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있는 한, 울 할머니 산소는 내 손으로

예초기를 두고, 굳이 무딘 낫 한 자루를 쥔 이유

by담우

낫 한 자루에 담긴, 아주 사적이고 거룩한 벌초


땡볕 아래 소환된 기억의 풀


화장(Cremation)과 수목장이 대세가 되어가는 이 효율의 시대에,

'매장(Burial)'이라는 구시대의 유산을 지키는 일은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다.

특히 연천 민통선 안,

인간의 발길보다 바람의 발길이 더 잦은 그곳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셨다는 것은,

내게 일 년에 한 번 지독한 여름 땡볕과의 사투를 약속하는 일이다.


50대인 나조차도 '매장'이 윗세대의 문화임을 알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아니 내 손에 낫 한 자루 쥘 힘이 있는 한,

나는 직접 할머니 할아버지의 산소 풀을 깎아야 한다고 믿는다.

예초기의 기계음 대신,

오로지 낫 하나에 의지해 한 땀 한 땀 풀을 베어내는 일.

그것은 편리함을 거부하고 정직한 육체의 노동으로 고인들에게 다가가는,

나만의 아주 사적이고 거룩한 의식이다.



하심(下心): 낫으로 벼리는 마음의 궤적


무더운 여름날의 낫 벌초는 10분 낫질하고 5분 쉬고를 반복해야 하는, 인내의 연속이다.

하지만 나는 그 지루하고 고단한 시간 동안,

오히려 내 마음의 풀을 베어낸다.

'하심', 즉 나를 낮추고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다.

지난 일들을 되새겨보며 나 자신의 모남을 깎아내고,

고인들에게 내 소소한 소원을 빌어보기도 한다.

"할아버지, 제가 요즘 이런 게 힘들어요..."

"할머니, 제가 벌써 내년에 60이어요. 히히..."

낫질 소리에 맞춰 혼자 중얼중얼 고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땡볕의 뜨거움은 어느새 고인들의 따뜻한 쓰다듬음으로 변해 있다.

그것은 기계가 해줄 수 없는,

오직 내 육체의 수고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고귀한 교감이다.



몸의 피로, 마음의 든든함: 한 일을 해낸 듯한 뿌듯함


4시간의 사투 끝에 모든 풀을 깎고, 땀에 전 몸을 이끌고 간단히 제를 올린다.

절을 올릴 때 느껴지는 그 가벼운 마음이란!

몸은 더위를 먹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마음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일을 해낸 듯 뿌듯하고 든든하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성을 다했다는 안도감이자,

나의 뿌리를 기억하고 최소한의 도리를 실천했다는 자부심이다.

비록 세상은 효율과便利를 쫓아가지만,

내 손에 들린 이 투박한 낫 한 자루가,

그리고 내 몸의 고단함이,

아직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정직한 가치임을 믿고 싶다.



에필로그


연천 민통선의 거친 풀들은 내 손의 고단함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 손의 낫이 베어낸 것은 단순히 풀이 아니라, 내 마음의 '관성'과 '이기'였음을.

몸의 피로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이 든든한 마음의 뿌리는 내 삶을 지탱하는 거대한 지지(Support)의 궤도가 되어 영원히 남을 것임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