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

by유림

29살이던 그 해, 1년간 소개팅을 50번 가량 했다. 1년이 52주이니, 거의 매주 일삼아 한 셈이다. 그 전에 만나던 사람과 이별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불과 몇 달 후 그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데도, 나도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괜히 지는 것 같았다. 치기 어린 마음에 시작한 소개팅이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뜻밖에 배우는 것이 많은 시기였다.


하루는 로켓을 설계하는 과학자를 만났다. 대전에 살고 있다고 했고, 기숙사에서 10분 거리에 온라인 게임이 있었고, 회사와 집을 반복하는 삶을 산다고 했다. 취미도 없고, 특별히 좋아하는 사물이나 분야도 딱히 없었다. 술도 안 마시고 운동도 안 했다. 공통점을 찾아야 그 시간이 재미있어지는데, 아무리 묻고 파고들어도 찾을 수 없어서 거의 졸음이 올 지경이었다.

꿈벅대던 내 눈을 본 그는,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해야 로켓이 궤도에 오르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개팅 자리에서 졸기 직전인 사람과, 그런 사람에게 정교함을 설명하는 사람. 후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조합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기억나는 대목이 하나 있다.


우주로 발사하는 로켓은 0.01도만 각도가 어긋나도 궤도에서 이탈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 미국 나사(NASA)의 로켓 발사 궤도 허용 오차도 0.05도 이하라고 한다. 정확히 계산된 시간과 고도에서 단, 추진체, 페어링 등을 분리해야만 로켓은 정상 궤도를 타고 목표한 곳으로 갈 수 있다.


1도의 백 분의 일. 그런 단위가 있다는 걸 살면서 그날 처음 들었고, 그 뒤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문득,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이탈하는 기질을 달고 사는 나는, 로켓과 관련이 없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켓이었다면 이미 몇 번이고 궤도를 이탈해 우주 미아가 되었을테니 말이다. 정확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할 일도 적고, 이탈하는 행위 자체가 흥미진진할 때도 많으며, 이탈한 뒤 새로운 경로에 안착하면 거기서 오는 즐거움도 있다.



이탈.

일에 있어서는 이 단어를 매우 싫어한다. 십여년 간 마케터로 일했는데, 소비자들이 우리 브랜드에서 이탈하는 흐름이 감지되는 순간 각종 회의로 하루가 가득 찬다. 원인을 분석하고 대바카라을 만드는 보고 자료를 만드느라 정신 없어지니 좋을리가 없다.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하는 마케팅 교수로 일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논지에서 이탈하면 여지없이 공저자나 리뷰어의 지적이 날아온다. 한 치의 딴소리 없이 아주 촘촘하게 논리를 꿰어서 주장과 근거 사이에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게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한다. 강의할 때도 주제에서 크게 이탈하면 안된다.


하지만 일상 속의 나는 늘 이탈하는 재미로 살아왔다. 대학교 1학년 때는 기타 동아리를 하다 나오고, 학과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도 홀연히 사라지고, 광고 동아리를 하다 그만두기도 했다. 패션 회사에서 일하다 화장품 업계로 옮기고, 급기야 회사원의 궤도마저 이탈해 사업을 차렸다. 거기서 더 크게 각도를 틀어, 한때는 제3세계처럼 멀게만 여겼던 학계로 와서 지금은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이단아, 변방인, 비정통파, 혹은 괴짜라 불려도 할 말은 없겠다.


개인의 영역을 벗어나 넓게 보면, 이탈은 종종 새로운 사조를 불러오기도 한다. 역사화나 종교화 같은 엄격한 주제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장면과 풍경을 순간의 인상으로 포착하고, 기존 화풍을 따르지 않은 채 붓 터치를 그대로 드러내는 기법을 쓴 인상주의는 미술의 흐름 자체를 바꿔놓았다. 이 사조를 처음 시작한 화가들은 초기엔 냉소적인 의미로 개성파, 파격주의자라 불렸지만, 시간이 지나며 창조적 반항아, 선구자로 승격되었다.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클로드 모네와 반 고흐가 지금은 전 세계가 아는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준비된 이탈, 자리잡은 이탈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안정된 구역(comfort zone)을 벗어나야, 익숙함을 떼어내야, 짓누르는 무게에서 멀어져야, 더 멀리 날아간다. 이탈하고 얼마간 지나면 또 익숙해진다. 그러면 다시 자유를 갈망하고, 또 이탈한다. 그 반복 속에서 낯선 곳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동시에, 고여 있지 않은 생생함을 느낀다. 그렇다. 이탈은 두려운 단어일 수 있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일이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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