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천국-상실은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영생

주세페 토르나토레




" 상실은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네 안의 영생이다. "





자전거에 탄 토토





토토는 영화를 사랑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영화가 아니라 아버지였는지도 모릅니다.


모성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건 이 세상이 사랑의 자리인지 분노의 자리인지, 정서의 온도입니다. 반면 부성은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개의 관점을 줍니다. 아버지가 없던 토토에게, 스크린은 세상을 내다보는 하나의 창이었죠. 그리고 그 창 앞에 알프레도가 있었습니다. 영사실에서 함께 보낸 그 무수한 시간은, 어쩌면 토토가 아버지라는 존재를 더듬어 찾아가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관계가 가장 정확하게 압축된 순간은 자전거 장면입니다. 알프레도가 토토를 태우고 페달을 밟습니다. 그런데 토토는 그의 뒤가 아니라 앞에 앉아 있습니다. 핸들은 여전히 알프레도의 손에 있지만, 세상을 마주하는 건 토토의 얼굴이지요. 세계를 향해 나아가되, 안전을 잃지 않는 자리. 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앞장서 나아가는 동안, 뒤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손이 있다는 것.







상실의 자리






향수에 굴복하지 마라



세월이 흘러, 알프레도의 부고를 듣고 돌아온 고향에서 토토는 파라디소가 철거되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크레인이 벽을 부수고, 그 벽과 함께 그의 젊은 날들이, 알프레도와 나눈 무수한 대화들이, 스크린 앞에서 웃고 울던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립니다.


토토에게 알프레도는 그저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의 대상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일부를 의탁했던 커다란 존재. 그 대상이 죽고, 그가 머물던 공간마저 무너지는 것을 보며 토토는 그와 자신의 유년시절을 상실합니다. 사람을 잃고, 그 사람이 서 있던 자리마저 잃는 것. 그 붕괴가 그토록 크게 다가오는 건, 알프레도라는 존재가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무너지는 벽의 크기는, 사실 그가 토토 안에서 차지했던 자리의 크기이기도 합니다.








영원히 잊히지 않는 하나의 관점





그러나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토토는 텅 빈 극장에 홀로 앉아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틉니다. 어린 시절 신부의 검열로 잘려나갔던 입맞춤 장면들. 버려졌어야 할 그 조각들을 알프레도는 몰래 모아 이어 붙여 놓았죠.


그 필름을 보며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알프레도는 상실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토토가 가장 사랑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되비추는, 영원히 잊히지 않는 하나의 관점으로 남았습니다. 너를 그 자체로 비추는 거울. 붕괴는 건물을 무너뜨렸지만, 그 관점만큼은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상실은 완전한 소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던 방식으로, 내 안에서 존재하는 영생이었습니다.







음악, 관계의 본질 - 엔니오 모리꼬네




이 영화의 음악은 서정적이고 부드럽습니다. 한 악기가 튀어나와 감정을 강요하지 않지요. 여러 악기가 서로 얽히며 하나의 선율을 이룹니다. 그 다성적인 구조는 알프레도와 토토, 두 사람 관계의 본질을 그대로 닮아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끌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이끌었던 관계.


음악은 또한 토토의 귀향에 서사의 무게를 실어줍니다. 회상이 그저 장면으로만 흘렀다면 가벼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율이 그 회상에 정서적 질감을 입혀, 두 사람의 관계를 눈이 아니라 귀로 느끼게 만듭니다.








감독 - 주세페 토르나토레





이 영화를 만든 주세페 토르나토레는 1956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바게리아에서 태어난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나폴리의 범죄 조직을 다룬 첫 장편 『일 카모리스타』로 데뷔해 신인감독상을 받았고, 뒤이어 내놓은 두 번째 장편이 바로 이 영화, 〈시네마 천국〉입니다. 처음 이탈리아에서 개봉했을 때는 흥행 성적이 신통치 않았지만, 시칠리아의 한 작은 극장 지배인이 이 영화에 마음을 빼앗겨 관객들에게 먼저 무료로 보여주고 마음에 든 사람에게만 나중에 값을 치르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되살아난 이 영화는 1990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안았습니다.


토르나토레는 이후로도 〈피아니스트의 전설〉, 〈말레나〉, 〈베스트 오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상실과 그리움을 그려내는 자신만의 언어를 이어갔습니다. 이 영화의 애잔한 선율을 지어낸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와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평생의 협업을 이어갔고, 훗날에는 그의 생애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상실을 그려낸 감독이, 훗날 자신의 오랜 음악적 동반자를 향한 헌사를 남겼다는 사실이, 이 영화가 말하는 것—상실이 소멸이 아니라 하나의 관점으로 남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합니다.



https://youtu.be/ztZnrReL8bo?si=PTpC5np-lW3NHh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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