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사막에 ‘의미의 강’을 흐르게 하는 퍼실리테이터의 삶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의 어원이 '쉽게 만든다(facilis)'는 뜻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삶은 원래 힘들고, 고통스럽고, 홀로 견뎌내야 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각자도생의 정글에서 '쉽게 만든다'는 말은 어쩌면 나태하거나 나약한 소리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퍼실리테이션은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 자아와 세계 사이에 놓인 '불필요한 마찰과 저항'을 제거하는 행위다.
서로를 향해 세운 날 선 방어기제와 편견의 벽을 허물어, 소통과 협력이 물 흐르듯 일어나게 돕는 것.
이것이야말로 생존 경쟁에 매몰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수월함의 미학'이다.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대화를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의미의 강"이라고 정의했다.
각자도생의 삶은 이 강물이 말라붙은 상태다.
각자의 섬에 갇혀 자기주장이라는 둑을 높이 쌓을수록, 우리 사이의 강물은 마르고 소통은 단절된다.
퍼실리테이터는 이 마른 강바닥에 다시 물이 흐르게 하는 사람이다.
옳고 그름을 다투는 논쟁(Debate)의 바위를 치우고, '너와 내가 같아지는' 대화(Dialogue)의 길을 내는 존재다.
내 안의 의미가 당신에게 닿고, 당신의 맥락이 나에게 스며들 때, 우리는 비로소 '혼자 살아남는 생존자'에서 '함께 존재를 확장하는 동반자'로 거듭난다.
이제 퍼실리테이터는 특정한 직업군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사막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
나 자신에게 _ 나의 완악한 고정관념이 내 삶의 흐름을 막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사유를 조금 더 '수월하게' 흘려보낼 수는 없는가?
타인에게 _ 나는 상대의 말을 자르며 둑을 쌓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의 이야기가 내게 닿도록 물길을 터주는 사람인가?
각자도생의 시대에 우리가 견지해야 할 새로운 삶의 관점은 '강한 포식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수월하게 만드는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당신의 삶을 조금 더 쉽게 만들고, 당신이 나의 고립을 조금 더 수월하게 풀어낼 때,
각자도생의 비극은 멈추고 공존의 기적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