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는 우박처럼 파괴적인 반전을 꿈꾸지 않는다

궤도의 은유, 관성을 깨는 법

by담우



12년 전 어느 봄날 이른 아침, 난데없이 우박이 쏟아진 모습을 녹기 전에 카메라에 담다.





예고 없이 쏟아진 은빛 비명

며칠 전, 하늘은 예고 없이 은빛 비명을 질렀다.

화창한 봄날의 기대를 비웃듯 쏟아진 우박은 지상의 평온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그것은 하늘이 부리는 변덕이라기보다, 삶이 숨겨두었던 날 선 '반전'의 고백이었다.

내 삶 또한 저 우박과 다르지 않았다.


계절을 거스르는 차가운 결정체들처럼,

예기치 못한 순간마다 삶은 궤도를 이탈하며 나를 흔들었다.

때론 파괴적이고 때론 눈부신 그 전복의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라는 무늬를 만들었음을,

나는 흩어진 우박 알갱이들을 보며 예감한다.



공전(公轉)의 궤도와 자전(自轉)의 고독

또 한 번의 '터닝(Turning)'을 갈구하며 이른 아침의 전철 앞에 선다.

전철은 무심한 기계적 리듬으로 나를 집어삼킨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끝에 닿기 위해 끝의 언저리를 맴도는 이방인이 되었다.


우주의 천체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슬롯가 설계한 거대한 '공전의 주기'에 몸을 맡긴 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일상을 통과한다.

하지만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나는 결코 멈출 수 없는 나만의 '자전'을 이어간다.

궤도 위를 구르면서도 스스로 회전하며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고독.

이 공전과 자전의 마찰음이 이른 아침 전철역의 소음과 섞여든다.

과연 이 무한한 회전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미친 존재감, 그 완악한 투쟁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궤도를 도는가.

타인이 세운 판단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자존을 낮추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 저 우박처럼 서슬 퍼런 '미친 존재감'을 증명하려 애쓰는 것인가.


우박은 짧게 머물다 사라지지만,

지상에 닿는 순간만큼은 세상을 자신의 소리로 가득 채운다.

나 역시 그 찰나의 진실을 위해, 무색무취한 일상에 균열을 내고 싶은 욕망을 품는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지만,

나를 가두고 있는 완악한 껍데기를 깨부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군중 속에서 건져 올린 '나'라는 이름

전철 안은 이미 생존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들로 가득하다.

각자의 궤도를 도는 수만 개의 우주가 빽빽하게 밀착된 이 기묘한 공간.

나는 그 거대한 인파 속에 '던져진 나'를 가만히 응시한다.


타인의 어깨에 부딪히고 익명의 숨결에 섞이면서도, 나는 역설적으로 더욱 선명한 '나'를 갈구한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이 시스템 속에서 부속품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전철 창에 비친 낯선 사내의 눈빛을 확인한다.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해 달리는 이 무쇠 상자 안에서,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어쩌면 목적지가 아니라,

이 소란스러운 정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중심축일지도 모른다.



에필로그


12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전철 안, 같은 손잡이 앞에 서 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의 눈빛은 12년 전보다 훨씬 깊고 예리해졌으며,

나의 인식은 쳇바퀴 일상을 넘어서는 철학적 높이에 도달해 있음을.


행운은 밖에서 우연히 들이닥치는 사건이 아니라, "자리를 지킨 시간 끝에 스스로 피워내는 것"이라 했다. 나는 12년 동안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왔고,

그 지루한 공전의 질서 안에서도 끝내 '새로운 눈'을 발견해 냈다.


"우박처럼 날지 않아도 괜찮다. 꽃처럼 묵묵히 피어나는 삶이라면."


오늘 아침, 내가 잡은 그 차가운 지하철 손잡이는 더는 나를 구속하는 수갑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우주의 질서 속에서 자기만의 봄을 준비하는 '나비'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숭고한 '지지의 궤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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