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에 있는 것들의 힘

by유림

파리에 온 지 685일 되는 날이었다.


점심때 남은 반찬을 처리하겠다고 혼자 우걱우걱, 그것도 너무 빨리 많이 먹다가 체했다. 오후 내내 속이 불편했다. 소화제를 먹고 저녁 모임에 나갔는데, 오랜 연말 휴가에서 돌아온 지인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와인을 마시다 보니 거짓말처럼 체증이 싹 내려갔다. 무식한 얘기지만 알코올로 소독을 했다고나 할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커뮤니티가 잘 발달된 동네다. 주민들끼리 교류가 많다.


산바카라하다 마주치는 이웃들과 “봉쥬” 하고 인사를 나누고, 최근 다녀온 여행지나 좋았던 전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동차나 자전거를 타고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잠시 멈춰 서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동네 브라세리에서는 직원과 주민들이 비쥬를 하고 서서 스스럼없이 근황을 나눈다. 약국에서도, 까르푸에서도, 주말마다 열리는 마르쉐에서도 소소한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동네 경찰들도 주민들과 삼삼오오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유럽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과 함께 우리는 생일, 연말, 할로윈, 아이들 학교 방학 같은 핑계를 찾아 부지런히 논다. 레스토랑은 늦게까지 문을 열지 않고 아이들도 있으니 주로 누군가의 집에 모인다. 노는 일에 진심인 라틴계 친구들까지 가세하면 새벽 두 시까지는 거뜬히 직진이다.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세계 평화와 입신양명을 바라는 마음이야 다들 비슷하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아이들, 자연, 음식, 여행, 학교, 일상에서 생긴 소소한 사건들이다. 하지만 더 재미있다.


며칠 전에는 친구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친구 가족은 고향인 바르셀로나에 가 있었는데, 집의 보안 알람이 울렸다고 했다. 현관문도 열린 것 같으니 혹시 가서 봐줄 수 있느냐고 했다.


수면바지 차림 그대로 전화 끊자마자 집을 나섰다.


친구 집 앞에는 경찰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경찰에게 상황을 듣고 친구에게 전달했고, 경찰과 친구가 직접 통화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었다.


내가 한 일은 별것 없었다.

그런데 친구는 무척 고마워했고, 나는 뭐라도 한 것인양 스스로가 대견해졌다.

대단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달려가 줄 수 있는 사람 정도는 되는구나.


그 사실이 좋았다.


사람들의 삶이 모여 동네를 만들고, 그 안에서 오가며 느끼는 작은 즐거움들이 좋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연락할 사람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도 마음을 놓이게 한다.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영락없는 이방인이다. 딱봐도 그렇고, 깊게봐도 그렇다. 그런데도 동네 커뮤니티 덕분에 여기에서 사는 일이 꽤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진짜 프랑스를 경험하려면 파리가 아니라 작은 도시나 시골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무슨 뜻인지 조금 알 것 같다.



동네 사람들.

참 친근한 말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가 삶의 중심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도 하고 땅따먹기도 했다. 놀다가 배가 고프면 친구 집에 무작정 들어가 저녁을 얻어먹기도 했다. 학원도 걸어서 다녔고, 아프면 동네 병원에 갔다.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사는 ‘동네’는 콩알만큼 작아져 버렸다.


인구밀도로 치면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곳이라 문밖을 나서기만 하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알던 동네는 점점 사라졌다.

어쩌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는데 내가 변했는지도 모른다.


나도 각박해졌다. 동네 친구들은 바빠졌고, 아들의 친구들은 더 바빴다. 새로 이사 온 주민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니 상대방이 오히려 당황했다.


누구지?

왜 말을 걸지?

뭐 필요한 게 있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 번은 근처에 사는 아들 친구의 엄마들을 집으로 초대한 적도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그중 한 사람이 내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집도 작은데 용감하게 사람들을 불렀더라.”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웃었다.

그래, 용감한 편이지.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동네의 것들’은 이상하게 가치가 낮아졌다.


조금 더 용하다는 병원을 찾아 멀리 갔다. 조금 더 좋다는 학원에 아이를 보내느라 차를 태우거나 학원 버스를 이용했다. 가까이 있는 것보다 멀리 있는 것이 더 좋아 보였다.


화려해 보이는 남의 것은 대부분 내가 가진 것보다 좋아 보였다.

더 넓은 집.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리더십도 뛰어난 아이.

돈도 잘 벌면서 가정적이고 요리까지 잘하는 남편.

높은 지위.

든든한 집안.

명품과 비싼 차.


있으면 물론 좋을 것이다. 삶도 더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없어도 산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실제로 지탱하는 것은 조금 다른 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까이에 있는,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의 존재.

익숙한 거리를 걷는 일.

자주 가는 가게에서 얼굴을 알아봐 주는 일.

길에서 마주친 사람과 손을 흔드는 일.

누군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수면바지를 입은 채 달려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사는 일.


그런 작은 것들 말이다.


큰 것이 부족하다고 반드시 불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 기쁨이 하나도 없는 삶은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외로워지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잃고, 어느 순간 나 자신까지 보잘것없이 느껴진다.

그러니 현생에 지친 몸뚱이를 잘 다독여 어떻게든 집 밖으로 끌고 나간다.


동네 사람을 만나면 손을 흔들고,

커피 한 잔을 사면서 안부를 묻고,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오늘도 좋은 하루라며 한마디 건넨다.


물론 내 인사를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어떠랴.


내가 먼저 건넨 작은 친절 하나 때문에 동네가 아주 조금 더 친근해진다면 그것으로 됐다.


타인에게 작은 기쁨을 건네고,

타인과 소소한 것을 나누는 일.


생각보다 꽤 중요한 일이다.


결국 삶을 지탱하는 것은 멀리 있는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내가 오늘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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