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도피안사에서 잠시 내려놓은 인간의 욕망
가을이 깊어간다.
계절은 어느새 산자락을 물들이고, 나뭇잎들은 저마다의 빛깔로 마지막 생을 준비하고 있다.
어제는 모처럼 철원으로 향했다.
철원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종종 찾는 곳이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넓은 들녘과 산, 그리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따라 차를 몰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도 조금씩 느슨해진다.
이번에는 도피안사로 향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상대적으로 뜸하고, 산사의 고요함 속에서 가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
오랜만에 다시 찾았지만 도피안사는 십수 년 전의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은 산사였다. 그러나 그곳이 품은 시간과 기운은 결코 작지 않았다.
도피안사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가을빛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오래된 기와지붕이 단정하게 놓여 있고, 나무들은 초록을 조금씩 벗어내며 노랗고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산사의 건물들은 주변의 숲과 다투지 않았다.
그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도피안사는 통일신라 865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다.
그 안에는 같은 해에 조성된 국보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왕조가 바뀌고, 나라의 경계가 달라지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동안 부처는 그 자리를 지켜왔다.
사람의 일생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러나 산사에 들어서면 그 긴 세월이 이상하리만큼 가까이 느껴진다.
어제의 시간과 천 년 전의 시간이 같은 마당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대적광전 앞에 섰다.
문 너머로 비로자나불의 모습이 보였다.
철로 빚어진 부처.
차갑고 단단한 쇠로 만들어졌지만 그 표정만큼은 온화했다.
근엄하면서도 인자한 얼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아무것도 따져 묻지 않는 눈빛.
나는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앞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빌지는 않았다.
무엇을 얻고 싶다고 청하지도 않았다.
그저 바라보았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원했던가.
조금 더 나은 삶을 원했고, 조금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싶었으며, 때로는 남들보다 앞서가기를 바랐다.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했고, 갖지 못한 것 때문에 조급해했다.
무엇인가를 얻으면 잠시 기뻤지만, 이내 또 다른 부족함을 발견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런데 천 년의 부처 앞에 서니 그 모든 욕망이 문득 작아 보였다.
부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잘 살아왔다고 칭찬하지도 않았고, 잘못 살아왔다고 꾸짖지도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쩌면 위로란 반드시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일이 아니라, 아무것도 묻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도피안사.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천천히 되뇌어본다.
피안은 불교에서 번뇌와 집착을 벗어난 깨달음의 세계를 뜻한다.
우리가 욕망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쪽 언덕을 차안이라 한다면, 피안은 그 너머의 세계일 것이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평생 저 너머의 언덕을 찾아 헤매면서 정작 지금 서 있는 이곳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조금 더 가지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고, 조금 더 높은 곳에 오르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하나의 욕망을 채우면 또 다른 욕망이 고개를 든다.
마치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그렇게 우리는 늘 다음의 행복을 기다리며 오늘의 평온을 뒤로 미룬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 얻으려는 노력은 많았지만 내려놓으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쉼 없이 움직였으면서도, 정작 무엇을 위해 그토록 달려왔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었다.
삶을 무겁게 만드는 것은 부족한 것들만이 아니라,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산사 마당으로 다시 나왔다.
햇살은 부드러웠고 바람에는 서늘한 기운이 묻어 있었다.
나무들은 한 해 동안 품었던 잎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었다.
봄에는 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무성한 그늘을 만들더니 가을이 되자 미련 없이 제 몸을 비워낸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닐 텐데 자연은 제때를 알고 있었다.
붙잡아야 할 때와 놓아주어야 할 때를.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오래 붙잡으려 하며, 떠나야 할 것을 떠나보내지 못한다.
때로는 이미 지나간 시간까지 마음속에 붙들어놓고 스스로를 괴롭힌다.
자연은 순환하는데 인간의 욕망은 자꾸만 쌓여간다.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화려한 단풍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토록 무성했던 생명이 스스로를 비워내는 과정까지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앞에서 나는 잠시 부끄러워졌다.
수없이 가을을 맞이하면서도 여전히 내려놓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자신이 떠올랐다.
나무는 잎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의 삶에도 그런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인가를 더 채우기 전에 먼저 비워내야 하는 시간.
도피안사에 머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무슨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산문을 나선다고 해서 세속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돌아가면 여전히 해야 할 일이 있고, 감당해야 할 현실이 있으며,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바카라임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 마음은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
무엇 하나 해결된 것은 없는데도 말이다.
아마 잠시나마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 무엇을 증명할 필요도 없고,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서두를 필요도 없는 시간.
그저 가을바람을 느끼고, 천 년의 부처를 바라보고,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간.
그 안에서 나는 오랜만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직함도, 경력도, 나이도, 이루어야 할 목표도 잠시 내려놓은 채.
그저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한 사람.
어쩌면 내가 찾던 평온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산사를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대적광전 쪽을 돌아보았다.
부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천 년 전에도 그랬을 것이고, 오늘도 그러했으며, 내일도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섰을까.
누군가는 부귀를 빌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병든 가족의 쾌유를 기원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잃어버린 사랑을 그리워했을 것이며, 누군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았을 것이다.
그 모든 인간의 기쁨과 슬픔, 욕망과 후회를 부처는 말없이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인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모두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라도 더 움켜쥐려 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마저 인간의 삶이 아닐까.
욕망이 있기에 괴로워하고, 괴로움이 있기에 자신을 돌아보며, 그렇게 조금씩 삶을 배워가는 존재.
부처의 침묵이 내게 위로로 다가왔던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
어리석다고 나무라지 않고, 부족하다고 외면하지 않는 것.
그저 다시 돌아볼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려주는 것.
가을은 더 깊어갈 것이다.
도피안사의 나무들도 머지않아 마지막 잎을 내려놓을 것이다.
그러나 천 년의 부처는 여전히 그곳에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
나는 다시 세속의 길로 돌아왔다.
여전히 욕망을 품고, 때로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며, 내일의 삶을 걱정할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한 가지를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
삶의 평온은 모든 것을 가진 뒤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잠시라도 더 가지려는 마음을 멈출 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 년의 부처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참 많은 말을 듣고 돌아왔다.
가을이 깊어간다.
산사는 말이 없고, 내 마음에만 조용히 낙엽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