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까지 맡겨버리면, 나는 무엇을 하게 될까

― AI를 매일 사용하는 한 인간의 조금 불편한 고백

by담우

요즘 들어 부쩍 고민하는 것이 하나 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컴퓨터 화면 한쪽에는 AI 도구 두 개가 열려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침에 출근해 컴퓨터를 켜면
가장 먼저 AI부터 연다.

메일보다 먼저일 때도 있고,
포털보다 먼저일 때도 있다.

처음에는 편리해서 사용했다.

지금은 아니다.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어쩌면 이미
생각하는 방식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검색하는 것도 일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언가를 알아보려면 포털 검색창부터 열었다.

그런데 검색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무엇을 검색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했다.

검색어 하나를 잘못 넣으면
엉뚱한 자료가 쏟아졌다.

다시 검색어를 바꾸고,

관련 문서를 찾아 들어가고,

몇 페이지씩 읽고,

필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거나 복사해 두었다.

서로 다른 자료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다르면
어느 쪽이 맞는지도 판단해야 했다.

그렇게 자료를 모아
다시 내 방식대로 분류하고,

필요 없는 것을 버리고,

순서를 바꾸고,

문장을 쓰고,

고치고 또 고쳤다.

참 비효율적인 과정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비효율 속에서 나는 계속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는 질문 하나면 된다

지금은 다르다.

몇 줄의 프롬프트를 입력한다.

엔터를 누른다.

잠시 기다린다.

그러면 자료가 정리된다.

목차가 만들어지고,

비교가 이루어지고,

논리가 세워지고,

표가 만들어지고,

때로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까지 제시된다.

예전 같으면 전문가가 며칠, 때로는 일주일 이상 붙들고 있어야 했을 법한 결과물이 몇 분 만에 화면에 나타난다.

놀랍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너무 좋다.

한번 이 속도를 경험하고 나면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업무 효율 때문만은 아니다.

결과물의 수준도 놀랍기 때문이다.

그러니 AI를 쓰지 말자는 말은
이미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편리함이 아니라 ‘과정의 실종’이 두렵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즘 무엇을 직접 생각하고 있는가.

자료를 찾는 것도 AI가 한다.

비교도 한다.

요약도 한다.

목차도 만든다.

문장도 쓴다.

이미지도 만든다.

아이디어까지 제안한다.

처음에는 내가 하기 싫었던 일을 대신시켰다.

그다음에는 내가 하기 어려운 일을 맡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까지 맡기기 시작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조금 두려워졌다.




인간은 오랫동안 ‘생각하는 존재’라고 믿어왔다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온 존재다.

돌도끼를 만들었고,

수레를 만들었고,

기계를 만들었고,

자동차와 컴퓨터를 만들었다.

도구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AI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팔과 다리의 힘만이 아니라
생각의 일부를 도구에게 맡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찾고,

분석하고,

추론하고,

쓰고,

그리고 창작한다.

인간이 오랫동안
자신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곳까지 도구가 들어왔다.

그렇다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은 여전히 생각하려 할까
.




고독한-디지털-신경망-속-작업자.png인간이 모든 생각을 기계에 맡기는 순간,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 날 인간의 머리가 작아진다면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한다.

수십 년 뒤 인간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모든 질문에 AI가 답하고,

모든 글을 AI가 쓰고,

모든 판단을 AI가 돕고,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

누구를 만날지까지 AI가 결정해 주는 세상.

그런 삶을 몇 세대에 걸쳐 살아간다면
인간에게 지금과 같은 사고 능력이 여전히 필요할까.

나는 공상과학영화에 등장하는 생명체를 떠올려본다.

커다랗거나 기묘한 머리,

가늘어진 몸,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필요가 없어져버린 존재.

물론 인간의 뇌가 실제로 그런 모습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형태의 변화가 아니다.

생각하는 습관의 퇴화다.




글쓰기에서 더 불편해지는 이유

나는 오래전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잘 쓰든 못 쓰든
무엇인가 느끼면 적었다.

여행을 다녀오면 적었고,

사람에게 상처받으면 적었고,

세상이 이상하게 느껴져도 적었다.

요즘 나는
12년 전에 쓴 글들을 다시 읽고 있다.

문장은 거칠었다.

