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의 사유를 넘어, 표현으로 완성되는 존재의 실재
도널드 웨스트레이크는 일찍이 간파했다.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생각은 아무 의미가 없다. 생각이 곧 언어이다."라고.
이 서늘한 통찰은 우리가 '안다'라고 믿는 것들의 허상을 찌른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수만 가지 사유가 언어라는 그물에 걸려 형체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존재한다기보다 그저 뇌세포 사이를 부유하는 유령과 같다.
생각은 언어라는 설계도를 만날 때 비로소 건축물이 된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꽃처럼, 우리의 사유도 명확한 단어와 문장으로 조각될 때 비로소 '의미'라는 생명력을 얻는다. 그러므로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라, 형체 없는 안개에 뼈대를 세워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게 하는 창조의 과정이다.
오랫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어 왔다.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마음이 아니다."라고.
이 문장은 감정의 '실존'에 관한 나의 가장 정직한 선언이다. 누군가를 향한 지극한 연모도, 세상을 향한 뜨거운 분노도, 가슴 깊이 가라앉은 슬픔도 표현이라는 육신을 입지 못하면 타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아니, 심지어 나 자신에게조차 그것은 온전한 내 것이라 말하기 어렵다. 마음이 표현이라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비로소 그 마음은 나와 너 사이의 공간에 실재하는 '사건'이 된다. 표현은 마음을 완성하는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물론 언어만 있다고 해서 모두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때로 마음 없는 언어의 폭력을 목격한다.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했으나 그 안에 진실한 심장이 뛰지 않는 말들, 타인을 기만하기 위해 설계된 정교한 문장들은 언어라는 탈을 쓴 허상일 뿐이다.
표현되지 않은 마음은 아직 존재가 아니지만, 마음 없는 표현은 영혼 없는 껍데기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표현'이란, 내면에서 충분히 발효된 진심이 가장 정직한 단어를 찾아 결합하는 숭고한 행위다. 30년 전의 동두천 비극을 기록하고, 12년 전의 고독을 다시 꺼내어 다듬는 나의 작업은 바로 이 '마음과 언어의 일치'를 향한 끊임없는 수련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대상을 통제하고 삶을 기획할 수 있다. 슬픔에 이름을 붙여야 슬픔을 떠나보낼 수 있고, 꿈을 문장으로 적어야 비로소 그 꿈을 향해 발을 내디딜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전철 안의 무표정한 군중 속에서, 혹은 새벽달이 지는 창가에서 나만의 언어를 길어 올린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의 관성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내 안의 요동치는 마음들을 부지런히 언어로 벼려내는 일뿐임을 안다.
"여보게, 자네가 오늘 적어 내린 그 투박한 문장이 바로 자네의 실존이라네."
표현하는 순간, 나의 생각은 무덤을 박차고 나와 역사가 된다. 말하지 않아 사라지는 진심보다, 서툴러도 세상을 향해 던져진 정직한 고백이 훨씬 더 아름답고 위대하다. 나의 문장이 곧 나의 존재이기에, 나는 오늘도 멈추지 않고 적는다.
"여보게 친구,
자네의 가슴속에만 가두어 둔
그 눈부신 나비 한 마리를 이제 놓아주게나.
말하지 않으면 그 나비는 영원히 고치 속에 갇힌 환상일 뿐이지만,
자네가 정직한 언어로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그 나비는 비로소 내일의 하늘을 날아오를 것이네.
표현하게나.
자네의 문장이 곧 자네의 존재이니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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