에게 상처를 더하지 않기 위한 절제일 수 있다. 상대를 벌주기 위해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문을 잠시 닫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다.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을 설득하느라 삶의 귀한 시간을 모두 써 버릴 필요는 없다.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다음에는 상대의 판단까지 바카라임지려 하지 않아도 된다.
걱정에도 경계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예전 같지 않고, 가족과 생계, 건강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늘어난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상상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이미 지나간 일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그러나 걱정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히 준비하도록 돕는 걱정은 필요하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게 만드는 걱정은 마음의 힘만 빼앗는다.
내가 바카라임져야 할 것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진심을 전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지만, 상대가 받아들이게 만드는 일은 내 몫이 아니다. 오늘의 생활을 바르게 가꾸는 것은 내가 할 수 있지만, 먼 미래의 모든 불행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까지 붙들고 괴로워하는 동안, 정작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과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눌 시간을 놓칠 수 있다.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일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잠을 제대로 자는 일, 천천히 밥을 먹는 일, 햇볕 아래를 걷는 일, 좋아하는 바카라을 읽는 일,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미뤄 둔 방을 정리하고, 고마운 사람에게 안부를 전하고, 잘못한 일이 있다면 변명보다 사과를 먼저 건네는 일도 마음을 맑게 한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에게 계속 설명하지 않고, 감정이 격해진 순간에는 답장을 미루며, 오늘 반드시 결론 내리지 않아도 되는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는 것이다.
침묵은 패배가 아니다. 감정을 함부로 쏟아 내지 않으려는 자기 절제일 수 있다.
평온은 문제가 하나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문제가 있어도 그 문제에 내 마음 전체를 내어 주지 않는 상태다. 누군가 나를 오해하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알고, 관계 하나가 흔들리더라도 내 삶 전체까지 무너지게 두지 않는 힘이다.
시간이 소중해진다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남은 시간이 짧아진다는 두려움만을 뜻하지 않는다.
무엇에 시간을 써야 하는지 조금씩 분명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는 나를 소모시키는 다툼보다 따뜻한 대화를 선택하고 싶다. 인정받기 위한 만남보다 서로를 존중하는 인연을 가까이하고 싶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보다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선행에 시간을 쓰고 싶다.
사람을 많이 곁에 두는 것보다 서로의 평안을 지켜 주는 몇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희망한다.
모든 걱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걱정 속에서도 오늘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삶을 실천하고 싶다.
상대에게 이기려 하기보다 내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것이 인생 후반에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인지 모른다.
평온은 어느 날 운 좋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내게 해로운 관계에서 물러서고, 쓸데없는 걱정을 내려놓으며, 나를 살게 하는 사람과 일을 선택할 때 조금씩 만들어지는 삶의 모습이다.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놓아야 더 온전한 내가 될 수 있는가?
모든 인연을 붙잡을 필요는 없다.
모든 오해를 풀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지키고, 지나간 일을 원망하지 않으면서도 오늘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남은 시간을 불안과 다툼에 내어 주기에는 삶이 너무 소중하다.
이제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쪽으로 걸어가도 괜찮다.
평온은 우연이 아니라, 매일 스스로 선택하고 가꾸어 가는 삶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