표현은 서툴렀고,

지금이라면 쓰지 않을 단어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글 안에는 분명히 내가 있었다.

2014년의 내가 있었다.

그때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아도
문장을 읽으면 그 사람의 체온이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내가 쓰는 글을
AI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맡긴다면,

2038년 어느 날
12년 전의 글을 다시 꺼내 읽었을 때,

그 안에는 누가 있을까.

나일까.

AI일까.

아니면 둘 사이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일까.

그 생각을 하면 조금 서늘해진다.




AI가 글을 잘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너무 잘 쓰기 때문에 문제다.

문장은 매끄럽고,

구조는 완벽하고,

적당한 비유가 있으며,

마지막에는 여운까지 남긴다.

그런데 사람의 글은 원래
그렇게 완벽하지 않았다.

말이 조금 꼬이기도 하고,

쓸데없는 문장이 들어가기도 하고,

감정이 앞서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결론조차 찾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불완전함 속에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문장이 완벽해지는 시대에

서툰 문장이 오히려 인간의 흔적이 되는 역설.

나는 요즘 그것을 생각한다.




그렇다고 AI를 끌 수는 없다

내일부터 AI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생각은 없다.

아마 내일 아침에도
컴퓨터를 켜면 AI부터 열 것이다.

이미 우리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굳이 돌아갈 필요도 없다.

인류는 새로운 도구를 만날 때마다
그 도구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왔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금지가 아니라
거리 조절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요즘
‘생각의 속도 조절’이라고 부르고 싶다.

모든 질문을 바로 AI에게 던지지 않는 것.

먼저 내가 생각해 보는 것.

먼저 몇 줄이라도 적어보는 것.

무엇이 궁금한지조차 모른 채
답부터 요구하지 않는 것.

특히 글을 쓸 때는
첫 번째 문장만큼은 내가 쓰는 것.

내 경험,

내 기억,

내 불편함,

내 질문만큼은
먼저 내 언어로 적어보는 것.

그리고 그다음에 AI를 부르는 것이다.




AI에게 답을 묻기 전에 나에게 먼저 묻는다

어쩌면 앞으로 필요한 능력은

AI를 얼마나 잘 사용하는가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언제 AI를 사용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능력.

그것 역시 중요한 능력이 될 것이다.

계산기가 있다고 해서
숫자의 의미까지 계산기에게 맡길 수는 없다.

내비게이션이 있다고 해서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까지 기계가 결정하게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AI가 아무리 좋은 문장을 만들어도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는 인간에게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마저 넘겨주는 순간
우리는 글쓰기를 편리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목소리를
조금씩 잃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작은 원칙 하나를 세워보려 한다

AI를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보다 먼저 부르지는 않는다.

먼저 읽고,

먼저 고민하고,

먼저 몇 줄을 써본다.

그다음 AI에게 묻는다.

내 생각에 빠진 것은 없는지,

다른 관점은 없는지,

논리가 잘못된 곳은 없는지,

더 정확한 자료가 있는지.

AI에게 생각을 대신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더 멀리 보내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그 정도의 거리는
지켜보고 싶다.




이 글도 AI와 함께 썼다

그리고 마지막에
조금 불편한 고백 하나를 남긴다.

이 글 역시 AI와 함께 썼다.

어쩌면 그래서
이 글의 질문이 더 아이러니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작은 사람이었다.

아침마다 AI부터 여는 내 모습이 어느 날 이상하게 느껴졌고,

편리해질수록 내가 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고,

오래된 내 글에서 서툴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나’를 발견했다.

그 질문을 먼저 적은 것은 나였다.

AI는 그것을 정리하고
확장하고
문장을 다듬는 일을 도왔다.

나는 앞으로도 아마
AI와 함께 글을 쓸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남겨두고 싶다.

첫 번째 생각만큼은 내가 하는 것.

왜 이 글을 쓰고 싶은지,

무엇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지,

무엇을 세상에 묻고 싶은지.

그것만큼은
기계에게 먼저 묻지 않는 것.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게 쓰고
더 많은 것을 기억하며
더 그럴듯하게 말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할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스스로 질문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화면 한쪽에는 AI가 열려 있다.

그러나 바로 질문하지 않는다.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고
나 자신에게 먼저 묻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어쩌면 AI 시대에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인간다움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 질문 하나를 자기 자신에게 먼저 던질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