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지금 또 하나의 문명 전환기를 통과하고 있다. 증기기관이 인간의 근육을 대신했고, 컴퓨터가 인간의 계산을 대신했듯이, 인공지능(AI)은 개인을 넘어 인류의 지식과 판단의 일부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AI가 어떤 직업을 사라지게 할 것인지, 어떤 산업이 무너질 것인지를 걱정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게 된다면 인간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역사를 돌아보면 혁신적 기술의 발전은 늘 노동의 의미를 바꾸어 왔다. 고대 로마는 광대한 정복전쟁을 통해 수많은 노예를 확보했다. 값싼 노동력이 넘쳐나면서 자유민의 노동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로마는 거대한 경기장과 오락문화를 발전시켜 시민들의 불만을 관리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콜로세움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슬롯적 장치였다.
오늘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다만 콜로세움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에는 검투사 경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스마트폰과 SNS, 숏폼 영상과 무한 콘텐츠가 있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손안의 화면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몸은 편해졌지만 정신은 더욱 분주해졌다. 연결은 늘어났지만 대화는 줄어들었다. 정보는 넘치지만 통찰은 부족하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문제는 인간이다. AI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유는 생각보다 무거운 짐이다.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쉽지만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에도 방황하고, 온라인 게임을 떠난 뒤에도 방향을 잃는다. 일자리를 잃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공동체 중심의 슬롯를 살아왔다. 학교에서는 정답을 외웠고, 회사에서는 조직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슬롯는 끊임없이 무엇이 좋은 삶인지를 가르쳤다. 좋은 대학, 좋은 온라인 게임, 좋은 집, 좋은 차를 목표로 삼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놓쳐버렸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때 살아 있음을 느끼는가."
AI시대는 지식의 시대가 아니라 자기인식의 시대다. 지식은 이제 누구나 AI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대신해 줄 수 없다. AI는 정보를 줄 수는 있지만 삶의 의미를 결정해 주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바로 이 지점에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다시 읽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데미안』을 성장소설로 기억한다. 그러나 본질은 다르다. 이 작품은 슬롯가 만들어 놓은 자아와 자신의 본질적 자아 사이의 갈등을 다룬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끊임없이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간다. 그러나 데미안은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네가 믿는 가치가 정말 네 것인가. 지금 원하는 삶이 정말 네 삶인가.
결국 『데미안』은 자기 발견의 이야기다. 에고에 종속되지 않고, 에고와의 갈등을 내재화하여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잘할 수 있으며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걱정한다. AI 때문에 바뀌는 직업 환경 속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나 더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다.
인간은 원래 노동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존재하기 위해 노동했던 것이다. 그런데 산업슬롯는 그 순서를 뒤집어 놓았다. 사람들은 존재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존재하는 삶에 익숙해졌다. AI는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원래의 질문을 되돌려주고 있다.
앞으로의 슬롯는 직업 중심 슬롯가 아니라 정체성 중심 슬롯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더 강하게 연결될 것이다. 같은 학벌보다 같은 취향이 중요해질 것이다. 팬덤과 커뮤니티가 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이제 생계를 위한 연결보다 의미를 위한 연결을 원한다.
그러나 의미는 밖에서 찾을 수 없다. 의미는 자기 안에서 발견된다. 『데미안』의 유명한 문장처럼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슬롯가 만들어 놓은 정답의 세계, 타인의 기대가 만든 페르소나, 비교와 경쟁의 세계를 깨뜨려야 새로운 존재가 태어난다.
AI시대의 가장 큰 위기는 실업이 아니다. 자기 상실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자기 이해다. 인간은 평생 직업을 바꾸며 살아갈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갈 수는 없다. 결국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AI 활용 능력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초개인화 시대는 사람을 더 잘게 나누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각자가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는 시대다. 같은 회사, 같은 학벌, 같은 지역으로 묶이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앞으로는 같은 가치관과 같은 취향, 같은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해 모이지 않는다. 의미를 위해 모인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AI 사용법보다 먼저 『데미안』을 읽어야 한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미래의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존재 이유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노동의 가치 또한 달라질 것이며, 인간은 새로운 의미의 노동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존재를 실현하기 위한 노동이다.
결국 미래 슬롯의 승자는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장 깊이 자신을 이해한 사람이다. 데미안은 우리에게 성공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가장 어려운 질문 하나를 던진다.
"당신은 지금까지 남이 만든 삶을 살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펫누림슬롯적 협동조합 이사장
디케이닥터 대표이사
기술거래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벤처캐피탈리스트/창업 액셀러레이터
공) 저서. 더마켓 TheMarket / 스타트업 패러독스 / 크립토경제의 미래 / 좌충우돌 청년창업 / 블록체인 디파이혁명 / CEO의 인생서재 / 이노비즈 CEO독서클럽 선정도서 21選 (슬롯관 편) (세계관 편) / Web3.0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