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어머니 장례식을 다녀오며

by최다함

어젯밤.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B 선생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데 장례식에 갈 수 있니?"

가기도 그렇고 안 가기도 그렇다. B 선생님은 나도 인연이 없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아버지 인연이다.

"우리가 논산에 있어 가기 어려우니 아버지 이름으로 부조금을."


예전에는 B 선생님이 아닌 B 기사님이라 불렀다. 아버지께서 선생님이셨을 때, 그때는 학교 아저씨라고도 부르던 시설관리 주무관이었다. 아버지는 젊었고, B 선생님은 더 젊었고, 난 어렸다.


아버지는 목사님이 되고 싶으셨는데,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셨다. 하나님 사랑으로 아이들을 사랑하셨다. 학교에서 기독학생반과 신우회를 만드셨다. B 선생님과 선교활동을 같이 하셨다. 방학 때 아버지 반 전체를 우리 집으로 초대해 1박 2일 캠프를 했는데, 그때 B 선생님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레크리에이션을 해 주셨다. 아버지는 40대였고, B 선생님은 30대였고, 난 10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퇴근하고, 검은 양복으로 갈아입고, 장례식장에 갔다. 병원은 골목으로 들어가 가파른 언덕을 올라 있었다. 비가 오고 밤이라 차를 가지고 갔는데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느낌이 아찔했다.


B 선생님도 나이가 드셨다. 조의금을 내고, 기독교 식 장례라 기도를 했다.

"K 집사님도 오셨는데."


K 집사님도 아버지 인연이다. 아버지 팬클럽 회장이 있다면 K 집사님이다. K 집사님과 B 선생님의 인연의 시작은 모르지만. 그 인연이 오래되었다는 것과. 우리 집과 오래 이어져 있다는 것과.


사실 K 집사님의 존재는 항상 불편했다. 말이 너무 많고, 과장이 너무 세다. 아버지를 좋아하시고, 날 좋아하셨는데, 난 K 집사님이 부담스러웠다. 나도 말은 많지만, 나의 말은 누가 패스와 어시스트를 해 주어야 나온다. K 집사님의 말은 자체발광 청산유수 네버엔딩 스토리다.


K 집사님 곁에는 치매 걸리신 아내가 같이 오셨다. K 집사님의 아내 사랑만은 감동이다. 80대 노인이 치매 걸린 부인 손 잡고 항상 같이 다니고 그런 자체가. 같은 테이블에 관상이 목사님인 분이 계셨다. 나는 그분을 모르고, B 선생님과 K 집사님은 그분을 알고, 그분은 우리 아버지를 모른다. 그분은 별말 없이 듣기만 하시고, 난 별말 없이 먹기만 했다. 아무 말을 안 했던 것은 아니고, 어시스트를 받아치는 말은 했다.


B 선생님은 내가 아직도 논산에서 아버지랑 농사짓는지 아셨다. 결혼한 것은 아는데, 아들이 태어나 다섯 살이 된 것은 몰랐다.


"캄보디아?"

"아니 네팔이요."

B 선생님은 순수한 교회오빠다. 잘 모르지만 아마도 60대 즈음이 되었을 순수한 교회 오빠. 아직 총각이다. 교회 안에서는 인기가 있었다고. 인기가 많았다기보다. 따르는 자매가 몇 있었는데. B 선생님은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 캄보디아 국제결혼 생각이 나나 보다.

"제가 국제결혼을 했잖아요. 극히 소수의 성공한 케이스 같아요. 한국 사람과 결혼도 어려운데 국제결혼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만난 게 아니고, 고모가 잘 아는 네팔 선교사님이, 친딸처럼 생각하는 아내를 소개해 주셔서. 소개팅 같은 거였는데. 부모님께서 뒤에서 보증이 되어 주신 것도 있고요."

"나도 결혼정보업체는 싫고."


내 말은 그게 아니라. B 선생님이 세상에 둘도 없는 어린왕자인 교회오빠인 것은 인정한다. 근데 그 어린왕자 교회오빠도 잘은 모르지만 60대 가까이 되었지 싶다. 난 결혼할 상황이 되지 못했을 때 아내와 결혼했지만, 세상에 아내 같은 사람도 희귀하고, 아내 같은 사람을 만날 확률도 희귀하다. 부모님이 나의 보증이 되시기도 했고, 그때 나는 서른여덟이었다.


난 홀로 독신으로 신앙생활하면서 사는 삶을 즐기나 싶었는데, 이제 여자 생각이 나나 보다. 세상에 보기 힘든 희귀한 사람인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연인이었던지도 모른다. 다섯 살 요한이가 엄마랑 결혼한다는 것처럼. 어머니가 천국에 가시니 이제 여자 만날 여유가 생긴 것 같은데. 늦었지 싶다.


다섯 살 요한이는 길 가다 예쁜 여자를 보고 "저 여자 예쁘다." 그런다. 그러면 난 "그런 말은 속으로만 생각해야지 다 들리게 말하면 안 돼." 한다. 지 엄마가 그러는데 길 갈 때 예쁜 여자 열심히 본다고. 아빠는 안 그러는데 아내는 그렇게 알고 있다. 적어도 나는 아내 앞에서 아들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예쁜 여자를 열심히 보지 않는다.


"나 엄마랑 결혼할 거야." 다섯 살 요한이가 말한다. 나는 질문을 바꾸어 보았다. "엄마랑 결혼할 거야? 예쁜 여자랑 결혼할 거야?" 요한이는 잠깐 생각한다. 그리고 수줍게 웃으며 말한다. "둘 다. 둘 다 결혼할 거야."


아내랑 결혼한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결혼 자체에 대하여는 가끔 후회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아내와 요한이가 있어서 사람답게 사는 거다. 아내와 요한이가 있어서 최소한의 사람은 된 것이다. 거기에 부모님과 가족의 보증과 서포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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