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의 결혼식

by최다함


어머니께서 아침에 기차를 타고 수원에 올라오셨다. O의 결혼식이 있었다.


아버지의 꿈은 목사님이었다. 3남 4녀를 둔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서 꿈을 이루지 못하셨다. 상고를 졸업하신 아버지는 대신 농협에 들어가려 하셨는데, 오일쇼크가 터져 금융권 신규채용도 막혔고. 당시 교사 월급이 박봉이던 때라 남자에게 교사 직업은 인기가 없었는데. 2년제였고. 재학 중 군사훈련을 받고, 졸업과 동시에 형식적으로 예비역 하사로 임관되면서, 7년을 교사로 의무 복무한다는 조건으로, 실질적으로는 군 면제가 되었다고, 제미나이에 따르면.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셨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 교사들은 연차가 되고 여유가 생기면 승진과 발전을 위해 방학이나 야간에 대학원을 다녔다. 아버지는 야간 신학대학원을 다니시고 목사님이 되셨다. 개척교회를 설립하셔서 무보수로 봉사하셨다. 아버지의 개척교회는 그 사이즈가 아직도 아주 작은 개척교회 사이즈고, 고모부가 하고 계신다. 아버지는 교장 선생님으로도 개척교회 담임목사님으로도 정년퇴직을 하시고 고향에 내려가셔서 왕대추 농사를 하신다.


아버지께서 교회를 하실 때, 작은 교회지만 한 사람을 돕기로 했다. 교회 앞 학교에서 추천받아 도왔던 아이가 O였다. 그때 O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나. 돈만 준 건 아니고, 사모님이던 어머니가,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공부시키고. 어머니가 돌본 것은 O만은 아니었다. O의 아빠도 만나고, 엄마도 만나고.


스무 살이 되었고 결혼을 한다고. 사연을 아는 난 그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많은 아빠와 한국에 오래 살아도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엄마와 의사소통도 되지 않고. 엄마는 이혼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그래도 딸 결혼식이라고 아빠 엄마 두 분 다 결혼식에 참석 하셨다고. 그 아빠와 엄마에게도 우리 어머니가 고마운 인연이다. 결혼식에 어머니를 부른 것도 그 아빠고, 그 엄마가 사모님 이리 오셔서 딸과 사진 찍으라고. 어머니가 사진을 찍으러 신부대기실로 들어갔고, O는 결혼을 앞두고 울음을 터트렸고. 사진사가 어머니를 내보냈다고.


아침에 수원역에 나가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어머니를 예식장에 모셔다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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